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청년 인구 중 유일하게 증가하고 있는 집단인 청년 1인 가구의 경우, 2020년 기준으로 4명 중 3명은 저소득층에 속한다. 2명 중 1명은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에 속하며, 10명 중 9명 이상은 세입자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가난한 세입자로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겪는 차별과 모멸이란, 개인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니다. 이들이 겪는 주거불안은 단순히 개인이 노력해서 능력껏 벗어나야 하는 고난 따위가 아니다. 국가가 이들의 주거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인 것이다. 

문제는 주요 언론과 정치인들이 청년세대가 겪는 주거불안과 주거불평등의 원인을 주거권이 아닌 ‘돈’에서 찾는다는 점에 있다. 이것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은 청년 대상의 공공임대주택 신축이 추진될 때다. 이 때 뒤따르는 일부 지역 주민의 반대 논리는 주로 집값에 의거한다. 아파트 가격 폭락과 같은 재산권 피해가 예상되고 이로써 지역발전을 저해한다는 주장이다. 빈민지역 슬럼화가 일어나 동네가 범죄 및 우범지역이 되는 등 이미지가 손상된다는 주장도 함께 제기된다. 

예컨대, 성남시에서 행복주택 신축을 추진하던 일부 지역에는 한동안 “ㅇㅇ동을 난민촌으로 만들셈이냐”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난민 혐오, 가난 혐오가 복합적으로 드러나는 고도의 현대예술작품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이러한 반대는 때때로 원룸주인들의 이해관계와도 맞물린다. 집을 재산으로 확보한 뒤, 이를 수단삼아 임대소득으로 이윤을 창출하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조직적인 반대가 이뤄지는 것이다. 서울특별시 성동구의 한 대학에서 기숙사 신축을 추진하자, 인근 지역 일대에는 한동안 “ㅇㅇ동 지역경제 초토화 시키는 한양대 기숙사 건립 강력히 반대한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이와 같이, 가난하거나 취약한 이들도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해 이들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것보다, 인근 아파트단지의 집값이나 일부 지역주민의 임대소득을 보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이 펼쳐지곤 한다.

문제는 여기에 호응하는 정치가 있다는 점이다. 일부 정치인들은 선거공약 중 하나로 기숙사 신축을 막겠다며 나서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이며, 원주민 생계를 위협하는 기숙사 신축을 꼭 막겠다고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서울특별시 성북구에서는 구의회 전체가 한 대학의 기숙사 신축을 반대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공공임대 혐오 안에 깃든 이해관계, 즉 집값상승 등을 목적으로 한 지역이기주의에 굴복하는 경우는 몹시 잦았다. 그렇게 무산되거나 지연된 계획이 수두룩했다. 

그러나 현 정부에서 벌어진 문제는 단순히 공공임대주택 반대 의견에 굴복한 것을 넘어, 정부가 나서서 공공임대주택예산을 전년대비 5.7조원이나 대폭 삭감했다는 것에 있다.

국가는 공공임대주택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 대한 혐오와 차별, 소유하지 않고 세 들어 사는 사람에 대한 모욕과 멸시로부터 가난하고 취약한 이들의 존엄성을 지켜낼 책임이 있다. 집은 돈벌이수단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 자체여야 한다. 

이를 위해 펼쳐지는 주거정책의 기본 중 하나가 공공임대인 것이다. 모든 이들이 부지런히 돈을 모으고 투자, 투기 가릴 것 없이 어떻게든 자력으로 내 집 마련을 통해 주거안정을 꾀해야 한다고 말 건네는 사회는 결코 지속가능할 수 없고,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최근 발표된 청년/서민 대상 공공분양 50만호 공급계획에 관해 원희룡 국토부장관은 이들의 ‘꿈과 희망’을 복원하겠다고 말했다. 이 말의 잔인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8억짜리 주택을 6억에 살 수 있게 되는 것, 5억을 40년동안 빚져가면서 장차 그 집이 10억, 20억 되길 바라는 것이 꿈과 희망인 사회란, 얼마나 가혹한가. 

이미 비싼 집값을 지탱하기 위해 개개인이 빚을 지고, 그것을 탕감하기 위해 집값이 더 오르길 염원하고, 그럼 그 다음 타자들은 더 비싸진 집값을 부담하기 위해 더 큰 빚을 또 짊어지게 되는 사회에서 꿈과 희망이란 그저 금융자본 위에 잠시 덧그려지는 허상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 사회의 끝은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사는 세상이 아니라 돈을 더 많이 가진 사람들부터 살아남는 세상이라는 것이 너무나 자명하다. 그런 세상을 향해 정책 기조를 전환하고 있으면서 꿈과 희망을 말하는 것은 기만이다. 정부의 역할이 집으로 돈 먹고 돈 먹기를 부추기는 금융기관의 역할 그 이상 그 이하도 될 수 없다면, 그래서 가난한 이들에게 돈이 없으니 주거권도 없다고 말 건네는 게 전부라면, 그 사회에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꿈과 희망이란 없다. 

지금 이 사회에는 수많은 가난한 이들이 자신이 존재할 자리를 찾고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고, 그들은 때때로 청년의 얼굴을 하고 있다. 언론과 정치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 얼굴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이미 독점적인 수준으로 부를 축적했고 앞으로 더 많은 부를 더 쉽게 축적할 이들에게 청년의 얼굴을 덧씌워 포장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주거불평등을 보다 공고히 할 뿐이다. 동시에, 주택금융화를 통해 이득을 보는 사람들의 편에 서는, 몹시 게으르기 짝이 없는 처세술에 불과하다. 

지금과 같은 시기는 언론이 나서서 청년을 앞세워 쏟아져 나오는 주거 대책을 면밀히 분석하고 비판적으로 접근해야 할 때다. 정부는 중산층 중심의 주거정책 기조를 전면 철회하고 공공임대주택 예산 5.7조를 삭감하지 말아야 하며, 주택가격이 하락국면에 들어선 지금이 공공임대주택을 늘릴 적기임을 무시하지도 말고 놓치지도 말아야 할 것이며, 국회는 정부가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내놓을 때까지 현 예산안을 바로잡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대표, 2021. 02~)

 

* 민달팽이유니온: 전세사기부터 공공임대까지 청년 대상으로 주거상담과 주거교육을 진행한다. 현장에서 발굴한 이슈를 중심으로 지역에서는 청년 세입자 모임을 만들어가고, 광역에서는 청년과 세입자 주거권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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