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하선이 영화 ‘첫번째 아이’(감독 허정재)로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주)더쿱디스트리뷰션
배우 박하선이 영화 ‘첫번째 아이’(감독 허정재)로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주)더쿱디스트리뷰션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박하선이 영화 ‘첫번째 아이’(감독 허정재)로 관객 앞에 선다. 다양한 작품을 통해 기혼 여성의 현실과 삶을 대변하며 많은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하고 있는 그는 ‘첫번째 아이’에서도 우리 시대 여성의 보편적인 삶과 감정을 세밀하게 포착해 깊은 공감을 안긴다.   

‘첫번째 아이’는 육아휴직 후 복직한 여성이 직장과 가정에서 겪는 무수한 딜레마를 통해 의지할 수도 홀로 설 수도 없는 세상과 마주한 우리 시대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영화 ‘특별수사’(2016), ‘암수살인’(2018) 등 상업영화 연출부로 경험을 쌓은 신예 허정재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으로,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에 초청돼 주목을 받았다.

극 중 박하선은 주인공 정아로 분해 한층 깊어진 연기력을 보여준다. 정아는 육아와 일 사이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인물이다. 박하선은 엄마라면 누구나 겪었을 법한 감정과 상황을 섬세하고 절제된 연기로 표현해 극의 몰입을 돕는다. 특히 그동안 수많은 작품에서 그렸던 전형적인 모성이 아닌, 보다 현실에 가까운 모성을 그리며 공감을 이끈다. 

박하선은 최근 <시사위크>와 만나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실제 육아와 연기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그는 “주인공 정아의 상황과 감정에 누구보다 공감할 수 있었다”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이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는 진심을 전했다. 

박하선이 ‘첫번째 아이’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주)더쿱디스트리뷰션
박하선이 ‘첫번째 아이’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주)더쿱디스트리뷰션

-촬영 당시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많았다고. 완성된 작품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3년 전이라서 되게 어리다, 젊다, 좋다, 남겨두길 잘했다 그런 생각만 들었다.(웃음) 지금은 괜찮아졌는데 많이 힘들었던 시기다. 내 상황이 힘들어서 연기적으로 힘든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찍었던 것 같다. 14년 키웠던 강아지도 떠나고 동생도 하늘나라에 갔다. 안 좋은 일들이 정신없이 밀려올 때라 사실 이 작품이 없었다면 더 힘들었을 것 같다.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힘이 됐던 영화다. 내가 연기를 좋아하는구나, 진짜 사랑하는구나 느끼게 해준 작품이다.”

-여성 중심 서사를 다룬 작품이었는데, 남성감독이었다. 주연배우로서 또 여성으로서 의견을 많이 내기도 했을 것 같은데, 감독과 해석이 달랐던 지점이나 의견을 오래 나눴던 부분은 무엇이었나. 
“남성감독님이라 놀랐다. 결혼도 안하고 아이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하게 됐냐고 했더니 재밌을 것 같았다고 하더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흥미롭고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감독님도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힘들다고?’ 했다더라. 그런 것 치고는 너무 디테일하게 담아내서 신기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의견을 낸 부분은 아이와의 촬영에 관한 게 많았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다 보니, 케어 하다 도저히 안 되겠으면 이 장면은 못 찍는다, 이렇게 바꿔야겠다고 이야기를 많이 했다. 감독님도 당황스러워하는 부분도 있었는데, 현장에 나밖에 아이가 있는 사람이 없어서 많이 믿어주셨다. 아이의 상태에 맞춰서 그때그때 조율하면서 촬영했다.”

-가장 공감됐던 정아의 상황은 무엇이었나. 
“정아가 한 번 울컥하잖나. 바람 쐬겠다고 나갔는데 기어코 남편이 따라온다. 그때 한 번 우는데 모든 설움을 담아서 했다. 나도 서러울 때가 있었으니까. 그 장면이 좋았고 공감이 됐다. 엄마지만 나도 처음이고 같이 커가는 입장이잖나. 맞아, 이렇게 서러울 때가 있었지 하면서 연기했던 것 같다. 또 정아가 우석과 싸울 때 계속 피한다. 이미 많이 싸워왔을 테고 말이 안 통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다 우석의 말에 정아가 어이없어서 웃는 장면이 있는데 그런 부분에서 현실 부부의 모습이 담기지 않았나 싶다. 나도 아이가 어릴 때 남편(류수영)과 많이 다퉜다. 지금은 싸우면 옆에서 아이가 ‘그러는 거 아니야’라고 한다. 하하. 그래서 잘 싸우지 않는데, 아이가 어릴 때는 육아에 대해 서로 생각이 다른 부분도 있고 해서 다퉜던 것 같다. 아직 남편이 영화를 보지 못했는데 보면 나의 본모습을 많이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웃음)” 

