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그해 여름 요가 수업을 받다가 늘 해오던 아사나 동작이 점점 더 어려워진 듯 한 느낌을 받았다. 몸의 균형을 잡는 일이 하나의 도전이 되어버린 것이다. 두 다리와 등은 예전보다 덜 유연했고, 태양을 향해 몇 차례 절을 하고 나면 금세 숨이 가빠졌다. 그 이후로 내내 시련은 계속되었다.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갈 때면 거의 매달리다시피 난간을 꽉 붙잡아야 했고, 지하철 안에서는 자리를 양보해주는 사람이 점점 늘어났다.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모욕을 받았다고 여겨야 하는 건지 몰라 나는 주춤거렸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안과 의사는 나에게 백내장 수술 진단을 내렸다.// ‘백내장이라니! 완전히 노인 질환이잖아!’”

프랑스 출신으로 미국에서 문학교수, 작가, 전투적 페미니스트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은 『내가 늙어버린 여름』을 이렇게 시작하네. 이 책은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독립적이었으며 항상 독창적이고 체제 저항적이었던 한 여성이 갑자기 늙은이가 되어버린 ‘그 여름’ 이후의 다양한 육체적, 정신적 변화들을 담담하게, 때로는 익살맞게 써내려가고 있는 노화에 관한 씁쓸한 에세이지. 버스나 지하철에서 점점 더 자주 자리 양보를 받는 게 아직 어색하거나 하얗게 변해버린 자신의 백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용기가 나지 않는 노인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일세. 쿠르티브롱도 자기가 노인이 되리라고는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지만 결국 자신이 늙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거든.

나도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걸 2년 전 여름에야 실감했네. 지금 생각해도 유난히 힘들었던 여름이었어. 여느 해보다 자주 피곤했고, 쨍쨍 내리쬐는 햇볕이 무서워 집안에 있는 시간이 많았으며, 걷는 것도 예전 같지 않았네. 처음에는 무슨 큰 병에 걸린 게 아닌지 걱정도 많았지. 건강검진 결과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데 몸이 여기저기 아프니 불안할 수밖에. 벌써 한 생을 마감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인생이 참 허무하기도 했거든. 노화와 죽음에 대한 많은 글들을 읽기 시작한 것도 그 여름이야. 그러면서 결심했지.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노년을 건강하고 즐겁게 살고 가자고. 그래서 50년 이상 즐기던 술도 끊고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네. 그랬더니 놀랍게도 체중이 많이 줄고 혈압도 보통 사람들 수준으로 낮아지더군. 그래서 요즘은 큰 걱정 없이 노년을 실컷 즐기고 있네.

오래 살면 늙고 병든다는 것, 생명 있는 모든 존재들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자연의 이치일세.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생애과정에서 나만 예외이기를 바라는 게 욕심인 거지. 『장자』 「잡편」 양왕(讓王) 12장에 궁역락(窮亦樂) 통역락(通亦樂)이라는 말이 나오네. 막혀도 즐겁고 뚫려도 즐겁다는 뜻이야. 왜? 곤경에 빠지거나 형편이 좋아지는 것도 한서풍우(寒暑風雨), 즉 추위와 더위, 바람과 비처럼 자연 질서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라는 거지. 나이가 들어 몸과 마음이 늙고 병이 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하네. 그래서 요즘은 동사무소나 은행에서 젊은 직원이 ‘아버님’으로 불러도 별로 기분 나쁘지 않아. 오히려 내 자식도 아닌데 그렇게 불러줘서 고맙다고 웃으면서 받아들이지.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빈 노약자석이 보이면 주위 눈치 보지 않고 얼른 차지해서 목적지까지 당당하게 앉아 가네. 지하철 공짜로 타고 다니는 것도 기분 좋고.

노인(老人)이란 호칭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늙은이로 불리는 나이에 아직 비교적 건강한 걸 천지신명께 감사하며 살고 있네. 인간 수명이 엄청나게 길어진 건 사실이지만 아직도 국가가‘공식적인 노인’으로 인정하는 예순 다섯 살도 못 채우고 세상을 등지는 사람도 있거든. 그러니 고맙다고 할 수밖에.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지 모르지만, 검은색에서 은색으로 변했다가 이제 그 수마저 눈에 띄게 줄어든 백발, 몸 여기저기에서 늘어나고 있는 주름과 검버섯, 점점 심해지는 무릎 관절 통증, 이것들 모두 오래 산 사람에게 주는 자연의 선물로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지금보다 더 열심히, 그리고 더 즐겁게, 나만의 인생 이야기를 차근차근 써내려가고 싶네. 노인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종종 젊은 사람들에게 투명인간 취급을 받아도 씁쓸해하거나 서러워하지 않고, 노자의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라는 말 곱씹으면서 즐겁게 살 작정이야. 욕심을 줄이고 조심조심 사는 노인에게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얼마나 될까?

어떻게 살면 언제나 즐겁게 살 수 있냐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노인이 되면 ‘멀리’란 말과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네. 오세영 시인의 시 <원시(遠視)>의 한 구절처럼 “늙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낸다는/ 것”이고, “머얼리서 바라볼 줄을/ 안다는 것”임을 믿거든. 왜 많은 노인들의 눈이 원시(遠視), 즉 먼 곳은 잘 보여도 가까운 곳은 잘 보이지 않게 되겠나. 늙으면 멀리 떨어져서 볼 줄 알라는 자연의 깊은 뜻일 거야. 사람이든, 사랑이든, 정치든, 예술작품이든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그 대상에 함몰되어 제대로 볼 수 없을 때가 많네. 지혜라는 것도 멀리서 차분하게 볼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하고. 대상으로부터 떨어져 여유를 갖고 바라보는 거리두기가 코로나 시대에만 필요한 덕목이 아니란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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