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의 뿔 얻기 위한 인간들의 무분별한 밀렵, 멸종 문턱
케냐 정부·과학자들, 복원사업 전력… 최근 인공 배아 배양 성공 희소식

‘멸종(Extinction)’. 지구상에 존재하던 어떤 종이 모종의 이유로 세계에서 사라져 개체가 확인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지구의 입장에서 멸종은 항상 일어나는 작은 사건일 뿐이다. 지구의 생명역사가 시작된 38억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생명체 대부분이 사라지는 ‘대멸종의 시대’가 존재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멸종의 원인이 기존의 ‘자연현상’에 의한 것이 아닌, 인간이 직접적 원인이 된 멸종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오염, 불법 포획부터 지구온난화까지 우리 스스로 자초한 결과물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이제 지구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 스스로 자초한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있는가.” [편집자 주]

북부흰코뿔소(사진)는 한때 사하라 이남 동부, 중부 아프리카 등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서 번성했던 초식동물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제 아프리카의 ‘전설’이 되고 말았다. ‘인간’이라는 흡혈귀들에 의해 멸종되고 만 것이다. / BioRescue
북부흰코뿔소(사진)는 한때 사하라 이남 동부, 중부 아프리카 등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서 번성했던 초식동물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제 아프리카의 ‘전설’이 되고 말았다. ‘인간’이라는 흡혈귀들에 의해 멸종되고 만 것이다. / BioRescue

시사위크=강준혁 기자  1954년 리처드 매드슨이 발표한 공포소설 ‘나는 전설이다’ 속 세상에선 흡혈귀가 인간을 멸종시키고 지배한다. 마지막 인간 생존자인 주인공 네빌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흡혈귀에게 죽고 만다. 그는 죽기 직전 ‘이제 내가 전설이다.(I am Legend)’라고 읊조린다. 과거 지구에서 가장 흔한 존재였던 인간이 이젠 전설 속에서 나올법한 존재가 됐음을 알리는 말이다.

이 소설 속 주인공과 비슷한 처지의 동물이 있다. 바로 ‘북부흰코뿔소’다. 북부흰코뿔소는 한때 사하라 이남 동부, 중부 아프리카 등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서 번성했던 초식동물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제 아프리카의 ‘전설’이 되고 말았다. ‘인간’이라는 흡혈귀들에 의해 멸종되고 만 것이다.

◇ 밀렵과 전쟁에 절멸 직전에 몰린 북부흰코뿔소

흰코뿔소의 아종인 북부흰코뿔소는 코끼리를 제외하면 가장 거대한 육상동물이다. 몸길이 5m에 몸무게는 최대 4톤에 이른다. 이들은 하루의 절반을 먹고 이동하는데 보낸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낮에는 그늘에서 휴식을 취한다. 또 다른 특징은 일반 코뿔소들과 달리 사회적 유대감이 강하다는 점이다. 북부흰코뿔소는 보통 어미와 새끼로 이뤄진 2~3마리가 무리 생활을 한다.

재미있는 점은 북부흰코뿔소의 상징인 거대한 뿔이 사실은 뼈로 이뤄진 진짜 뿔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피부 세포가 쌓여 만들어진 일종의 ‘각질’ 덩어리다. 때문에 평생 지속적으로 자라나며, 부러지거나 잘라내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회복된다.

2018년 3월 19일 생을 마감한 최후의 수컷 북부흰코뿔소 ‘수단’. / Webecoist
2018년 3월 19일 생을 마감한 최후의 수컷 북부흰코뿔소 ‘수단’. / Webecoist

문제는 이 ‘가짜 뿔’이 북부흰코뿔소의 멸종을 불러온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1900년대부터 고가의 뿔을 얻기 위해 무분별한 밀렵이 자행된 것이다. 북부흰코뿔소의 뿔은 류머티즘, 해열제 등의 전통의약품 제조 및 장식품 제작에 사용된다. 이때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코뿔소 뿔의 가격은 1kg에 5만4,000달러 정도의 고가다. 금 1kg이 약 8,850만원임을 감안하면 얼마나 비싼 가격에 팔리는지 예상할 수 있다.

밀렵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지역의 불안정한 정세도 북부흰코뿔소의 생존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쳤다. 주요 서식지였던 남수단,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끊임없는 내전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각 나라의 정부가 북부흰코뿔소에 대한 밀렵 단속 및 보호 조치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세 나라 모두 여행위험국가로 지정되면서 국제 연구자 및 보호운동가들의 접근도 사실상 차단되고 말았다.

이 같은 악재가 겹치면서 북부흰코뿔소의 개체수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따르면 1960년대 2,360마리의 개체수가 남았던 북부흰코뿔소는 1970년도에는 500여마리까지 줄었다. 30년이 지난 2006년, 아프리카 대륙에서 북부흰코뿔소는 단 4마리만이 살아남게 됐다.

