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히어라가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로 전 세계 시청자를 매료했다. / 넷플릭스
배우 김히어라가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로 전 세계 시청자를 매료했다. / 넷플릭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최고의 발견으로 꼽히는 배우 김히어라는 연극과 뮤지컬, 드라마를 넘나들며 탄탄히 내공을 쌓아온 14년 차 배우다. 2009년 뮤지컬 ‘살인마 잭’을 시작으로 다수의 뮤지컬‧연극 무대에 오른 그는 유니크한 매력과 정형화되지 않은 연기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드라마 ‘배드 앤 크레이지’(2021)를 통해 매체로 활동 반경을 넓힌 김히어라는 지난해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탈북민 계향심 역을 맡아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눈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를 만나 더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제대로 각인시키고 있다.  

‘더 글로리’는 유년 시절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한 여자 동은(송혜교 분)이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와 그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다. 지난 10일 파트2가 공개된 뒤 단 3일 만에 넷플릭스 글로벌 TOP 10 TV(비영어) 부문 1위뿐 아니라 영어와 비영어, TV와 영화 부문을 통틀어 전체 1위에 오르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김히어라를 향한 호평도 뜨겁다. 극 중 동은에게 끔찍한 학교폭력을 행했던 가해자 집단 중 한 명인 사라를 연기했다. 사라는 목사의 딸이자 화가로, 실상은 심각한 마약 중독을 겪고 있는 인물이다. 

김히어라는 초점 없는 눈동자와 두서없는 말투, 나른한 제스처와 시선 처리 등으로 약물에 점점 중독돼 가는 인물의 모습을 디테일하게 표현해 호평을 이끌어 냈다. 특히 환각에 빠진 모습이나 친구의 배신에 살인미수를 저지르는 등 수위 높은 장면도 완벽 소화하며 그동안 쌓아온 연기 내공을 폭발시켰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김히어라는 ‘더 글로리’를 두고 “그동안 살았던 것에 대한 보상을 받은 느낌”이라며 애정을 드러내면서도, “체하지 않고 건강하게 잘 넘기려고 한다”며 쏟아지는 관심에도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으려는 모습이었다. 

‘더 글로리’로 존재감을 뽐낸 김히어라. / 넷플릭스
‘더 글로리’로 존재감을 뽐낸 김히어라. / 넷플릭스

-반응이 뜨겁다. 이렇게까지 잘 될 거라고 예상했나.

“잘 될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이 정도는 예상 범위 안에 없었다. 그냥 드라마 잘 봤다는 이야기 정도만 듣겠거니 했는데 글로벌 1위를 하고,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그것만 보고 있고 그럴 줄은 정말 몰랐다. 잘 되면 이렇게 잘 되는 거구나 싶더라. 이런 일이 처음 있고 반응을 피부로 느끼다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 개인의 삶에도 변화가 있다면. 

“일단 ‘나’라는 배우를 사람들이 많이 인식하고 있다는 거다. ‘더 글로리’ 오디션을 봤을 때만 해도 노출된 게 많지 않았다. 공연을 했고 나쁘지는 않은데 어떻게 비칠지 모르는 상태로 오디션을 봤다면, ‘더 글로리’ 이후에는 거의 모든 분들이 나의 작품을 봤고 나라는 배우에 대한 존재감이 생겼달까. 지나가는 분들도 많이 알아봐 주시고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오디션 과정이 궁금하다. 어떻게 ‘더 글로리’에 참여하게 됐나. 

“캐스팅 디렉터가 내 프로필을 갖고 있었다. 새로운 인물을 찾고 있었다고 하더라. 오디션을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김은숙 작가님과 안길호 감독님은 많은 배우들이 함께 하고 싶은 분들이잖나. 그분들이 내 이미지를 보고 불러 주고, 내 이름을 아는 것만으로도 귀한 시간이었다. 오디션에 갔을 때 대본이 유출되면 안 되니까 5장 분량의 부분만 있었다. 사라부터 해정, 동은, 연진은 물론, 잠깐 나오는 여자 역할이 많았다. 누가 주인공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어떤 내용인지 모르는 상태였다. 사라 장면은 명오 여권을 찾는 신이었는데 말투가 귀엽게 느껴졌다. 어떤 역할인지 모르다 보니 말투만 보고 러블리하고 귀여운 친구가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연진의 신은 기상캐스터 후배한테 ‘언제까지 어릴 것 같니’라고 하는 장면이었는데, 그걸 하는데 입에 착착 붙는 거다. 그래서 어떤 장면을 해보겠냐고 했을 때 연진의 신을 하겠다고 하고 오디션을 봤다.”  

사라를 연기한 김히어라. / 넷플릭스​
사라를 연기한 김히어라. / 넷플릭스​

-하지만 사라 역할이 주어졌다. 감독이 어떤 이야기를 했나. 

