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채 KT 회장이 점점 수세에 몰리고 있다. 배임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데 이어 비자금 조성, 정·관계 금품 로비 의혹까지 제기되며 현재까지 언론에 알려진 의혹으로만 쳐도 ‘비리백화점’ 수준이다. 일각에선 이석채 회장을 둘러싼 전방위적 수사를 두고 ‘정치적’이라는 지적도 제기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는 시각이 사실상 지배적인 분위기다. 한때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업계 지각변동을 주도하던 ‘황제’에서 이제 바닥을 향해 날개없는 추락을 하고 있는 이석채 KT 회장. 도대체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된 걸까.

▲ 사진은 이석채 KT 회장이 지난해 1월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빈소를 찾아 조문을 하고 있는 모습.

사실 이석채 KT 회장은 2009년 취임 당시만 하더라도 ‘혁신의 아이콘’으로 주목을 받던 인물이었다.

당시 이 회장은 KT-KTF 합병을 취임 후 첫 카드로 꺼내들며 그동안 침체돼 있던 KT에 변화의 불씨를 지폈다. 당시 합병으로 KT는 거대 유무선 통신사로의 토대를 마련했다. KTF와의 합병 성공은 이 회장을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경영자’라는 평가를 받게 만들었다.

‘혁신의 아이콘’서 ‘영욕의 아이콘’으로

이 회장은 또 제2의 창업을 모토로 내세우며 새롭게 변화된 KT로 변화할 것임을 천명했다. 이의 일환으로 취임한 2009년 7월, 기존의 사고를 뒤엎는 역발상·미래·소통·고객감동의 ‘olleh 경영’을 선언했다. ‘역발상 경영’으로 대표되는 ‘olleh 경영’은 통합 KT의 경영방침으로 자리매김한 상태다. 

이 회장의 혁신 행보는 멈추지 않았다. 2009년 11월 아이폰 도입을 통해 스마트 혁명을 이끌었고, 2010년에는 오픈 에코시스템과 중소기업 동반성장 정책, 클라우드 컴퓨팅 도입 등으로 IT 산업 재도약을 이끌며 본격적인 스마트 시대를 열었다.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이 회장은 취임 후 2년간 국내 IT산업의 새로운 지평을 열며 KT를 명실공이 최고의 기업으로 탄생시켰다.  

이 회장 취임 이후 KT는 사상 처음으로 매출 20조원을 돌파할 수 있었고, 그룹 매출은 2008년 대비 15% 증가하는 등 그룹 전체의 성장성과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 회장 취임 이후 KT는 그야말로 ‘거대 공룡’으로 변모했다.

이 회장 재임 시절 KT 계열사는 30개나 늘어났다. 유선시장의 위기 속에서 민영화된 KT는 몸집을 불려 2002년 9곳이던 계열사는 2005년 17개, 2008년 30개, 2012년 말 현재 51개로 늘었다.

하지만 ‘영광’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 회장은 취임 이후 이뤄낸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인정받아 2012년 연임에 성공했지만, 곳곳에서 불거져 나오는 잡음은 결국 잠재우지 못했다.

우선 이 회장 재임 시절 증가한 30개 계열사 중 20개 계열사가 적자다. 지난 7월 KT는 141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사상 최초다. KT의 올 3분기 매출액이 전년동기 대비 7.3% 감소한 5조7,346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3,078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22.7% 늘었지만 시장 예상치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빨간불 켜진 KT.

동덕여자대학교 권혜원 교수는 “BC카드와 KT스카이라이프 등 흑자 회사를 제외하면 대부분 성장 한계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권 교수는 ‘민영화 이후 KT 지배구조 변화와 문제점’을 분석하면서 “KT 경영진은 비관련 다각화를 통해 KT 고유 사업과 비통신 사업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주력 통신 사업 부문에서 정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 같은 현상의 근저에는 민영화된 KT의 소유·지배 구조의 변화로 인해 투자자들의 고배당 감량경영에 대한 압력이 강화되고 있는 현실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KT의 배당성향은 2000년 15.8%에서 2009년 94.2%까지 치솟았다. 2010년과 2011년 배당성향은 50.0%, 37.7%였다.

‘KT 저격수’로 통하는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권은희 새누리당 의원 역시 ‘뉴스1’과의 인터뷰를 통해 “KT의 뿌리는 어디까지나 통신”이라면서 “통신 비즈니스를 탄탄하게 한 다음, 다른 분야를 연계시켜 새로운 시장을 열어가려고 해야 한다. 본업인 통신이 망가지고 있는데, 다른 걸 하겠다고 나서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꼬집었다. 부임 이후, 줄곧 ‘탈통신’을 핵심 가치로 내걸고 달려왔던 이 회장의 경영방침에 대한 일침인 셈이다. 권 의원은 1986년부터 KT에서 근무한 ‘정통 KT맨’이다.

실제, 계열사를 뺀 통신부문 위주의 KT 본체 실적(별도기준)은 급추락세다. KT는 올 3분기에 매출 4조1,513억원에, 영업이익 1470억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대비 각각 16%와 32.8%씩 감소한 수치다. 계열사 실적을 더한 3분기 연결기준 실적(매출 5조7,346억원, 영업이익 3,078억원)만 따져선 안된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이 같은 현실은 그동안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 비효율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는 곧, 이 회장 집권 이후 KT가 덩치만 커진 ‘허약체질’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 회장은 이외에도 현재 검찰에서 수사 중인 배임 혐의, KT 사옥 헐값 매각 의혹, 정·관계 금품로비 의혹, 비자금 등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는 의혹들로 몸살을 앓고 있는 상태다.

