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재화가 첫 장편 주연작 ‘익스트림 페스티벌’(감독 김홍기)로 관객 앞에 섰다.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배우 김재화가 첫 장편 주연작 ‘익스트림 페스티벌’(감독 김홍기)로 관객 앞에 섰다.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매 작품 개성 넘치는 연기로 존재감을 뽐내온 배우 김재화가 첫 장편 주연작 ‘익스트림 페스티벌’(감독 김홍기)로 관객 앞에 섰다. 어떤 악재에도 꺾이지 않는 집념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빚어내 공감을 자아내는 것은 물론, 안정적으로 극을 이끌며 또 한 번의 가능성을 입증한다. 

‘익스트림 페스티벌’은 망하기 일보 직전 지역 축제를 무사히 개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스타트업 청년들의 이야기를 그린 현실 공감 코미디다. 단편영화 ‘중성화’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신예 김홍기 감독의 장편 연출작으로, ‘K-지역 축제’라는 신선한 소재와 예측 불허한 전개, 베테랑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 앙상블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김재화는 ‘중성화’에 이어 다시 한 번 김홍기 감독의 선택을 받았다. 극 중 행사 전문 대행사 ‘질투는 나의 힘’ 대표 혜수를 연기했다. 혜수는 망해가는 지역축제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로, 예측불가한 사건들을 수차례 헤쳐 나가는 집념의 캐릭터다. 

이번 작품을 통해 첫 장편 타이틀롤을 맡은 김재화는 연극과 영화, 드라마 등 무대를 넘나들며 차근차근 쌓아온 연기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주연배우로서 제 몫을 톡톡히 해낸다. 현실감 넘치는 연기부터 세밀하고 다채로운 표현력과 전달력까지 폭넓게 소화하며 안정적으로 극을 이끈다. 

김재화의 다양한 얼굴이 담긴 ‘익스트림 페스티벌’ 포스터.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김재화의 다양한 얼굴이 담긴 ‘익스트림 페스티벌’ 포스터.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김재화는 “김홍기 감독이 나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 작업을 한다고 해서 기뻤다”면서도 “‘익스트림 페스티벌’은 나 혼자만이 아닌 모두가 주인공인 작품”이라고 겸손한 소감을 전했다. 

-첫 장편 주연작이었다. 감독이 본인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작업하겠다고 했을 때 기분이 어땠나.  

“다른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더라. 나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쓴다고. 너무나 기뻤다. 이런 경우가 흔치 않은데 정말 감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어떤 작품일지 궁금했는데, 지금은 제목이 바뀌었지만 제목부터 강렬했다. 시나리오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궁금해지고 재밌었다. 원래 제목은 ‘제2회 연산군영화제’였다.(웃음) 연극학과 출신으로서 와닿는 대사들이 많았다. 그런 지점이 초반부터 나를 이 작품에 깊숙이 들어가게 했다.”

-그동안 개성 강한 캐릭터로 깊은 인상을 남기는 역할을 주로 해왔는데, 이번에는 중심에 서서 서사를 이끌고 다른 캐릭터들과의 관계성도 가져가야 했다. 어떤 고민을 했나.

“그런 지점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이 작품에 있게 해준 감독에게 고맙다. 혜수가 되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응대하고 컨트롤하잖나. 또 사건이 터졌을 때 해결해야 하는 역할이다. 그래서 다른 작품에서 맡았던 롤과는 달랐고, 나 역시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때는 역할, 영화 자체 연기에 그냥 빠져서 했는데, 지나고 보니 되게 막중한 임무를 갖게 한 작품이었구나 싶다. 그런 생각을 뒤늦게 하게 되는 요즘이다.” 

-다양한 표정의 얼굴들로 가득 채운 포스터도 강렬했는데.  