“우선 불러서 축하를 해주셨다. 축하를 받으면서 기분이 정말 좋으면서도 ‘왜 나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큰 역할을 주시냐고 했더니, ‘오해하지 말고 들어’라면서 눈과 눈빛의 강렬함, 몽환적인 느낌이 우리가 생각하는 사라와 적합했다고 하시더라. 욕이 아니라고 강조하시면서 눈빛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웃음) 내가 갖고 있는 기본기들이 사라를 만들어낼 때 좋을 거라는 판단을 하셨다고 했다. 감독님도 고민을 하긴 하셨다고 했다. 노출된 게 없다 보니 잘 끌고 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믿고 가보자는 마음으로 기회를 주셨다.”

-김은숙 작가는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연기하는 배우 입장에서는 캐릭터를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접근했나. 

“어려웠던 부분인데 결과적으로 감독님과 약속한 것은 너무 이유를 찾지 말자는 거였다. 가해 행동에 대해 정당화를 시키지 말자. 나도 초반에는 사라가 왜 이렇게까지 하게 됐을까 계속 분석했다. 그러다 감독님과 이유를 찾지 말고 그냥 나쁜 애는 나쁜 애라고 생각하고 연연하지 말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이유를 찾기보다 작가님 써준 대사에 전적으로 기대어서 그 대사를 진짜로 믿고 하려고 노력했다. 가해자인 것을 떠나서 사라라는 캐릭터가 나라는 배우가 표현했을 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을지 고민했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산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라의 양면성이나 중독된 습관들 등 배우로서 성장하게 하는 것들에 집중해서 훈련했다.”

-마약에 중독된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준비했나.  

“넷플릭스 시리즈나 다큐멘터리를 참고했다. 실제 마약 중독자였다가 극복하고 마약에 중독된 청소년들을 위해 봉사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이 찍은 다큐멘터리가 도움이 많이 됐다. 그림도 많이 찾아봤다. 중독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그린 그림, 형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또 그들이 단약 상태일 때 어떤 그림을 어떻게 날카롭게 그리게 되는지를 보면서 연구했다. 초반에는 그런 습관들을 조금 줄이고 점차적으로 표현하자는 감독님의 제안이 있었다. 그래서 갈수록 화장도 아예 안 하고 다크서클도 그리면서 변화를 줬고, 뇌가 점점 굳어지고 생각의 회로가 100개였던 사람이 8개 정도로 줄어든다고 해서 말을 버벅거리고 느리게 하려고 했다.  말과 말 사이에 버퍼링을 많이 넣으려고 했다. 과한 행동이나 습관으로 표현하면 신이 방향성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연기적으로 붙이려고 했다.” 

수위 높은 신도 완벽 소화한 김히어라. / 넷플릭스​
수위 높은 신도 완벽 소화한 김히어라. / 넷플릭스​

-네덜란드 보내달라고 떼를 쓰는 장면도 화제가 됐다. ‘금쪽이’라는 수식어까지 얻었는데. 

“나도 봤다. ‘오은영 선생님이 포기한 금쪽이’라고 하더라. 하하. 그 장면은 목표가 확실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빨리 나가야 하는데 엄마, 아빠가 움직여주지 않은 상황에서 떼를 쓴다는 설정이었는데, 대본에 ‘마치 엑소시스트의 모습 같다’는 지문이 있었다. 그 지문에 딱 꽂혔다. 사탄에 들린 것처럼 악을 지르면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뒤집어 까서 한 것도 엑소시스트처럼 기괴하게 보기 위해서 한 거다. 사탄처럼 한 건데 귀엽다고 하더라.(웃음)”

-사라가 극 중 화가인데, 배우도 직접 그린 그림으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이런 특기가 사라 캐릭터에 반영됐나.     

“원래 대본에 그렇게 돼있었다. 아마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모르셨던 것 같다. 최종 오디션에서 욕심이 나다 보니 뭔가 더 말해야 할 것 같더라. 떨어지더라도 후회하지 말자는 생각에 전시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림을 그리는데 그림체가 사라와 비슷한 면이 많다고 했더니 감독님이 그림을 보여줄 수 있냐고 해서 몇 개 보여드렸다.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그날 8부 대본을 받았다. 극에 100점 정도 그림이 나오는데 3점은 내가 그렸다. 처음 제안을 받고 많이 조사하고 연구해서 그림을 그렸는데, 감독님이 너무 디테일하다고 막 칠하는 것을 원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알겠다고 하고 다시 했는데 욕심에 자꾸 뭔가 더 그리게 되는 거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다른 분이 베이스로 스케치를 해서 그 위에 칠하는 느낌으로 그림을 그렸다.”

-다른 가해자들에 비해 사라의 결말이 약하다는 의견도 있는데. 

