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소지섭이 영화 ‘자백’(감독 윤종석)으로 돌아왔다. /피프티원케이
배우 소지섭이 영화 ‘자백’(감독 윤종석)으로 돌아왔다. /피프티원케이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소지섭은 1995년 청바지 브랜드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한 뒤, 드라마 ‘남자 셋 여자 셋’(1996)을 시작으로, 드라마와 영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카리스마 넘치는 매력부터 달콤한 로맨스 연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매 작품 새로운 옷을 입으며 성실하게 그리고 뜨겁게 대중을 만나왔다. 

오는 26일 개봉하는 영화 ‘자백’(감독 윤종석)도 소지섭의 ‘최선’과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작품이다. ‘자백’은 밀실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유망한 사업가 유민호(소지섭 분)와 그의 무죄를 입증하려는 승률 100% 양신애(김윤진 분)가 숨겨진 사건의 조각을 맞춰나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 ‘마린 보이’를 연출한 윤종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스페인 영화 ‘인비저블 게스트’(2017)를 한국 정서에 맞게 각색한 ‘자백’에서 소지섭은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유민호 역을 맡아 데뷔 후 처음으로 서스펜스 스릴러에 도전했다. 

소지섭은 벼랑 끝으로 내몰린 민호의 복잡한 심경을 세밀하게 담아내 호평을 얻고 있다. 불안과 분노, 억울함과 절실함 등 다양한 감정을 오가며 극을 이끌었다는 평이다. 특히 사건이 재구성됨에 따라 급변하는 상황을 치밀하게 그려낸 것은 물론, 그동안 보지 못한 서늘한 눈빛까지 완벽 소화한다. 수많은 캐릭터를 소화하고도 기어코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게 하는 것. 그가 ‘롱런’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 

첫 스릴러 도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소지섭. /피프티원케이
첫 스릴러 도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소지섭. /피프티원케이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소지섭도 자신의 ‘낯선’ 얼굴에 만족감을 표하면서 “멈춰있고 싶지 않다”며 식지 않은 열정을 불태웠다. (*해당 기사에는 ‘자백’에 대한 결정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돼있습니다.)    

-완성된 영화는 어땠나.
“시나리오 보다 더 재밌게 만들어진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만족하고 있다. 작품에 대한 만족도도 있지만, 극장에서 개봉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하다. 극장에서 정말 보고 싶었다.”

-첫 스릴러 도전이었다.  
“폭이 넓어진 기분이다. 다양하게 해볼 수 있는. 영화니 시도할 수 있었던 것도 같다. 드라마에서는 악역이 주인공이 될 수 없잖나. 앞으로 비슷한 종류의 대본이 들어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나도 연차가 꽤 돼서 어떤 연기를 해도 새로운 모습이 나오는 게 쉽지는 않더라. 그런 갈증이 있을 때 만난 작품이다. 나 혼자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작품이든 감독이든 다른 배우든 도움을 다양하게 받아야 새로운 모습이 나올 수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나의 모습들을 다시 찾아나가야 할 것 같다.”

-‘갈증’이라고 표현했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도전은 늘 하고 싶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것도 너무 많다. 멈춰있고 싶지 않다. 잘하는 것을 계속 더 잘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나는 반대로 평이 안 좋더라도 다양한 걸 시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스릴러도 처음이지만, 악역도 처음이었다. 그동안 제안이 없었던 걸까.   
“주인공을 해온 지가 꽤 됐잖나. 주인공은 대부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영화도 마찬가지로 대부분은 좋은 사람들이 주인공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장르가 스릴러라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게 내게는 되게 매력적이었다.”  

-유민호의 진술에 따라 변화하는 구조가 흥미로웠는데, 연기하는 배우 입장에서는 어려웠을 것 같다.  
“실제로 촬영할 때도 한 공간 안에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야 해서 어려웠다. 그런데 다행히 감독님이 너무 오래 준비하고 계신 작업이라, 확고하게 갖고 계신 지점이 있어서 궁금하거나 어려운 게 있으면 많이 의지할 수 있었다. 너무나 잘 계산돼 있었다. 나보다 나나 배우가 더 어려웠을 거다. 나보다 더 다양한 상황을 연기해야 했고, 머리 맞는 신도 되게 많이 찍었다. 나는 그런(머리 부딪히는) 건 괜찮다.(웃음)”

‘자백’에서 유민호를 연기한 소지섭. /롯데엔터테인먼트
‘자백’에서 유민호를 연기한 소지섭. /롯데엔터테인먼트

-가장 어려운 지점은 무엇이었나.  
“내가 아무리 계산을 한다고 해도 감정의 크기나, 편집의 순서가 어떻게 될지 잘 모르니까 헷갈리거나 부족한 부분이 분명히 있거든. 그건 확실히 감독님에게 의지했다.”

