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북한학 박사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북한학 박사

은밀한 마약거래에는 공급망을 숨기기 위한 여러 수법이 동원된다. 그중 대표적인 하나가 ‘던지기식’ 판매다. 짙은 헬맷을 쓰고 오토바이를 탄 채 나타난 공급책은 화단이나 계단, 우체통 등에 마약이 담긴 봉투를 던져놓고 잽싸게 달아난다. 구매자가 이를 수거해 가면 거래는 마무리 된다.

던지기식은 무엇보다 출처를 파악하기 어렵다. 마약사범 한 명을 체포하는 것보다 공급망을 찾아내 일망타진하는 게 절실하지만 쉽지 않다. 물건을 건네는 쪽에서 보면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지 담보하기 어렵고, 공급받는 입장에서는 품질을 보장받기 어려운 문제도 있다. 던지기식으로는 신뢰나 책임을 따지기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지금 우리 대북 안보 현장에서도 던지기식 분석과 보도가 난무한다.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을 놓고 전문가 그룹은 물론이고 정부 부처와 군, 정보당국까지 나서 이런저런 관측을 내놓는다. 가히 백가쟁명의 시대라 할 정도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를 둘러싼 후계 논란은 그 절정을 보여준다. 지난해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장인 평양 순안공항 활주로에 김정은 위원장과 열 살 안팎의 딸이 등장하자 모든 관심은 여기에 쏠렸다. 국가정보원은 “둘째 딸 김주애로 파악된다”고 국회 정보위에 보고했고, 언론과 전문가 사이에서는 ‘김정은의 후계자’라거나 ‘4대 세습을 위한 것’이라는 진단이 봇물을 이뤘다.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이를 즐기는 듯한 행보를 보인다. 김주애를 군사 퍼레이드 관람석 중앙에 배치하고 미사일 발사장과 신도시 건설 착공식 현장까지 대동했다. 영락없는 ’딸 바보‘의 다정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김주애는 김정은 위원장이 부인 이설주와 낳은 1남 2녀 가운데 둘째 딸로 파악되고 있다. 다른 자녀들이 있는데다 아직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점에서 후계문제는 시기상조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지만 일부 전문가와 언론의 ‘김주애 후계 띄우기’는 멈출 줄 모른다.

한 연구기관의 중견 박사는 “김정은도 8살 때 후계자에 내정됐다”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김주애가 지나치게 어리다는 지적에 대해 반론을 편 것이다. 하지만 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말기인 2009년께 후계문제가 거론될 당시 김정은 위원장의 형 김정철이 후계자에 올랐다면서 김정철이 일하는 보위부 내에 ‘정철 동지를 중심으로 단결하자’는 구호까지 내걸렸다고 주장했던 걸 떠올리면 뒷북치기식 ‘8살 내정’ 주장엔 지나친 감이 있음을 단박에 알 수 있다.

7차 핵실험과 관련해서는 정부 당국까지 던지기식에 나섰다는 점에서 우려가 제기된다.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9월 28일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감행한다면 10월 16일에서 11월 7일 사이일 가능성이 있다”고 국회 정보위에 보고했다. 미국의 중간선거 등을 고려한 판단이었다. 한국 정보당국이 이례적으로 날짜까지 특정해 핵실험 전망을 내놓자 국내외 언론의 관심은 함북 길주군 풍계리 핵 실험장 갱도에 쏠렸다. 국정원이 “풍계리 3번 갱도가 완성돼 핵실험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라고 부연 설명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목된 시간에 핵실험은 없었고 4개월을 넘긴 지금도 감감무소식이다. 

국방부는 지난 2월 17일 국회 국방위 보고에서 “북한이 올해를 ‘핵무력·국방발전의 변혁적 전략의 해’로 정하고 핵전력의 양적·기술적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으며, 정치적 판단에 따라 7차 핵실험 가능성도 상존한다”고 보고했다. 여전히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정부당국이 북한의 핵 추가 도발에 대비태세를 확고히 하는 걸 나무랄 이유는 없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당장 오늘이라도 핵 버튼을 누른다면 그 판단은 적중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하지만 날짜까지 지목해가면서 핵실험 관측을 제기하고, 정보판단이 어긋난데 대해 일언반구 해명조차 없는 걸 국민은 이해하기 어렵다. 결과 못지않게 과정도 중요하다는 점에서다.

답답한 마음에 챗GPT에게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을 분석해 달라’는 주문을 넣어봤다. 즉각 답변을 써내려가기 시작하더니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은 여러 가지 요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글을 남겼다.

챗GPT는 북한이 앞서 6차례 핵실험을 감행한 사실을 거론한 뒤 “북한의 과거 핵실험 기록, 최근 핵무기 개발 관련 발언 및 활동, 그리고 국제 정세와 관련된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7차 핵실험 가능성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딸 주애가 후계자가 될 가능성에 대한 분석을 챗GPT에 주문하자 “김주애가 북한의 후계자가 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불분명하다”는 답과 함께 “북한은 공식적으로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았으며, 김정은 위원장이 현재까지 완전한 통치 권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 나왔다.

우리의 안보와 직결된 사안을 인공지능에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국정원의 7차 핵실험 정보 판단 미스나 전문가들의 던지기식 분석·전망보다 훨씬 신중하고 다양한 정보를 고려하는 챗GPT이 판단은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다.

대북 정보 판단 및 관측에서 일부 당국자나 전문가 그룹이 국민 신뢰를 깎아먹는 낡은 방식에 의존하다가는 챗GPT에 밀려나는 1순위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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