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미정 기자  바야흐로 ‘고금리 시대’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출 금리는 빠르게 치솟았고 과거 초저금리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빚투’ 열풍이 불 정도로 손쉽게 돈을 빌렸던 많은 서민들이 이젠 몸을 잔뜩 웅크리고 대출을 줄이고 있다. 이자부담을 조금이라도 낮추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금리가 연 15.9%에 달하는 한 대출상품이 흥행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높은 금리 수준에도 수요가 폭증하고 있는 상품은 바로 ‘소액생계비대출’이다. 

소액생계비대출은 급전이 필요한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출시된 정책금융상품이다. 최대 100만원을 신청 당일 즉시 대출해주는 상품으로, 지난달 27일 출시됐다. 대출 대상자는 저소득·저신용자다. 신용평점 하위 20%이하이면서 연소득 3,500만원 이하인 자로 연체 이력이 있거나 소득이 없어도 대출이 가능하다. 대출 금리는 연 15.9%이며 금융교육을 이수하면 0.5%p(퍼센트포인트) 이자를 깎아준다. 이후 성실 상환시엔 6개월마다 금리가 3%p 인하돼 최저 연 9.4%로 낮아질 수 있다. 

소액생계비대출은 기본 금리(연 15.9%)가 정책 상품치고는 높고 대출 한도도 100만원으로 적은 편이었으나 출시 초반부터 대출 수요가 폭발적으로 몰렸다. 사전 예약을 받은 첫날인 지난달 22일엔 한 주간 상담할 수 있는 인원인 6,200여명에 대한 예약이 마감됐다. 이날 대출 실행 기관인 서민금융진흥원 홈페이지는 서버가 마비될 정도로 신청자가 폭주했다. 대출 출시 1주일 동안 5,747건의 상담이 진행됐다. 이 중 5,499건, 35억1,000만원의 대출신청이 접수됐다. 

소액생계비대출은 은행권 기부금 500억원과 한국자산관리공사 기부금 500억원을 더해 총 1,000억원 규모로 조성됐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현재 하루에 6~7억원 가량의 소액생계비대출이 실행되고 있다. 이 같은 수요 흐름이라면 7월이면 대출 재원이 전부 소진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소액생계비대출은 대출 금액이 최대 100만원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대출 수요가 폭증한 데는 100만원도 구하기 힘든 취약계층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소액생계비대출 흥행이 씁쓸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저소득·저신용자들에게 대출 허들은 높다. 연체 이력까지 있는 저신용자들이 제도권 금융 대출 문턱을 넘기는 더 녹록지 않다. 그나마 제도권 금융의 마지막 보루 격이었던 대부업체를 통한 대출도 몇 년 전부터 녹록지 않아졌다. 법정최고금리가 낮아지면서 대부업체들은 마진율이 나빠졌다는 이유로 신규 대출 문을 속속 걸어 잠궜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불법 사금융 시장에 내몰리는 저신용자들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취약층 대상 불법 사금융 신고·상담이 12만3,233건 접수됐다. 지난 2020년(12만 8,538건), 2021년(14만3,907건)에 비해 다소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많은 수준이다. 

불법 사금융 대출 문을 두드리는 저신용자들은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이 대부분이다. 생계가 어려울 처지에 몰려 살인적인 고금리에도 대출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불법사금융 시장 대출 금리는 최고 수천%에 이른다. 소액을 빌리더라도 감당할 수 없는 이자폭탄을 맞게 되는 구조다. 

코로나19 사태와 경기 침체로 저소득·저신용자들의 생계는 더 어려워졌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소액생계비대출에 열풍이 분 것도 이를 반증한다.

정부는 소액생계비대출 수요가 폭증하자 재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정부 차원의 재원 확대 노력만으론 한계가 있다. 기존 정책금융의 문제점이 없는지 살펴보고 저신용자 대출 공급을 확대하기 위한 보다 촘촘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제도권 금융사들도 취약차주를 끌어안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저신용자 주요 대출 공급처인 2·3금융권도 마찬가지다. 

100만원. 누군가에겐 얼마 되지 않는 돈일 수 있다. 그러나 벼랑 끝에 몰린 누군가에겐 생계가 걸려 있는 돈이 될 수도 있다. 이들이 급전조차 구하지 못해 최악의 상황에 내몰리지 않도록 정부는 물론, 금융 전체의 포용적 정책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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