“사실 엄청 부담스러웠다. 나 혼자만이 주인공이 아니고, 주요 캐릭터들이 나오는데 내 얼굴이 전면에 나와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떤 단어를 써야 할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한강대교를 지나가는데 같이 연극했던 동료나 친구들이 버스에 붙어 있는 포스터 속에 주인공으로 있을 때 솔직히 부러웠다. 내 얼굴이 있으면 어떤 기분일까 그런 생각들을 막연히 했었다. 그런데 막상 내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박혀있으니 오히려 멍한 느낌이 들더라. 진짜인가 싶기도 했다.”

-그동안 주연에 대한 욕심은 없었나. 이번 작품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달랐는지 궁금하다.

“배우는 캐스팅되는 직업이고 누군가가 선택해 줘야 한다.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계속 기다려왔던 것 같다. 그렇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 무게감을 이길 수 있는 사람만 주연을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도 든다. 저희 영화는 독립영화이고 지원도 받은 작품인데 그렇기 때문에 내가 주연으로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운 좋게. 그렇지 않는 상황에서 주연의 무게라는 것은 너무 힘들지 않을까 싶다. 그 자리에 대한 욕심은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뜨거워질 정도로 겁이 난다. 이번 작품은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참여했지만, 첫 주연작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했다. 다 같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현실 공감 캐릭터를 완성한 김재화.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현실 공감 캐릭터를 완성한 김재화.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혜수는 어떤 인물이었나. 어떻게 분석하고 접근했는지.  

“김홍기 감독이 ‘중성화’라는 작품 속 두 인물, 혜수와 상민이 아깝다고 생각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두 인물을 그대로 가져와서 확장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서 나도 그렇게 접근했다. 우선 혜수는 책임져야 할 게 너무나 많은 사람이었다. 든든한 지원군이어야 하는 남자친구도 못 미덥고, 해나가야 하는 일들도 자꾸만 삐걱거린다. 그런 상황과 모습들이 실제 나의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과 혜수가 처한 상황이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 실제로 이 작품이 끝나고 나름의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과로를 한 거다. 정말 감사하게 결혼하고 임신하고 나서부터 영화와 드라마 제안이 더 들어왔다. 연년생으로 두 아이를 두고 있는데, 가정을 지키면서도 배우로서 들어오는 작품을 지금 하지 않는다면 언제 다시 이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에 뭐든지 잘하고 싶어서 악착같이 끌고 온 시절이 있었다. 혜수가 마지막에 ‘나 이제 제대로 해보고 싶어’라고 하며 결단을 내리잖나. 혜수가 결단을 내리는 순간처럼 내게도 그런 결단의 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이제 조금 쉬어야겠다하는.”

-쉼이 필요했다는 것은 소진됐다고 느낀 걸까.

“그동안 소진된다는 느낌은 사실 없었는데, 그 해에 많이 달려서 그랬던 것 같다. 그때가 딱 큰 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해라 그런 것도 있었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면 휴직을 한다는데, 나는 배우로서 복이 많이 들어왔다. 그런데 내가 배우로서 행복해하고 있을 때 우리 가족은 그렇지 않음을 느꼈고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어느 순간 ‘이 축제를 왜 하는 거지’라는 혜수의 대사처럼, 나도 그런 지점에 부딪혔다. 아이들에게 ‘너희가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는 17살부터 배우 수업을 받아온 사람이고 직업은 배우란다’ 하며 살고 있다가 그때 약간의 정적이 있었던 것 같다.” 

김재화가 배우로서 고민을 털어놨다.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김재화가 배우로서 고민을 털어놨다.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가족과 함께 하며 채우는 시간을 보냈나.

“그렇다. 배우로서도 그렇다. 다시 창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오랜만에 들더라. 최근 양양으로 이사를 갔는데 함께 연극했던 친구들이나 선배들이 놀러 오면 예전에 하지 못했던 깊은 대화들을 나누게 되면서 다시 연극을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서울 대학로 한복판에서 하는 거창한 연극이 아니라, 우리 영화처럼 작은 군이나 리 단위에서 하는. 심지어 우리 집 거실에서 살롱 연극(동호인들끼리 자기들의 객실이나 집회소 같은 곳을 무대와 객석으로 하는 아마추어 연극)처럼 작은 연극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다. 우리가 늘 잘 포장돼 있고 커다란 것,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은 것들, 그 안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오고 있다. 참 재밌는 경험을 하고 있다.”