‘제왕적 리더십’이 화를 불렀다

외부에서는 KT가 난파선처럼 흔들리고 있는데 대해 이 회장의 기본적인 ‘리더십’을 탓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 회장의 ‘제왕적 리더십’이 결국 KT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민영화 초대 사장을 지낸 이용경 KT 전 사장은 지난 4월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사장을 회장으로 바꾸고, 이사회는 경영진의 수족이 됐다. 지배구조가 퇴보했다”고 지적했다. 이 전 사장은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석채 현 KT 회장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전 사장은 “경영진을 감시하는 것이 이사회의 기능인데, 지금 이사회는 경영진의 수족이 돼 버렸다”며 “지배구조가 후퇴했다”면서 “KT에 이명박 정권의 공신들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 같다”고 ‘이석채 체제’를 비판했다.

실제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소속 최민희 의원(민주당)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소위 ‘낙하산 인사’로 분류되는 KT 전·현직 인사들은 36명에 달한다. 

최민희 의원이 지적한 낙하산 인사로는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선대본부장을 지냈던 홍사덕 민화협 상임의장(KT 경영고문)과 공보단장을 지낸 김병호 전 의원(KT 경영고문), 국민행복기금이사장을 겸임하고 있는 박병원 사외이사 등이 포함되어 있다. 김은혜 전무와 이춘호 EBS 이사장(KT 사외이사) 등 이명박 정부 인사들도 영입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 자녀는 KT 법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 2011년 4월 18일 오전 서울 중구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린 'KT 인력퇴출 프로그램 폭로 및 양심선언 기자회견'에서 반기룡(오른쪽 세번째) 관리자가 양심선언을 하고 있다.

이 회장은 자신을 지켜줄 사람들로 ‘인의 장막’을 친 셈이다.

이 회장은 그러면서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아랫사람들은 철저히 솎아냈다. 이 회장은 재임시절 운영된 ‘불법 인력퇴출 프로그램(이하 CP)’으로 수천명의 직원을 정리해고 했다. 겉으로는 ‘경영효율화를 위한 인력감축’을 내세웠지만, 실제론 자신만의 철옹성 구축을 위해 이를 악용한 것이다.

이 회장 취임 이후 직원 숫자는 10% 가량인 약 3,000명이 줄어든 반면 임원 숫자는 공개된 임원만 133명으로 약 150% 가량 증가했다.

최민희 의원은 “낙하산 수십자리를 만들기 위해 수천명의 직원들을 정리했고 정권은 그 직원들의 자리를 뺏어 돈과 자리보존에 이용했다”고 비판했다.

KT 새노조 이해관 위원장은 “이사회조차 동창으로 구성하고, 정권의 실세라면 무턱대고 자문이나 고문을 맡기는 비정상적인 기업지배구조를 만들었다”면서 “이 결과 통신비는 치솟고, 노동자는 죽어가고, 마침내 기업 지속성 자체가 심각한 타격을 입는 지경에 왔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KT 측은 “이 회장이 창조적 신노사문화 창달에 기여했다”고 홍보했다. 실제로 이 회장은 2010년 9월 노동부로부터 신노사문화 대상 수상했다.

KT노동인권센터 등에 따르면 7월 기준으로 이 회장 집권 이후 사망한 직원 195명 중 23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올해는 8월까지만 8명의 직원이 자살했다. KT 안팎에서는 자살의 근본적 원인을 대규모 구조조정과 CP로 대변되는 부진인력퇴출프로그램 등 가혹한 노무관리에서 찾고 있다. 

▲ (사진 위)검찰이 이석채 KT회장의 배임혐의와 관련 KT 본사와 계열사를 압수수색한 10월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KT 서초지사에서 검찰 관계자들이 압수수색을 마친 뒤 물품을 차량에 싣고 있다.(사진 아래)검찰이 KT 본사와 계열사를 압수수색한 10월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KT 서초지사에서 경비원들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이건희가 되고 싶었던 이석채

KT 안팎에서는 이 회장을 향해 “욕심이 화를 불렀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한다.

KT 내부사정과 이석채 회장의 면면에 대해 정통한 한 취재원은 “이석채 회장은 전문경영인이 아니라, 스스로 ‘오너’라고 착각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 취재원은 “이 회장 취임 이후 KT 덩치가 커지면서 ‘재벌 흉내내기’에 재미를 붙인 모양”이라면서 “사실상 ‘주인없는 회사’인 KT를 제 회사 주무르듯 주인처럼 행동했다. 제 사람을 심고, 반기를 드는 직원들을 잔인하게 잘라낸 것은 결국 제왕으로 군림하며 통치하겠다는 의도 아니겠는가. 어쩌면 이 회장은 삼성 이건희 회장의 모습을 꿈꿨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현재 모든 혐의에 대해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의 움직임 등 돌아가는 분위기를 종합할 때 상황은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검찰은 KT에 대해 이달 새 벌써 3번의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관련 임직원 소환도 이뤄지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도 국정감사에서 불거진 KT의 ‘무궁화위성 불법매각’ 문제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조만간 검찰 고발을 실시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이 회장은 퇴임과 별개로 검찰 조사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KT의 이건희’가 되고 싶었던 이석채 회장이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렀던 건 고작 4년8개월에 불과하다. 이제 이석채 회장은 ‘황금의자’가 아닌, 침몰하기 직전의 난파선 뱃머리에 앉아 있다.

한편 지난 3일 사의를 표명했던 이석채 회장은 오는 12일 이사회에 사표를 제출할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12일 오후 KT 서초사옥에서 열리는 이사회에 앞서 사표를 제출할 예정이며, 이날 이사회에서는 후임 사장 선임 절차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이 회장이 12일 사표를 내면 당분간 표현명 사장이나 김일영 사장 중 1명이 직무대행을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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