“사라는 그냥 감옥에 갔다 오면 되는 거 아니냐, 너무 약하지 않냐는 반응을 봤다. 물론 모든 캐릭터가 전재준처럼 한 방씩 먹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사라가 (감옥에서) 나와서 감당해야 할 것들이 훨씬 더 지옥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감옥에 있는 동안 약을 끊을 수밖에 없었겠지, 하지만 과연 다시 손대지 않았을까 의문이고 모두가 사라를 포기했을 텐데 자신의 의지만으로 살아낼 수 있을까. 이것이 동은이 생각한 결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김히어라가 사라의 결말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 넷플릭스​
​김히어라가 사라의 결말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 넷플릭스​

-김은숙 작가의 작품답게 인상적인 대사들도 많았다. 그중에서 사라의 캐릭터성을 한 번에 알 수 있게 하는 대사를 꼽자면.  

“일단 첫 번째로 ‘너 천국 못가, 난 갈 수 있어, 난 회계했거든, 구원받았거든’이라는 대사다. ‘띵’했다. 사라가 믿고 사는 세계가 동은의 입장, 시청자의 입장에서 보기에 기가 차는 느낌이랄까. 또 내가 정말 좋아하는 대사는 ‘헤브 어 나이스 데이다, XXX아’다. 굉장히 담백하고 ‘사라’스럽다고 생각했다.”

-감독이 말했듯 사라 역할을 따낼 정도로 눈빛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외모적인 강점은 무엇인가.   

“나도 내 얼굴을 카메라 앞에서 자세히, 여러 각도로 보는 게 처음인데, 유니크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어떤 메이크업이냐 헤어냐에 따라 얼굴이 굉장히 바뀌더라. 도화지 같다고 해야 할까. 배우로서 이목구비가 예쁘다고 할 수 없지만 유니크한 면들이 나를 여러 색깔로 만들어주는 것 같다. 그래서 사라를 만났을 때도 예뻐 보이고 싶다기 보다 더 망가져서 내가 어떻게 보일지 실험해 보고 싶었다. 물론 눈썹까지 탈색한 내 모습을 보고 놀라긴 했지만, 내 얼굴이 이렇게도 생겼구나 이렇게도 보일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재미를 느꼈다.”

-배우들과 끈끈한 팀워크를 과시하기도 했다. 촬영은 어땠나. 

“서로의 연기를 보면서 매력을 느낀 듯하다. 자기 일을 잘 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매력을 느끼잖나. 모든 배우들이 다 열심히 하고 잘 하는 모습을 보면서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존경이 있었다. (임)지연이가 리더십이 있어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자리를 만들면 (박)성훈 오빠가 예약하고 정리를 하고 (김)건우가 마무리를 한다. 그렇게 몇 번 모이게 되면서 잘 맞는구나 느꼈다. 비슷한 점은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릇이 작지 않은 느낌이랄까. 작품이 잘 됐을 때 이것들이 오롯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들뜬다거나 혹은 너무 바닥으로 가거나 하지 않고 잘 감당하고 차분하게 다음 행보를 위해 건강하게 나아가자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냥 즐기고 건강하게 잘 넘기자, 잊힐까 너무 두려워할 필요 없고 자연스럽게 지나가자고 했다. 체하지 않고 가다 보면 또 이런 순간이 오겠지 하면서 서로 의지하는데 너무 건강하고 좋더라. 매체 경험이 많이 없다 보니 쏟아지는 관심에 놀라고 대본도 많이 들어와서 어떤 좋은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됐다. 그런데 지연이도 그렇고 (송)혜교 언니도 그렇고 너무 많은 응원과 지지를 해줬다.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감사하다.”

김히어라가 작품의 의미를 짚었다. / 넷플릭스​
김히어라가 작품의 의미를 짚었다. / 넷플릭스​

-재미뿐 아니라, 묵직한 메시지까지 담았다. 특히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경각심을 높였다는 평을 얻고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정말 좋다. 시청자로서 ‘더 글로리’를 봤을 때 동은과 다른 친구들이 안쓰러웠다. 학교폭력뿐 아니라 가정폭력도 나오고 선생님의 폭력, 성희롱, 소외된 계층에 대한 시선 이런 것들이 되게 많이 나오잖나. ‘더 글로리’를 통해서 지금을 살아내고 있는 피해자, 아이들, 청소년들이 용기를 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또 나를 포함한 어른들이 위험에 처한 아이들을 봤을 때 이제는 그냥 넘어갈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선생님 혹은 부모들이 아이의 SOS를 놓치지 않기 위해 레이더를 더 세우지 않을까. 전보다 이후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해자로 연기했지만 절대 가해자의 입장에서 연기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임했다. 시청자들이 피해자들의 마음에서 용기를 얻길 바랐고 그렇게 연기하자고 나눴다. 다행히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고 느끼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하고 좋다.” 

-‘더 글로리’는 배우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 

“‘더 글로리’라는 작품 덕에 그동안 살았던 것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큰 이슈나 관심을 얻지 않았더라도 똑같이 답했을 거다. 이번 작업을 통해 얻은 기운들이 정말 좋았다. 배우로서 단단해졌고 많은 분들이 배우로서 나를 신뢰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너무 귀하고 글로리한 작품이다. 내 인생에서 매번 이야기가 나올 작품이 아닐까. 20년 뒤에도 과거에 이런 작품을 했다고 이야기가 나올 법한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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