-인물에 어떻게 접근했나. 
“시작이 불륜이잖나. 첫 단추를 잘못 끼었다. 나쁜 놈이다. 하지만 시작부터 정말 악인이냐고 했을 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감독님도 마찬가지였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고 잘못된 선택을 해서 결국에 낙인이 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변해가는 과정에서 정말 악인이 된 거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그런 디테일이 영화에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봐줬으면 한다. 단순히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하진 않았다.” 

-유민호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눈빛도 달라지고 행동 하나하나가 긴장감을 자아냈다. 그런 에너지를 분배하는 작업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시나리오가 주는 힘인 것 같다. 원작에서는 마지막에 반전 한 번으로 끝나는데, 우리 영화에서는 어떤 지점에서 오픈이 되고 그 뒤를 끌고 가는 긴장감이 있다. 일부러 내가 이때부터 연기를 다르게 해야지 하고 의도하진 않았고, 그냥 그 인물에 젖어있었던 것 같다. 잘 표현이 된 것 같아 다행이다. 물론 타이트한 장면은 만들어서 한 것도 있다. 각도나 눈동자의 위치 등 계산해서 만든 컷도 있다.”

-감독이 생각한 유민호와 소지섭이 생각한 유민호는 일치했나. 어떤 의견을 나눴나. 
“다행히 잘 맞았다. 특히 밑도 끝도 없는 악역이 아니라는 부분에서 의견이 일치했다. 그런 설정이었다면 재미도 없었을 것 같고, 다른 식의 패턴으로 연기하지 않았을까 싶다. 촬영 전부터 많은 상의를 했다. 이것보다 조금 다른 느낌, 다른 모습을 나도 원하고 감독님도 원했다. 그래서 적게는 2개, 많게는 3~4개 감정의 버전을 촬영했다. 그게 잘 믹스가 돼서 지금의 결과물이 나온 것 같다.”

-사전 리허설도 굉장히 많이 했다고. 
“다른 작품보다 대본 리딩을 많이 했던 것 같다. 1차적으로 감독님과 둘이 만나서 읽어보고 필요한 것들을 추리고 빼는 과정을 거쳤다. 보충하고 걷어내는 작업을 많이 했다. 이후 김윤진 선배, 감독님과 촬영 전에 만나서 리허설을 했다. 좁은 공간에서 다양한 느낌을 줘야 하니 최적의 동선을 찾아서 연극처럼 연습을 많이 했다. 그런 노력이 화면에 잘 비친 것 같다.”

완벽한 호흡을 보여준 소지섭(왼쪽)과 나나. /롯데엔터테인먼트
완벽한 호흡을 보여준 소지섭(왼쪽)과 나나. /롯데엔터테인먼트

-나나와의 호흡은 어땠나.  
“처음에는 어색했다. 스타트가 불륜이니까.(웃음) 그런데 같이 연기하다 보니 눈이 되게 좋더라. (에너지를) 계속 주더라. 주는 걸 받고 나도 주기도 하면서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 나도 헷갈리는 부분이 있었고, 나나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감독님이 디렉션을 주면 빨리 캐치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서 연기하더라. 센스 있고 스마트한 배우라고 생각했다. 너무 잘 하고 있다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자백’이라는 도전이 배우 소지섭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 
“이제 막 오픈이 됐고 만들어가는 과정이니 더 많은 사람들의 평가를 듣고 세월이 지나면 내게 어떤 의미로 남을지 더 확실해질 것 같다. 다만 새로운 시도를 했고 도전한 작품은 맞고, 나중에 봤을 때도 필모그래피에 남는 작품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 투자도 하고 있다. 투자자와 배우로서 작품을 고를 때 어떤 차이가 있나.  
“파트너가 있다. 나보다 선수다. 그분이 하는 일에 발만 담그고 있는 거라, 그분이 들어야 할 이야기를 내가 듣는 것 같아 죄송하고 민망하다. 그분의 영향을 제일 많이 받는다. 배우로서는 그 당시 감정이 중요한 것 같다. 또 전작과 바로 붙여서 비슷한 것은 안하고 싶다.” 

