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대회의실에서 열린 ‘IRA 대응 민관합동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있다. / 뉴시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대회의실에서 열린 ‘IRA 대응 민관합동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강준혁 기자  한국 정부가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이하 IRA) 대응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국내 기업과 정치권에 이어, 범부처 차원에서 미국을 직접 방문하는 등 우리의 입장을 반영하기 위한 외교전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이달 내 IRA 하위규정(가이던스)을 잠정 발표할 예정인 가운데, 최대한 교섭력을 끌어올리려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 정부·국회 초당적으로 한국차 차별 해소 촉구

‘IRA’는 기후변화 대응, 의료비 지원, 법인세 인상 등을 골자로 한 미국의 법이다. 급등한 인플레이션 완화를 위해 2022년 8월 16일 발효됐다. 특히 IRA는 기존에 미국에서 구입하는 모든 전기차에 부여되던 세액공제 혜택이 북미지역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한해서만 적용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더해 2023년부터는 재무부 가이던스에 따라 일정 비율 이상의 북미산 배터리 부품을 사용해야 한다고 규정, 국내 업체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받기 위해서는 전기차를 미국에서 조립해야 하고 미국산 배터리 소재가 일정 비율 이상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의 경우, 미국에서 판매하는 전기차는 모두 한국에서 만들어 수출하기 때문에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현대차그룹이 현재 당장 내년부터 한국산 전기차 수출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이에 정부는 8월 IRA가 발표되자마자 모든 채널을 가동해 선제적으로 미국 정부에 법 개정 및 행정조치를 요구했다.

미국 상무부 면담은 물론 미국무역대표부(USRT)에 서한을 보내 한국산 전기차가 세제혜택 대상국에 포함될 수 있도록 요청했고, 법안 발효 직후부터는 국내 경제와 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미국 정관계 설득에 나섰다.

9월초엔 미국 정부와 한미정부협상단 채널을 구축하기로 합의하고, 같은 달 16일부터 한미 정부 협상단 실무협의체를 가동시켰다. 11월 4일 미국과의 첫 협의를 시작한 EU보다 발 빠른 행보다.

윤석열 대통령은 물론 산업부 장관, 통상교섭본부장, 외교부 장관 등이 직접 미국 바이든 대통령, 해리스 부통령, 행정부 관료들과 미 의회 의원들을 만나 한국차에 대한 차별적 조항을 수정해야 한다는 한국의 입장을 강력하게 피력하기도 했다.

국회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8월 말 미국을 방문한 여야 국회의원단이 한국의 우려를 전달했고, 9월 1일에는 국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기반한 미국의 한국산 전기차 세제 지원 촉구 결의안’을 초당적으로 가결한 바 있다.

이도훈 외교부 2차관이 11일 오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한국과 미국의 경제외교 소통채널인 고위급 경제협의회(SED)에 참석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 외교부
이도훈 외교부 2차관이 11일 오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한국과 미국의 경제외교 소통채널인 고위급 경제협의회(SED)에 참석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 외교부

◇  美 국무차관 ‘IRA 건설적 협의 지속’ 재확인

특히 미국 재무부가 이달 내 IRA 하위규정(가이던스)을 잠정 발표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범부처 차원의 외교전은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13일 외교부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 양국은 IRA의 한국산 전기차 보조금 차별 문제와 관련한 한국의 우려와 의견을 다루기 위한 건설적 논의를 지속하기로 했다.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국무부에서 이도훈 외교부 2차관과 호세 페르난데즈 국무부 경제 차관이 주재한 가운데 진행된 제7차 한미 고위급 경제협의회(SED)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공동성명이 채택됐다.

이 차관은 IRA와 관련한 우리 정부 입장을 재차 설명하고, 미국 재무부 하위 규정에 우리 입장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협조를 당부했다. 이에 페르난데즈 차관은 “한국의 우려를 처음부터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모든 각도에서 들여다보고 있다”면서 “계속 수시로 협의해 나가자”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앞서 지난 5~8일(현지시간)에는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 행정부 고위 관계자를 만나 한국 측 입장 반영을 촉구하기도 했다. 당시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 윤관석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정부·국회 합동 대표단은 합동 아웃리치를 통해 미(美) 의회에 IRA 전기차 세액공제 문제에 대한 우리 측 우려를 강하게 전달했고, IRA 개정안 통과의 필요성도 적극적으로 제기했다.

