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북한학 박사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북한학 박사

북한의 함북 길주 지역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시름시름 앓는 이들이 나타났다고 한다. 가만히 있어도 진땀이 나고 두통 증세가 발현됐지만 병원에선 별다른 진단을 할 수 없다는 답을 들어야 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문(喪門)이 꼈다’거나 ‘귀신병이 들었다’는 수군거림이 이어졌다. 문상객에게 죽은 사람의 귀신이 붙어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는 살(煞)이 들었다는 얘기에 마을 주민들이 불안에 떨었다는 것이다.

이들 지역에 살다 탈북한 주민들은 한국에 정착한 뒤에야 그것이 풍계리 핵실험장의 방사능과 관련 있을지 모른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2006년 10월 첫 실험 이후 모두 6차례에 걸쳐 핵 실험이 있었던 터라 피폭은 물론 지하수를 통한 오염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관련 단체와 전문가 지적이 이어졌다. 

2017~2018년 길주에서 살다온 주민 40명에 대한 정부 차원의 조사가 벌어져 9명에게서 이상이 감지됐지만 석연치 않은 이유로 유야무야 됐다. 당시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 덮은 것이란 의혹도 제기됐다.

그런데 지난달 말 청년 활동가와 전문가들이 의기투합한 보고서가 나왔다. 풍계리 핵실험장의 방사성 물질이 지하수를 오염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경고한 내용이다. 북한의 인권을 추적·감시해온 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은 이 보고서에서 “풍계리 일대의 주민 54만 명이 직간접적인 방사능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해당 지역 농산물도 오염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이들은 풍계리 인근 8개 시군 지역에 거주하다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881명 모두에 대해 피폭 검사를 실시해 결과를 공개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풍계리 핵 실험장은 해발 2,205m인 만탑산 일대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발원하는 남대천은 길주읍을 지나 김책시와 화대군 사이 지역을 거쳐 동해로 흘러든다. 문제는 핵실험 과정에서 나온 방사능이 지하수를 통해 유출·확산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단단한 화강암 구조로 돼있다고 하지만 지축을 흔들 정도의 지진을 동반하는 핵 실험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산 피로 증후군(Tired Mountain Syndrome)’이 나타났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2019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 나온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확과 교수는 “화강암이지만 지하수가 실핏줄처럼 연결돼 있다”며 우려를 제기한 바 있다.

국제사회와 전문가·기구도 풍계리 핵 실험장의 방사능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 과학자 단체인 ‘참여 과학자 모임(Union of Concerned Scientists)’은 지난 1일 “주민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공기와 지하수를 통한 방사능 누출 가능 경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하 핵 실험장의 지질학적 요인과 건축의 세부적인 사항이 매우 중요하다”며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 등의 역할을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대응은 미온적이다. 한반도에서의 핵 실험과 방사능 오염 문제인데도 마치 딴 나라의 일인 것처럼 무관심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다. 이런 자세는 일본의 원전 사고 방사능 오염수 방출 등에 민감하게 대응하던 모습과는 차이가 난다. 일본보다는 북한 지역의 방사능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하고 오염수가 끼칠 피해도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다른 잣대와 대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이런 이상한 대응 움직임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환경문제에 지나칠 정도로 과민반응을 보이면서 시위 등으로 공사 진척을 방해하는 바람에 도로와 터널 공사가 지연되고, 이로 인해 국민들이 입는 피해 또한 만만치 않다는 게 드러난 사례도 적지 않다. 하지만 북한의 환경훼손이나 오염에 대해 환경단체 및 관련 인사들은 함구한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동서해를 연결하는 대운하를 건설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섰지만 그에 반대 목소리를 낸 우리 시민단체나 환경 관련 NGO(비정부기구)는 찾아볼 수 없다. 과거 운하가 한반도의 하천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환경을 파괴할 것이라면 거센 반대를 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물론 북한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우리 정부 당국뿐 아니라 NGO가 이런저런 입장을 표명한다고 해서 별다른 변화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환경이나 생태 문제 등은 남북한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 한반도 전체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고, 결국 하나된 통일 대한민국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서다.

특히 그것이 우리 동포인 북한 주민들에게 치명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라면 더욱 관심을 갖고 주시해야 한다. 풍계리와 인근 지역 출신 탈북민의 사례에서 우리는 그들이 결국 우리의 이웃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확인하게 된다. 이런저런 예단을 갖고 갑론을박하기 보다는 이상증세나 고통을 호소하는 목소리에 기를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북한 풍계리의 방사능 문제는 우리 삶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산으로 위장 수입된 북한산 버섯 등 농산물은 허술한 반입 절차를 거쳐 우리 식탁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실제 지난 2015년에는 정부가 중국산으로 둔갑해 북한으로부터 수입된 능이버섯에서 기준치 9배 이상의 방사성 세슘 동위원소가 검출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보고서를 펴낸 전환기정의워킹그룹 측이 “농수산물과 송이버섯 등 지역 특산물의 밀수와 유통으로 북한 주민뿐 아니라 인접한 중국과 한국·일본의 국민들도 위험에 처할 수 있다”며 경로 조사를 촉구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번에는 심도 있고 종합적인 조사와 대책 마련을 통해 북한 핵 실험의 위험성과 이에 대한 한국과 국제사회의 우려를 북한 당국에 전달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7차 핵실험 도발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상황이라 더욱 면밀한 대응전략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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