-최근 SNS도 개설했다.  
“정말 팬들 때문에 만든 거다. 그동안 너무 무뚝뚝하고 재미도 없고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아예 비치지 않고. 그런 것들이 어느순간 너무 죄송하더라. 늦었지만, 잘 못하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해서 조금이라도 볼 수 있는, 팬들과 같이 추억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개설했다). 멋있는 것보다 재밌는 쪽으로 이끌어가고 싶다. 재밌고 싶다. 하하.”

-SNS 아이디가 ‘soganzi(소간지)’더라.    
“재밌으려고 한 거다. 그 이름을 지어주신 분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단순히 내 이름으로 만들고 싶진 않았다. 하 소간지, 민망하긴 하다.” 

-‘소간지’라는 별명도 정말 오래됐다. 
“맞다. ‘미사(미안하다, 사랑한다)’ 끝나고 그렇게 불러주셨으니까. 정말 가끔 연기에 대한 갈증이 있거나 해답이 안 나올 때 ‘미사’를 본다. 그때는 앞만 보고 미친 듯 달릴 때라 저렇게 연기했구나 다시 되새김이 된다. 보면 늘 감사하고 행복하고, 아 내가 저 때 그랬지, 저것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지 얻기 위해, 에너지를 받기 위해 보는 것 같다.”   

-그 작품이 특별한가. 
“유독 그 작품만 많이 봤던 것 같다. ‘발리에서 생긴 일’ 때문에 연기가 좋아지고 재밌어졌고, ‘미안하다, 사랑한다’ 때문에 배우 소지섭이 크게 알려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작품을 조금 애정 한다.”

영원한 소간지, 소지섭. /피프티원케이​
영원한 소간지, 소지섭. /피프티원케이​

-최근 예능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럭’에 나와서 천천히 내려가고 싶다는 표현을 했다. 어떤 의미인가.   
“어떤 작품을 하든, 나와 함께 하는 감독, 스태프, 배우들이 좋은 기운을 받아서 잘 됐으면 좋겠다. 요즘은 내가 잘 되는 것보다 그게 더 행복하다. 그런 기운이 더 많이 들어왔으면 해서 천천히 내려가고 싶다는 말을 했다. 내가 힘이 있고 여력이 있을 때 좋은 기운을 많이 드리고 싶어서 그런 말을 한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더 느껴진다. 연기는 하면 할수록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새로운 모습이 나온다. 도움을 받으려면 나도 드려야 하잖나. 여러 생각들이 복합적으로 든다.”

-배우 소지섭으로 살면서 꼭 지키고자 하는 게 있다면. 
“촬영 현장에 절대 늦지 말자, 성실하게 맡은 걸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자 잘하든 못하든. 그 두 가지는 항상 지키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시간 약속은 잘 지켰던 것 같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자는 연기가 좋아진 시점도 있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먹고살아야 하니까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했으니까 최선을 다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또 내가 운동을 했잖나. 그 에너지가 있었던 것 같다. 최선을 다하자 부족하더라도. 그 두 가지가 나를 지켜준 힘인 것 같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배우로서 오랜 시간을 살아오면서 힘든 순간도 많았을 것 같다. 어떻게 견뎌왔나. 또 이 일이 소지섭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궁금하다.
“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그 어떤 것을 해도 풀리지 않는다. 선배들에게도 물어봐도 ‘답이 있니? 그냥 해야지’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하신다. 어떻게 해도 해결이 안 된다. 연기를 계속 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배우라는 직업은 이제는 내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가는 날까지 해야지. 그러고 싶고. ‘51’이라는 숫자를 좋아한다. 배우라는 직업은 50.1%인 것 같다. 아직 51%는 모르겠다. 거기까지 가고 싶다. 100% 만족은 내게는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그런데 49%와 51%는 2% 차이지만 반을 넘기는 것과 못 넘기는 것의 차이잖나. 넘기고 싶고, 배우로서 넘어는 왔지만 아직 불안하고 언제 꺾일지 모른다. 앞으로 일을 해가면서 채우고 싶다. 계속.”

-올해 남은 계획은.   
“‘자백’이 정말 잘 됐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행복한 한 해가 되지 않을까. 또 다음 작품이 정해지면 준비할 것 같다. 앞으로 더 다양한 모습으로 찾아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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