당시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은 “앞으로도 IRA 가이던스에 우리 측 의견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해나가는 동시에 업계와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IRA 내 다양한 인센티브 혜택을 극대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지난달 미국 정부에 IRA 1차 의견서를 냈으며, 지난 2일에는 IRA 내 에너지 분야 세제 혜택 하위규정(가이던스)에 대한 2차 의견서를 제출했다. 정부는 2차 의견서에서 복잡한 요건이 적용되지 않는 ‘상업용 친환경차’의 범위를 폭넓게 해석하고 이에 대한 집중적인 세액공제를 제공해달라고 요구했다. 최근 미국의 IRA 시행 계획에 유럽연합(EU)도 크게 반발하면서 IRA 내 외국산 전기차 기업 차별 요소가 완화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장재훈 현대자동차 대표이사 사장이 지난 11월 29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대회의실에서 열린 ‘IRA 대응 민관합동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 뉴시스
장재훈 현대자동차 대표이사 사장이 지난 11월 29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대회의실에서 열린 ‘IRA 대응 민관합동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 뉴시스

◇ 장재훈 현대차 사장 “정부 노력에 감사”

특히 정부는 한국 기업들이 최대한의 인센티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동시에 ‘친환경 자동차 세액공제’ 항목의 법 개정을 위해 미국 정부와 의회를 대상으로 설득에 나서는 등 ‘투트랙’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 같은 한국 정부와 국회의 적극적인 대응에 미국 현지 언론들도 주목하고 있다.

미국 유력 매체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난 10월초 ‘미국 주요 동맹국들은 IRA에 분노하고 있다’며 ‘(IRA에) 가장 반발하는 국가는 한국’이라고 보도했고, 블룸버그도 10월 “유럽과 일본 등의 전기차 제조업체들도 보조금 차별 조항에 불만을 품고 있지만, 유독 한국이 솔직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내 기업들도 정부의 국내 기업 입장 반영 노력에 감사의 뜻을 나타냈다.

현대자동차 장재훈 사장은 지난 11월 29일 열린 ‘IRA 대응 민관 합동 간담회’에서 “IRA 발표 이후 정부에서 미국 행정부 및 의회 설득에 발 벗고 뛰었다”며 “다른 나라보다 가장 먼저, 또한 제일 적극적으로 미국 측에 문제제기를 하고 동맹국과의 공조를 이끌어 내고 있는 것에 감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정부, 국회는 물론 현대차 등 한국기업들이 원팀으로 힘을 합치며 미국 상원과 하원에서 친환경 자동차 세액 공제 3년 유예를 골자로 하는 법 개정 발의도 이끌어냈다. 업계에선 올해 내 법 개정은 힘들더라도, 중간선거 및 레임덕 의회라는 정치적인 제약 속에서 한국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미국 의회에서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는 수정 법안 발의를 이끌어냈다는 점 등은 의미가 크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0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중기위) 회의실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정부 IRA법 대응일지' 관련 질의를 듣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뉴시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0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중기위) 회의실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정부 IRA법 대응일지' 관련 질의를 듣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뉴시스

◇ 상업용 친환경차 세액공제 이슈화 주목

다른 한편으로 정부는 미국 재무부 가이던스에 한국 기업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의견을 반영시키기 위해 전방위적 노력을 펼치고 있다.

정부는 자동차·배터리·소재·에너지·철강 등 관련 업계 간담회, 통상 전문가·법조계 자문 등 폭넓은 의견 수렴을 거쳐 친환경차 세액공제 이행에 3년의 유예기간 부여, 상업용 친환경차 범위 확대, 배터리 요건 구체화 등 법안의 세세한 부분까지 담은 의견서를 두 차례에 걸쳐 제출했다.

특히 미국 내 생산 조건이 적용되지 않는 ‘상업용 친환경차 세액공제’를 한국 기업들이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상업용 친환경차’의 범위를 확대하고, 집중적인 세액공제를 제공해 줄 것을 요청했다.

미국 내에서도 한국 정부의 ‘상업용 친환경차’ 관련 요구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 6일 ‘자동차회사들과 한국이 상업용 EV 세액공제 적용 촉구’라는 제목의 워싱턴발 기사에서 “많은 자동차회사들과 한국정부가 의회에서 승인된 기후 법안(Climate Bill)에 대한 우려를 완화하는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EV 구매를 촉진하기 위한 방안으로, 바이든 행정부에 상업용 전기 자동차 세금 공제를 적용할 것을 축구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한국 정부는 재무부에 상업용 친환경 자동차’를 광범위하게 해석하여 우버나 리프트 등 차량공유 기업에서 사용하기 위해 구입한 렌터카, 리스 차량을 포함할 것을 촉구했다”고 덧붙였다.

업계에선 일단 상하원을 통과해 발효된 법안을 개정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미국 정부와 의회를 설득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 산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재무부의 가이던스에 집중해 한국 기업들이 최대한의 혜택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재무부는 8월 발효된 IRA의 세부 규정을 명확히 하기 위한 하위규정(가이던스)을 수립 중이다. 지난 11월 초와 이달 초 두 차례에 걸쳐 각 부문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쳤고, 올해 말 이를 발표할 예정이다.

 

근거자료 및 출처
Hyundai Lobbies US to Ease EV Rule That Hurts Foreign Carmakers
2022년 10월 19일 블룸버그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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