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처음 집을 구하던 날, 하루종일 부동산을 돌아다니다가 카페에 가서 펑펑 울었다. 서러웠다. 내 몸 눕힐 집 하나를 원하는 게 그렇게 큰 욕심이던가? 나같이 가난한 사람은 이 땅 위에 존재할 가치도 없나?’ 

민달팽이유니온(이하 ‘민유’)는 첫 독립을 준비하는 청년, 이사를 몇 차례 다녀봤지만 여전히 집 구하는 게 어려운 청년 등을 대상으로 주거교육 및 주거상담을 진행한다. 민유가 만나는 많은 청년들이 이야기하는 도시와 집이란, 가난한 자에게는 그가 존재할 수 있는 자리 한 칸조차 좀처럼 내어주지 않는 잔인한 곳이었다. 민달팽이 청년 중 몇몇은 공인중개사무소에 들어갔다가 ‘고작 그 돈’으로는 집 못 구한다며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한다. 시장이 원하는 규모만큼의 돈이 없어서 집다운 집을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홀로 내던져지는 경험을 수차례 반복한다. 

한국 사회는 임대료에 대한 규제가 아직 없다보니, 좋은 집은 한없이 비싸고, 열악한 집은 때때로 가당치 않은 수준의 임대료를 요구한다. 1평도 되지 않는 공간이 월30만원을 웃돌기도, 도심의 반지하 전세는 1억을 넘기도 한다. 이런 여건 속에서 많은 이들은 주거비와 주거환경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도 내몰린다. 

그러다 높은 주거비를 감당하게 된 사람 중 일부는 과도한 대출을 이용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깡통전세를 비롯해 전세사기 위험에 처하는 청년의 주거불안 문제가 불거진다. 반면, 주거비를 낮추는 대신 열악한 주거환경을 감당하게 된 사람은 주택하자에 관한 수리수선 의무를 일방적으로 요구받기도 한다. 

곰팡이나 누수가 가득한 집에서 ‘그 가격’에 이 정도는 참고 살라는 말을 들으며 모멸감을 견디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한국 사회가 마련해둔 최저주거기준은 몹시 협소하고, 주거공간으로 적절하지 못한 거처의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장면은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 속에 하루 이틀 쌓여간다. 그러다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 거다. ‘돈이 없으면 이 땅 위에 내 몸 하나 존재할 자리조차 온전히 누릴 수 없는 것일까. 원래 그렇고, 당연히 그렇고, 어쩔 수 없는 걸까.’ 

하지만 집다운 집에서, 주거비 걱정 없이, 원하는 만큼 살고 싶은 게 어디 그냥 욕심이던가. 누구나 바라는 안정적인 상태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처럼 모든 이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들을 권리라 부르기로 한지 오래며, 이를 보장하기 위해 사회 시스템이란 걸 만들고 발전시켜왔다. 

주거권이란 이런 것이다. 곰팡이 때문에 기관지 질환을 겪고 싶지 않고, 비가 오는 날에 집이 물에 잠길까봐 걱정이 되어 잠을 설치고 싶지 않고, 임대료 인상과 계약갱신을 앞두고 모욕적인 일을 겪고 싶지 않은 것. 이는 욕심이 아니라 권리다. 

국제인권법에서는 모든 이들에게 보장되어야 할 ‘적절한 주거에 대한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는 가용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점진적으로 적절한 주거에 대한 권리를 실현할 의무를 지닌다.

이것은 단지 지붕 밑에 살게 하는 수준과 같이 편협하거나 제한적인 의미가 아니다. 안전하고, 평화롭고,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곳에서 살 권리다.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대표, 2021. 02~) 


* 민달팽이유니온: 전세사기부터 공공임대까지 청년 대상으로 주거상담과 주거교육을 진행한다. 현장에서 발굴한 이슈를 중심으로 지역에서는 청년 세입자 모임을 만들어가고, 광역에서는 청년과 세입자 주거권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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