‘첫번째 아이’로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박하선. /(주)더쿱디스트리뷰션
‘첫번째 아이’로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박하선. /(주)더쿱디스트리뷰션

-실제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육아, 돌봄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나.  
“사실 나도 아이를 낳자마자 어린이집에 등록 신청을 했는데, 아이가 다섯 살 때 연락이 왔다. 대기가 너무 많았다. 그 사이에 나는 돈을 더 내고 일반 유치원에 보냈다. 경제적으로 상황의 여의치 않았다면 어떻게 했을까 싶더라. 저출산이라고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다 이유가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또 우리 아이는 유치원에서 5시에 온다. 그것도 늦는 편인데, 일반 직장에 다니는 분들은 집에 빨리 와봤자 7시잖나. 돌봄 문제에 대해서도 개선해야할 게 많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키워야할지 모르겠고, 점점 힘들어지는 것 같다.”

-그런 생각들이 작품 선택에도 영향을 미치나. ‘고백’부터 ‘며늘아기’ ‘산후조리원’ 그리고 이번 ‘첫번째 아이’까지 최근 여성의 현실을 대변하는 작품들을 연이어 선보이고 있는데.
“아무래도 영향이 없진 않은 것 같고 공감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도 재밌다면 했을 텐데, 조금 더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 일단 재밌어야 작품을 하는 편인데 (여성의 현실을 대변하는 작품이) 더 재밌어진 것도 있다. 그렇지만 또 꼭 그런 이유 때문에 작품을 선택하진 않는다. 제안 들어오는 것 안에서 최선을 고르는 것도 있다. 한 가지 조심스러운 것은 이미지 고착에 대한 것은 내가 작품을 해나가면서 깨나가면 되니 상관이 없는데, 안티 아닌 안티가 생기더라. 사실 서로(남녀)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잖나.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해를 푸셨으면 좋겠다. 꼭 그런(여성 중심 서사) 작품만 하지 않는다. ‘진짜 사나이’도 갔다 왔다.(웃음)”

-정아와 지현(공성하 분)의 관계가 굉장히 미묘했다. 어떻게 보이길 바랐나.  
“정말 미묘했다. 실제로는 비혼주의라는 말을 들으면 되게 현명하다고 한다. 결혼도 안 했는데 어떻게 아냐고 지지하는 입장이다.(웃음) 그런데 그 장면에서는 지현의 말이 기분이 되게 나쁘더라. 그 역할로 있어서 그런지, (공)성하가 연기를 너무 잘한 것도 있고 욱하더라. 나를 건드리는 건가 생각했을 수 있을 것 같더라. 실제로는 성하와 사이가 좋다. 하하. 정말 연기를 잘한다. 특히 창고에서 정아와 대화 후에 지현이 기분 나쁜 표정을 할 줄 알았는데 적당히 불쌍한 표정을 하고 지나가더라. 정말 똑똑한 배우구나 싶었다. 성하 덕에 두 사람의 관계가 더 다양하게 보이지 않았나 싶다.”

박하선이 출산과 육아에 대한 솔직한 경험담을 털어놨다. /(주)더쿱디스트리뷰션
박하선이 출산과 육아에 대한 솔직한 경험담을 털어놨다. /(주)더쿱디스트리뷰션

-현실보다 더 부정적으로 표현된 느낌도 있었다. 특히 어린이집 선생님이나 매장 직원의 태도가 너무 공격적으로 느껴졌는데, 배우는 어떻게 해석했나. 
“나는 시사회 때 어린이집 원장선생님 연기를 보면서 진짜 같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분은 매뉴얼이 있잖나. 그렇게 할 수밖에 없고 실제로도 그렇다. 내가 맡기고 싶다고 그럴 수 없고 직접 전화도 해본 적이 있어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장 직원도 그렇다. 물론 좋은 분들도 많지만, 상처 아닌 상처를 주는 분들이 실제로 있잖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상처가 될 때가 있는데 그런 걸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실제 산후우울증을 겪기도 했다고. 어떻게 극복했나.  
“내가 했던 그 어떤 일보다 가장 귀한 일을 하고 있다고 주문을 걸면서 열심히 아이를 키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친구들이 모인다고 연락이 왔다. 그날따라 두 모임에서 연락이 왔는데, 나는 못 갈 것 같다고 답을 하고 나서 모유 수유를 하는데 눈물이 나는 거다. 울면 안 되니까 참고 있었는데, 남편이 일 끝나고 와서 내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는 거다. 울음을 참으니까 실핏줄이 다 터진 거다. 그때 아 내가 울적한 상태구나, 못나가는 게 뭐라고 이렇게 슬퍼하는구나 처음 느꼈다. 극복은 그냥 자연스럽게 된 것 같다. 일을 하고 나오면서 극복했다. 혼자 극복하기에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게 되면서 조금씩 괜찮아지더라. 유치원은 천국이더라.(웃음)”

