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 “어느 날 갑자기 건물주가 다른 사람에게 건물을 팔 예정이니 나가라고 합니다. 갱신요구권이 한참 남은 상태라 나갈 수 없다고 하니 이제는 명도소송을 제기해 저를 내보내겠다고 합니다. 건물주가 다른 사람에게 건물을 넘기면 세입자가 나가야 하나요?”

건물을 매도할 목적으로 세입자를 부당하게 내쫓으려는 건물주가 등장하면서 계약 기간이 많이 남아 있음에도 불안에 떠는 세입자가 적지 않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개인 사정을 이유로 세입자를 내보내려는 악덕 건물주의 사례가 종종 있다. 대표적으로 건물주 간 건물 매매의 조건을 내세워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려는 경우다. 하지만 건물 매매 사유로 세입자를 내쫓는 건 명도소송의 근거조차 될 수 없으며, 오히려 건물주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명도소송이란 건물주가 세입자에게 임대계약을 해지하고 건물을 반환하도록 요청하는 소송을 말한다.

법률상 세입자의 명도의무(건물을 건물주에게 반환하는 의무)는 계약 기간이 끝났거나 위법을 저질러 건물주가 계약해지 통보를 했을 때 발생한다. 하지만 건물을 매도하려는 목적은 세입자를 내보낼 법적 근거가 없기에 계약해지는 물론 명도소송의 사유가 될 수 없다.

따라서 건물 매매로 인해 건물주로부터 명도 통보를 받았더라도 세입자는 이에 응하지 않아도 법률상 문제가 되지 않고 새로운 건물주가 기존 세입자와의 계약이행을 지켜야 한다.

반면 세입자는 건물주가 지켜야 할 의무 사항을 어겼기에 손해배상청구소송으로 대응할 수도 있다.

상가 임대차에서 세입자는 계약일로부터 10년간 갱신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계약이 끝날 때 권리금회수 기회를 보장받게 된다. 하지만 건물주가 정당한 사유 없이 세입자를 내보내려 한다면 위법행위가 되어 세입자에게 손해를 배상해줘야 한다.

이뿐 아니라 세입자의 갱신요구권과 권리금에 대한 보호 의무는 건물주가 바뀌더라도 그대로 승계 되기 때문에 새로운 건물주가 된 사람은 세입자에게 남은 갱신요구권과 권리금회수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한편 건물주가 매도 절차를 수월하게 진행하기 위해 계약 전부터 세입자에게 명도각서를 요구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하 상임법) 제15조에는 ‘이 법의 규정에 위반된 약정으로서 임차인(세입자)에게 불리한 것은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상임법은 강행규정으로 세입자의 갱신요구권과 권리금회수 기회를 보호하고 있다. 하지만 건물주가 계약서상 명도 약정을 세입자에게 요구한다면 법률상 보호를 받는 갱신요구권과 권리금회수 기회를 훼손시키려는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효력이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계약 전부터 세입자가 건물 매매에 대해 통보를 했고 계약서상 약정을 넣었더라도 법률이 앞서기 때문에 세입자가 위법한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법적인 효력을 인정받기 어렵다.

정리하면 건물주간 건물 매매 조건으로 세입자를 내보내거나 명도소송을 하는 것은 법률상 근거가 없다. 오히려 해당 사유로 세입자를 내쫓는다면 갱신요구권과 권리금 보호 의무 위반에 책임을 물어 세입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계약서상에 미리 매매로 인한 명도각서를 작성한 경우에도 법률이 앞서기 때문에 각서는 법률적 효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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