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나는 자유라는 말을 들으면 두렵고 소름끼친다. 자유를 수호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얼마나 많은 학살과 박해와 추방과 억압이 자행됐는가. 나는 직접 봤다.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슬로건 아래서 국가 폭력과 야만성이 정당화 되는 것을 목격했다. 지금 말하는 자유는 시장의 자유, 기업의 자유, 거래의 자유, 경쟁의 자유, 계약의 자유, 투자의 자유, 자기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자유, 욕망의 자유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와 기업의 자유를 확대하면 거기에 비례해 자유의 가치가 더 고양 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반비례해서 자유의 가치가 훼손되는 게 아닌가 싶다.”

소설가 김훈이 지난 4월 춘천 한림대 도헌학술원 특강에서 윤석열 정부의 최대 화두인 ‘자유’에 대해 했던 말인데, 전적으로 맞는 지적 아닌가? 윤 대통령은 지난해 5월 10일 취임식 이후 나라 안팎에서 1000번 넘게 ‘자유’를 외쳤네. 뒤늦게 독립운동이나 민주화 투쟁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자꾸‘자유’를 부르짖고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자유’와 ‘법치’를 외칠 때마다 떠올리는 문정희 시인의 <동물원>이라는 시일세.

“동물원 철창을 덜컥 열어 버린다/ 인간의 손에 더럽혀져 습관적으로 재롱을 떨던/ 동물들 한꺼번에 거리로 기어 나왔다// 그런데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군/ 우리야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되었지만/ 당신들은 왜 이 짓을 하나/ 거리에 나온 동물들이 당황하여/ 노기를 띠고 으르렁거린다// 충혈된 눈알을 굴리며 누군가 던져주는/ 죽은 살코기를 덥석덥석 무는 사람들을 보며/ 어디가 진짜 동물원인가 길을 잃는다// 비겁과 순치로 음험한 도시/ 맹수의 본능으로/ 그만 누군가를 물어뜯을 것만 같다// 차라리 동물원에서 그냥 있을 걸 그랬다/ 먹이 한 덩이로 목구멍을 지배당하고/ 가끔씩 야생의 습성이나 연기해 줄 걸// 목구멍을 책임진다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하지만 스무 살 무렵에 벌써 죽어/ 일흔 살이나 여든 무렵까지 매장만을 기다리는/ 꼬리 잘린 동물이 빈 창자를 움켜지고 돌아다니며/ 심지어 시를 쓴다고 끙끙대는 꼴까지 보게 되다니”

인간들에 의해 길들여져 습관적으로 재롱을 떨어야만 했던 동물들이 이성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왜 이 짓을 하나”라고, 왜 비겁하게 재롱을 부리면서 살아야만 하냐고 묻고 있네. “충혈된 눈알을 굴리며 누군가 던져주는/ 죽은 살코기를 덥석덥석 무는” 인간들 세상을 보면서 어디가 진짜 동물원인지 모르겠다고 비아냥거리고 있어. 자유를 찾아 거리로 뛰쳐나왔는데, 철창 밖에서 보는 “꼬리 잘린 동물”인 인간들 사는 모습도 자기들과 크게 차이가 없다는 거야. 그래서 당혹스럽고, 화가 난다는 거지. “차라리 동물원에서 그냥 있을 걸 그랬다”고 후회도 하고.

나도 김훈 씨처럼 자유를 외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두렵고 소름끼치네. 경쟁과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는 결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지는 가치가 아닐세. 특히 대통령처럼 정치적 권력을 가진 사람이 선봉에 서서 ‘자유팔이’를 하면 사회적 강자들의 자유는 더 커질 수밖에 없어. 그에 비례해서 사회적 약자들의 자유는 더 쪼그라들고. 그런데도 많은 약자들이 강자들 못지않게 자유라는 말을 좋아하네. 대한민국 같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노력하면 강자가 될 수 있다는 허위의식 때문이야. 그게 미국이나 한국 같은 불평등이 심한 나라들이 아직 건재하는 비결이기도 하고.

게다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매우 자유롭게, 매우 주체적으로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네. 누군가가 던져주는 “죽은 살코기”를 덥석덥석 받아먹으면서도 그 누군가가 왜 그렇게 우리를 길들이고 있는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아. 오히려 그 ‘누군가’의 음험한 의도를 눈치 채고 반항하는 사람만 실패자, 즉 부적응자로 낙인이 찍혀 배제되는 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모습이야. 어느 나라든 극우세력들이 가장 사랑하는 말이 ‘자유’라는 것을 잊지 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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