-출산 후 복귀했을 때 어떤 마음이었나.  
“너무 좋았다. 20대 때는 거의 일을 쉬어본 적이 없는데, 고마운 줄도 모르고 일을 했다. 새벽에 일이 있으면 도축장에 끌려 나오는 소처럼 나왔던 것 같다. 그러다 아이를 2년 정도 키우고 나오니까 새벽 공기가 다르더라. 너무 좋았다.(웃음) 그렇게 밤을 새웠는데도 힘이 하나도 안 들더라. 모유 수유로 밤을 새우는 게 더 힘들었다. 일에 대한 고마움을 아이가 알게 해준 것 같다. 일하는 게 즐거웠다.”

-정아처럼 결혼과 출산, 육아로 인해 커리어에 대한 불안감도 느꼈을 것 같은데.  
“있었다. 물론 지금도 있다. 임신과 동시에 일이 많이 줄었다. 영화 ‘청년경찰’(2017) 개봉 당시에도 무대인사도 너무 가고 싶고 인터뷰도 하고 싶었는데 다 말리더라. 난 할 수 있는데, 아쉬웠다. 일이 줄어든 상태에서 내가 선택한 것은 그동안 하지 않았던 새로운 분야도 경험하는 거였다. 도자기 행사도 가보고 다큐멘터리도 나가보고 그랬다. 다큐멘터리를 했더니 내레이션 제안이 들어오고 그러다 ‘며늘아기’ 산후조리원‘까지 다 이어졌다. 그렇게 몰려오기도 하더라. 그러면서 극복했던 것 같다. 지금도 극복 중이다. 작품만 좋다면 다 하고 싶다. 그렇게 극복해 나가야하지 않을까 싶다.”

박하선이 연기를 향한 열정을 드러냈다. /(주)더쿱디스트리뷰션
박하선이 연기를 향한 열정을 드러냈다. /(주)더쿱디스트리뷰션

-연기 외적인 활동들이 또 다른 에너지를 줬을 것 같다. 
“맞다. 예능도 하고 라디오도 하고 있는데 다 다른 재미를 준다. 특히 라디오는 뭔가 더 순수한 느낌이다. 함께 하는 사람들도 되게 선하다. 그들에게 받는 에너지도 있고, 매일 고정으로 들어주는 분들이 팬이 되는 것도 힘이 된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하면 팬들이 많이 없어지는데.(웃음) 예능도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 재밌다. 그 덕에 좋은 분들을 만나서 좋다. 그러면서 연기에 대한 애정도 더 커졌다.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연기가 너무 하고 싶고 소중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연기에 대한 욕심이 느껴진다.  
“욕심부려서 될 일은 아닌 것 같다. 예전에는 나이 들어서도 해야지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버티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찾아주셔야 할 수 있는 일이더라. 어떻게 좋은 이미지로 가늘고 길게 갈 수 있을까 생각한다. 또래 배우들이 많이 사라졌다. 제일 걱정되는 부분이다. 더 조심해야지 생각도 많이 하게 된다. 사고 안 치고 열심히 잘 해야겠다는 생각. 너무 어렵다. 사고라는 게 나만 조심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어디서 뭐가 터질지 모르니까 무섭더라. 내가 한 게 아니더라도 누명을 쓸 수도 있으니까 하나하나 무섭더라. 운전할 때도 늘 ‘내 인생이 걸렸다’고 생각하며 조심한다.(웃음)

-‘첫번째 아이’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나. 또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이들에게 위로의 말을 덧붙이자면.
“진짜 안 지나갈 것 같은데 결국엔 지나가더라. 힘든 일은 왜 이렇게 몰려오는지 늘 살면서 느끼는데, 또 이게 지나면 얼마나 좋은 일들이 올까 생각도 한다. 그러다 안 좋은 시기가 오면 그것 역시 다 지나갈 거다. 나는 요즘 나이나 결혼과 출산 등에 갇히지 않으려고 한다. 아이 낳고 핫팬츠를 다 버렸는데, 신애라 언니가 핫팬츠를 입고 나왔는데 너무 멋있더라. 그래서 나도 다시 핫팬츠를 사고 있다. 하하. 너무 갇히지 말자, 그렇게 극복했으면 좋겠다. ‘첫번째 아이’가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영화를 보고 답답하다는 분들도 있고 비혼 장려 영화냐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게 누군가에게는 현실이고 공감을 줄 거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될 때가 있잖나. 그런 의미에서 정아와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조금의 위안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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