-작품을 선택함에 있어 사이즈, 규모는 고려 사항이 아니겠다.

“정말 너무 아니다. 10여 년 전에 사촌이 미술을 하는 친구라 전시를 한 적이 있는데 인사동 거리에서 같이 퍼포먼스를 했다. 영국 에든버러 한복판에서 분장하고 사람들을 끌어모으던 시절에 사이즈나 유명세는 전혀 상관이 없었고, 내게 재미를 주는 일이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익스트림 페스티벌’도 너무 재밌었다. 화려한 영화가 많이 나오는 지금 이 영화가 어떻게 다가갈지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영화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이 작품은 내게 새로운 자극을 줬다. 한강대교에서 포스터를 보며 부러워하던 내가 아니라 그 전으로 돌아간 느낌을 갖게 해준 고마운 작품이다.”

-과거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배우인 동생 김혜화, 김승화와 함께 연기 연습을 하는 모습이 공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계속해서 기초 훈련을 해오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한때 워크숍에 목이 말라있었다. 학교를 졸업한 뒤 연극도 하고 영화를 하면서 계속 표현하는 직업인데 쉼 없이 달려오다 보니까 내면이 어느 순간 공허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다고 대학원을 다닌다거나 그럴 순 없었고, 어떤 워크숍이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참여를 했다. 그중 하나가 마이즈너 워크숍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주 재밌었다. 결국에는 엄청 기초적인 거다. 그 사람을 관찰하는 것, 나에게 집중하지 않고 저 사람에게 집중하고 그가 변하는 세세한 것들을 내 입으로 말해주는 거다. 연기는 결국 액팅보다 리액팅이기 때문에 그런 기본적인 것들을 오랜만에 또 배우는 그런 자리가 아니었나 싶다.”

자신의 속도로,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는 김재화.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자신의 속도로,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는 김재화.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동생들과 에너지를 주고받는 것도 긍정적인 자극이 될 것 같은데.  

“그렇다. 둘째 혜화와는 두 살 차이다. 학교는 달랐지만 비슷한 과정을 지내왔다. 같은 작품, 같은 역할 오디션도 같이 보러 다니고 서로 의견도 물어보면서 각자 표현하는 것들을 봐주기도 하고 그랬다. 막냇동생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 (연기에) 전혀 관심도 없었던 것 같았는데 언니들의 오디션 대사를 해주다가 자신도 배우의 꿈을 갖게 된 케이스다. 지금도 저희는 설날이나 추석 때 모이면 독백 집을 읽어본다. 아빠도 읽어보고. 나이 든 아빠가 ‘리어왕’ 대사를 세 딸 앞에서 하는데 그 느낌이 굉장히 묘하더라. 꼭 배우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독백을 자기화시켜서 읽었을 때 큰 힘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재밌다.”

-배우로서 꿈꾸는 이상향이 있는지, 도전해 보고 싶은 연기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작품을 할 때마다 롤 모델을 만난다. 본받을 점이 너무 많은 선배들이다. 또 동료나 후배들을 통해서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기도 한다. 이번 작품에서는 김종구 선배와 문희경 선배를 통해 느꼈다. 한 문장 한 문장 말씀하실 때마다 대사의 힘이 바로바로 느껴지더라. 나도 언젠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해보고 싶은 역할은 주어지는 것에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인데, 표정을 짓지 않아도 되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가끔 한다. 왜냐하면 내게 주로 주어지는 역할이 표현을 많이 해야 하는 인물들이었다. 물론 그런 작품들도 좋지만, 무미건조한 사람,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연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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