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요즘 사진 공부하는 선생님과 함께 대학 친구들의 수제(手製) 사진집을 만들고 있네. 지난 몇 년 동안 함께 여행 다니면서 담았던 친구들의 사진으로 책을 만드는 일이야. 사진 속 얼굴들을 보면서 나에게 친구란 어떤 존재인지 묻고 또 묻고 있네. 인생이라는 멀고 험한 길을,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면서 함께 걸어가는 길동무. 각자 출발점과 종점은 다르지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터벅터벅 걸어도 싫증나지 않는 사람. 함께 걷다 보면 먼저 지친 이도 있고 중간에 그만 멈추려고 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럴 때마다 서로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존재가 친구라고 믿네.

이번 사진집에는 일곱 명의 친구 사진이 들어가는데, 그 중 한 명은 6년 전에 세상을 떠났네. 그의 임종 자리에 함께 했던 한 친구가 했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구먼. “친구야! 고맙다. 네가 우리 친구여서 모두 행복했다.” 이보다 더 멋진 작별 인사가 있을까. 그냥 옆에 있기만 해도 좋은 존재, 오래 길들여져서 옆에 없으면 마음이 허전해지는 존재가 친구일세. 그러니 오래 옆에 있어준 친구에게는 무조건 고맙다고 말해야 하네. 노인이 되면 그런 친구의 존재가 더 소중해지지. 그래서 “우정을 빼고 나면 삶에 중요한 것은 별로 없다”는 볼테르의 말이 실감나게 다가오는 때가 노년이야.

6년 전 한 친구를 그렇게 보내고 나서 옆에 있는 친구들을 찍기 시작했네. 대학에서 만나 오랫동안 옆에 있는 것만으로 많은 즐거움을 주었던 친구들에게 사진으로나마 보답하고 싶었거든. 내 삶을 풍요롭게 해주었던 친구들의 모습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 우리 모두가 더 늙었을 때, 오랫동안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친구들 사진 한 장 한 장 넘겨보는 행복한 시간도 갖고 싶었지. 언젠가 우리 모두 이 세상에 없을 때, 아들 딸과 손자손녀들이 아버지와 할아버지 사진 보면서 감사와 추모의 시간을 갖게 해주고도 싶었고. 그래서 지난 몇 년 동안 우정이 담긴 사진들을 꾸준히 찍었던 거지.

그런 목적을 갖고 사진을 찍으니 카메라 뷰파인더로 바라본 친구들이 모두 아름답게 보였네. 물론 예순을 넘긴 노년의 얼굴이라 잔주름도 있고, 머리는 대부분 백발이었지만, 내 눈에는 모두 우리가 처음 만났던 대학 1학년 때의 모습 그대로였어. 그래서 뷰파인더로 친구들을 보면서 혼자 중얼거렸지. “친구야! 우리는 아직 청춘이야. 우리의 영혼을 춤추게 하는 열정이 살아있는 한 우리는 항상 젊은 청춘인 거야. 내 말 맞지?”그러면 모두 웃는 얼굴 로 “그래!”라고 대답하는 것 같아서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몰라.

흔히 친구는 옛 친구가 좋고 옷은 새 옷이 좋다고 말하지. 친구는 오래 묵을수록 좋다는 걸 노인이 되니 더 잘 알겠네. 강산이 다섯 번 바뀌는 동안 한 달에 한 번 만나 산에 가고, 연말 모임과 애경사에는 부부 동반해서 참석하고, 여름이면 함께 놀러가는 친구 모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만남이 아닐세. 그런 점에서 우리는 오래 묵은 친구야. 고향도 다르고 취향도 다른 사람들이 대학에서 만나 어떻게 오랫동안 그런 우정을 나눌 수 있었을까? 이해타산이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관계였기 때문에 가능했었네. 가끔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철없는 행동을 해도 허물을 나무라지 않고 묵묵히 받아들여주는 관대함이 우리들 사이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인디언 말로 친구는 ‘나의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라고 한다네. 기쁨뿐만 아니라 슬픔도 함께 나눌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에 노년에도 우린 여전히 소중한 친구라는 걸 잊지 말세.

각자도생(各自圖生)하느라 친구 사귀는 일까지 뒤로 미루고 있는 청춘들에게 영국의 경영사상가인 찰스 핸디(Charles Handy)가 죽기 몇 달 전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들려주면서 마치고 싶네. “성공에 목마른 젊은이들에게 저는 진심으로 조언해요. 살아가는 것의 대부분은 거의 우정에 관한 것이라고. 돈과 사회적 지위보다 좋은 친구가 곁에 없는 것을 걱정하라고.”(김지수 인터뷰집, 『위대한 대화: 인생의 언어를 찾아서』, 81쪽) 이게 어디 젊은이들에게만 소중한 조언일까.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성취가 우정이라는 걸 늘 가슴에 새기면서 살길 바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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