그리고 2018년 3월 19일, 케냐 라이키피아 국립공원 내 올-페제타(Ol-Pejeta) 보호구역에서 살던 마지막 북부흰코뿔소 수컷 개체인 ‘수단’이 45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2017년 오른쪽 다리에 발생한 염증 악화가 원인이었다. 수단의 죽음으로 자연 환경에서 살아있던 북부흰코뿔소 수컷 개체는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암컷 개체 역시 수단의 딸 ‘나진(Najin)’과 손녀인 ‘파투(Fatu)’ 두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2016년 9월 8일 목요일 캘리포니아 에스콘디도 공원에서 불법 거래된 코뿔소 뿔을 불태우는 모습. / 뉴시스, AP
2016년 9월 8일 목요일 캘리포니아 에스콘디도 공원에서 불법 거래된 코뿔소 뿔을 불태우는 모습. / 뉴시스, AP

◇ “아직 희망은 남았다”… 유전자과학, 북부흰코뿔소 복원의 불꽃을 지피다

북부흰코뿔소가 완전한 멸종 직전에 이르면서 케냐 정부에선 복원 사업에 전력을 다했다. 보관하고 있던 수단의 정자 샘플을 나진과 파투에게 인공 수정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과학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멸종의 문턱에서 북부흰코뿔소를 끌어내기 위한 갖은 노력을 이어갔다. 2020년 국제 연합 연구팀 ‘바이오레스큐(BioRescue)’는 나진과 파투의 난자 10개를 채취하는데 성공했다. 이 난자는 극저온 냉동과정을 거쳐 이탈리아 아반테아 연구소로 옮겨졌다. 각국 과학자들은 이 난자들과 수단의 정자를 인공 수정해 배아를 생성한 다음, 남부흰코뿔소의 자궁에 이식해 새끼를 낳게 한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올해 12월, 또 다른 희망의 불꽃이 다시금 피어올랐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북부흰코뿔소의 인공 배아를 배양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독일 라이프니츠 동물원 및 야생 동물연구소(IZW)와 일본 오사카대학교 의과대학원 등으로 구성된 국제 연구팀이 북부흰코뿔소의 피부조직에서 배양한 유도만능줄기세포(IPSCs)에서 ‘원시생식세포(PGCLCs)’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불법 거래되는 코뿔소 뿔. / Reuters
불법 거래되는 코뿔소 뿔. / Reuters

연구팀은 “멸종 위기에 처한 대형 포유류 종의 원시생식세포를 줄기세포에서 성공적으로 만들어낸 것은 이번 연구가 처음”이라며 “수단의 딸인 나진과 손녀 파투 모두 나이가 점점 많아지면서 배아를 낳기 힘들어지는 상황에서 인공 난자를 만들 수 있는 원시생식세포 배양에 성공한 것은 북부흰코뿔소 복원 연구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연구에 참여한 베라 지비차 독일 막스 델브뤽(Max Delbrück) 분자의학센터 연구원은 “연구팀이 배양에 성공한 원시세포는 성숙한 생식 세포에 비해선 아직 상대적으로 작다”며 “아직 세포가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적절한 조건을 찾는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12월 9일자로 게재됐다.

아울러 북부흰코뿔소의 친척인 흰코뿔소나 검은코뿔소 보호를 위해 밀렵 단속도 강화되는 추세다. IUCN이 8월 발표한 ‘SSC 아프리카 코뿔소 밀렵’ 보고서에 따르면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여러 아프리카 국가들이 강력한 밀렵 단속 정책을 펼친 결과, 코뿔소 밀렵률이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IUCN 측 조사에 따르면 2016년~2017년 기간 동안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불법 거래된 코뿔소 뿔은 1,832개였으나, 2020년엔 932개로 크게 줄었다.

IUCN은 “코뿔소 뿔의 불법 거래 감소는 아프리카 국가의 규제 및 법 집행 노력이 강화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며 “하지만 불법 거래 시장이 가장 큰 국가는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어 지속적이고 일관된 모니터링이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근거자료 및 출처

PLURIPOTENT STEM CELLS FROM THE NORTHERN WHITE RHINOCEROS: BIORESCUE MOVES ONE STEP CLOSER TO ARTIFICIAL EGG CELLS

2022. 04. 04  국제연합 연구팀 ‘바이오레스큐(BioRescue)’

BIORESCUE CREATES TWO NEW EMBRYOS IN RACE AGAINST TIME TO PREVENT THE EXTINCTION OF THE NORTHERN WHITE RHINOCE

2022. 02. 17  국제연합 연구팀 ‘바이오레스큐(BioRescue)’

Rhinos on the rise in Africa but Northern white nears extinction

2008. 06. 16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Robust induction of primordial germ cells of white rhinoceros on the brink of extinction

2022. 12. 09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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