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지난 5월 26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플리스에서 백인 경찰의 무릎에 깔려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마지막으로 내뱉었던 말이 뭔지 알지? “I can’t breathe(나는 숨을 쉴 수 없다)”였네. 8분 46초 동안이나 제대로 호흡을 할 수 없었으니 얼마나 고통스럽게 죽었을지 상상만 해도 내 숨이 막힐 지경일세.

요즘 마음 놓고 자유롭게 숨을 쉬고 산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실감하고 있네. 전 세계에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구호로도 쓰이고 있는 ‘나도 숨을 쉴 수 없다’는 말이 저절로 입에서 나오는 나날이야. 코로나19 감염증 대유행으로 지난 몇 개월 동안 계속 쓰고 있는 마스크 때문에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네. 무더운 여름이 되니 더 힘이 들어. 동무들과 산과 들을 신나게 달리다 지치면, 큰 나무 그늘에 잠깐 멈춰 서서 맑은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가 힘차게 내뿜는 심호흡을 맘껏 할 수 있었던 때가 얼마나 행복했던 시절이었는지… 새삼 깨닫고 있네.

마스크를 쓰고 사는 게 오래되다 보니 웃고픈 일들도 많이 생기네. 얼마 전 한 일간지에서 김훈 작가의 <거리의 칼럼>을 읽는데, 남의 일 같지 않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심난하더군. “며칠 전에 식당에서 혼밥을 먹는데 숟가락질을 두 번 해도 밥이 입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늙으면 입이 벌어지지 않아서 밥을 못 먹게 된다는데, 그때가 왔구나 싶어서 입가를 만져보았더니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마스크를 벗고 먹으려 했으나, 심란해서 넘기기가 어려웠다. 집에 와서 애기했더니, 아내가 웃으면서 슬퍼했다.”

나도 마스크 때문에 헛고생하는 일이 잦네. 코로나 19 대유행 전에는 마스크를 써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 쓴 적은 없거든) 마스크 쓰는 걸 깜빡 잊고 외출할 때가 많아. 왕래하는 사람들이 드문 골목길을 벗어나 버스정류장이 있는 대로변까지 당당하게 걷다가 ‘아차! 마스크!’하고 되돌아온 게 한 두 번이 아니야. 나만 빼고 모두 하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사람들만 보여서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렸던 날도 있어. 마스크로 얼굴을 숨기고 다니는 사람들이 다 외계인처럼 보이는 날도 있고. 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고 다니지? 무슨 일 있어? 그러다가 ‘아차! 마스크 써야지!’하는 생각이 들면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허둥대며 집으로 돌아오기도 하지. 이런 날이면 사는 게 참 슬퍼. 자주 잊는다는 건 나이 들었다는 뜻이거든. 노인들에게 역병은 여러모로 더 잔인한 것 같네.

요즘 뭐든 소중한 것을 모를 때가 제일 좋은 때라는 걸 절실하게 느끼면서 살고 있네. 마음 놓고 숨을 쉴 수 있다는 게 이렇게 소중한지 이전에는 미처 몰랐어. 사람이 숨 쉬는 게 당연하다고만 생각했으니까. 하루하루 세 끼 밥 잘 먹고, 학교에 가서 공부 잘 하고, 일터에 나가 열심히 일하고, 가끔 아는 사람들 만나 차 한 잔 마시면서 시시덕거리던 보통사람들의 일상. 그 일상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도 몰랐지. 누구나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코로나19는 우리들에게 많은 고통을 주고 있지만, 우리가 살아온 방식을 뒤돌아보고 성찰하는 기회도 동시에 주고 있네. 지금은 사람답게 사는데 뭐가 진짜 중요한가를 우리 모두 함께 생각해야 할 때일세. 오늘과 같은 내일이 언제나 오는 게 아니라는 걸 잊지 말고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어서는 안 되네. 숨 한번 제대로 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모두 각성해야 할 때야.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가 되는 세상은 피해야지 않겠나. 나도 맘껏 숨 쉬고 싶네.

마지막으로 김청미 시인의 <젤로 좋은 때는, 숨>을 읽어 보세.

게으름 피지 말고 부지런히 내쉬면 되지라/ 그것이 뭣이 어렵다고 그라고 엄살이오/ 워메 이 양반이 어째 말을 이라고 험하게 해부까/ 나라고 그리 안 해봤겄소/ 그것이 암상토 안 할 때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쉽지라/ 가슴이 쑤시고 씀벅거림서부터 요상시럽게 안 되야/ 시상사가 다 그렇지만/ 소중헌 줄 모를 때가 질로 좋은 때여라/ 그때 챙기고 생각허고 애껴줘야 해/ 한번 상하면 돌리기가 만만치 않다는 걸/ 넘치고 썽썽할 땐 모다 모른단 말이오/ 요로케 되고 본께/ 숨 한번 지대로 쉬는 것이/ 시상에 질로 가볍고 무거운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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