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연미선 기자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학교폭력(이하 학폭)에 대한 논쟁이 재점화됐다. 최근에는 우리 사회의 오랜 논쟁거리인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로 논란이 번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드라마 ‘더 글로리’ 방영 이후 한 공중파 방송에서 표예림 씨가 초‧중‧고 12년간 내내 있었던 학폭 피해 사실을 고백했다. 이는 ‘현실판 더 글로리’라고 공론화되면서 사회의 공분을 샀다. 이런 가운데 지난 21일 SBS를 통해 가해자로 지목된 4명 중 2명이 명예훼손을 이유로 표씨에게 내용증명을 보낸 사실이 보도되면서 논란이 더해졌다.

표씨의 고백 이후 그의 동창생이라고 밝힌 신원미상의 인물이 학폭 가해자들의 신상과 근황을 담은 영상을 공개한 바 있다. 표씨는 자신이 영상을 올린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영상을 삭제하고 사과의 글을 게재하라는 내용증명을 받게 됐다. 근거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이었다.

형법 제307조 1항에 따르면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이 아니라 사실을 적시하더라도 명예훼손으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다만 같은 법 제310조에서 해당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예외를 두고 있다.

해당 법을 근거로 법적대응에 나서겠다는 내용증명을 받자 표씨는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를 골자로 하는 국민청원을 제출했다. 그는 청원의 취지에 대해 “현재의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가해자가 피해자의 입을 막으려 하는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형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인정하는 국가는 드물다. 이미 오래전부터 유엔 인권위원회와 유엔 시민적 정치적 권리규약위원회(ICCPR) 등 국제기구에서도 우리 정부에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 폐지를 권고해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유지되고 있는 데는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이와 관련한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완전폐지가 현재로서 어려운 이유를 세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우선 사생활 등에 대한 공연한 사실적시로 개인의 인권을 침해할 위험성이 적지 않다. 또한 미국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나 다른 국가들의 손해배상제와 같이 정신적 침해 및 손해에 대한 적절한 배상이 우리나라서는 이뤄지기 어렵다. 이에 비추어볼 때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형벌을 대체할 유효‧적절한 민사적 수단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이에 보고서에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 완전폐지는 법적 안정성 및 치안유지의 측면에서 보다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면서 “현재 법안의 허점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지난 10일부터 19일까지 진행된 표씨의 국민청원은 5만명의 동의를 받으면서 법제사법위원회로 회부됐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완전폐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문제로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해당 형법이 가해자가 피해자를 침묵시키는 데 악용돼서는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드라마 ‘더 글로리’에 사람들이 열광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드라마 속에서 학폭 피해자였던 주인공은 잔혹한 학교폭력을 저지르고 성인이 돼서도 뉘우치지 않는 가해자들에게 법적 처벌뿐 아니라 사적 복수까지 이뤄냈다. 이를 인과응보라고 봤기 때문 아닐까.

현실에서 사적 복수는 이뤄질 수 없다. 현행법이라는 제도 안에서 마땅한 처벌이 필요하며, 최소한 가해자가 당당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일어날 학폭을 예방하는 것만큼 이미 벌어진 학폭에 대한 적절한 조치도 중요하다. 법사위로 넘어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신중한 논의가 필요해 보이는 시점이다.

 

근거자료 및 출처
배상균(2018), 사실적시 명예훼손행위의 규제 문제와 개선방안에 관한 검토
2018.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형법 제307조 1항, 제310조
  국가법령정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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