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Extinction)’. 지구상에 존재하던 어떤 종이 모종의 이유로 세계에서 사라져 개체가 확인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지구의 입장에서 멸종은 항상 일어나는 작은 사건일 뿐이다. 지구의 생명역사가 시작된 38억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생명체 대부분이 사라지는 ‘대멸종의 시대’가 존재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멸종의 원인이 기존의 ‘자연현상’에 의한 것이 아닌, 인간이 직접적 원인이 된 멸종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오염, 불법 포획부터 지구온난화까지 우리 스스로 자초한 결과물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이제 지구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 스스로 자초한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있는가.” [편집자 주]

야생에서 절멸위기에 처한 대형악어종 ‘가비알(Gavialis gangeticus)’/ Gettyimagesbank
야생에서 절멸위기에 처한 대형악어종 ‘가비알(Gavialis gangeticus)’/ Gettyimagesbank

시사위크=설공원 기자  세상에는 수많은 기념일이 있다. 결혼기념일, 돌잔치, 환갑·칠순부터 광복절, 개천절 등 국가 기념일까지 우리가 살면서 챙겨야 할 기념일이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다. 재미있는 사실은 여러 동물을 상징하는 기념일도 따로 지정돼 있다는 점이다. 펭귄의 날(4월 25일), 호랑이의 날(7월 29일), 세계 고래의 날(2월 18일) 등 동물 보호 및 공존을 의미하는 여러 동물 기념일이 존재한다.

이 가운데 한 동물의 기념일이 얼마 전 있었다. 바로 ‘세계 악어의 날(World Croc Day)’이다. 매년 6월 17일 세계 악어의 날에는 전 세계 동물원과 수족관에서 악어 보호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는 행사가 개최되곤 한다. 하지만 국내 대형 동물원에서는 세계 악어의 날을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눈치다. 악어는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저 동물의 왕국에서 얼룩말을 사냥하는 무서운 포식자로만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악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신비로운 동물이다. 중생대의 트라이아스기 초기인 2억2,000만년 전 지구에 처음 등장한 악어는 현재까지 그 모습이 크게 변하지 않아 ‘살아있는 화석’의 대명사로 꼽힌다. 특히 ‘가비알’은 가장 특이한 외모 덕분에 ‘가장 이질적인 악어’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한 모든 악어종 중 지구상에서 가장 적은 숫자만 생존한 ‘멸종위기종’이기도 하다. 이에 <시사위크>에서는 ‘세계 악어의 날’을 기념해 가비알 악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 긴 주둥이에 날카로운 이빨이 한가득… 포악한 생김새로 오해받는 가비알

가비알(Gavialis gangeticus)은 악어목 가비알과에 속하는 파충류다. 몸길이는 약 4~7m 정도로 자라는 대형악어종 중 하나다. 인더스강, 갠지스강, 마하나디강 등 인도 지역에서 주로 서식하며, 미얀마의 이라와디강,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와 메콩강 유역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흔하지 않은 대형악어종이라는 특징도 특징이지만, 가비알이 다른 악어들과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이는 것은 바로 긴 주둥이다. 일반 악어의 반도 되지 않는 두께의 얇은 주둥이는 약 1m 정도 길이로 매우 길다. 또한 이빨이 위 아래로 25~30개 정도 나 있어, 마치 날카로운 바늘을 잔뜩 박아놓은 머리빗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치 날카로운 바늘이 잔뜩 박힌 것처럼 보이는 가비알의 주둥이. 무서운 생김새와는 다르게 가비알은 육상생물은 거의 공격하지 않고, 물고기만 잡아먹는다./Gettyimagesbank
마치 날카로운 바늘이 잔뜩 박힌 것처럼 보이는 가비알의 주둥이. 무서운 생김새와는 다르게 가비알은 육상생물은 거의 공격하지 않고, 물고기만 잡아먹는다./Gettyimagesbank

예리한 이빨이 잔뜩 박힌 주둥이 모습 때문에 가비알은 포악한 사냥꾼이라는 오해를 종종 받곤 한다. 하지만 바다악어, 나일악어 등 다른 대형악어종에 비해 훨씬 소심하고 겁이 많은 성격으로 인간을 공격한 사례는 거의 없다. 뿐만 아니라 바늘 같은 이빨이 난 주둥이도 수중 생물 사냥에 특화된 것이다. 가비알은 주로 강 속에 서식하는 물고기나 개구리, 거북이 등을 주로 잡아먹으며, 육상생물을 잡아먹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비알은 무서운 외모 때문에 인도 지역 어민들에겐 공포의 대상이 되곤 한다. 실제로 2019년 8월에는 인도 치랑(Chirang) 지역 인근 강에 나타난 가비알이 근처 어민들에게 돌에 맞아 죽은 일이 있었다. 이 악어는 5.11피트(약 1.6m) 크기의 암컷이었다. 사람을 공격하진 않았으나 공포를 느낀 주민들이 악어를 죽인 것이다. 물론 주민들 심정은 이해가 되지만, 가비알 입장에선 정말 억울한 죽음이 아닐 수 없다.

인도의 생물학자 압둘라 모하메드 아메드 박사는 “1980년대 이후 치랑 지역에 가비알은 멸종된 상태로, 이번에 나타난 개체는 부탄강 지역에서 올라왔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와 같은 안타까운 희생이 없도록 가비알이 위험하지 않다는 대중 인식 캠페인과 과학적 보호 시스템 확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서식지 파괴와 어업으로 절멸 위기에 처한 가비알

이 같은 가비알의 죽음이 더욱 안타까운 것은 모든 악어들 중 가장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한 종이라는 점 때문이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따르면 현재 가비알의 멸종위기등급은 ‘심각한 위기종(CR)등급’이다. 이는 개체수가 거의 없어 매우 위험한 상황의 생물들에게 부여되는 등급이다. 씁쓸한 것은 대부분의 멸종위기종이 그렇듯, 가비알 개체수 감소 역시 ‘인간’의 책임을 빼놓을 수 없다는 점이다.

가비알은 주로 깨끗한 물이 흐르는 강변에서 살아간다. 또 알을 낳기 위한 모래밭도 필요하다. 하지만 댐과 둑 공사로 설치된 여러 강물 제어 구조물들은 이런 서식지 환경을 황폐화시켰다./Pixabay
가비알은 주로 깨끗한 물이 흐르는 강변에서 살아간다. 또 알을 낳기 위한 모래밭도 필요하다. 하지만 댐과 둑 공사로 설치된 여러 강물 제어 구조물들은 이런 서식지 환경을 황폐화시켰다./Pixabay

전문가들은 가비알의 개체수 감소 원인으로는 화학물질 유입으로 인한 수질 오염, 과도한 어업, 남획 등을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이때 가비알에게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힌 것은 ‘인공 구조물’이다. 가비알은 깨끗한 물이 흐르는 강변이나 강 만곡부에 형성된 잔잔하고 깊은 웅덩이를 선호한다. 또 알을 낳기 위한 모래밭도 필수적이다. 하지만 인더스강과 갠지스강 등지에서 진행된 댐과 둑 공사로 설치된 여러 강물 제어 구조물들은 이런 서식지 환경을 황폐화시켰다.

실제로 댐·둑 등 인간의 편의를 위해 건설된 담수시스템은 민물 수생 생물들의 생태계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치곤 한다. 2012년 인도루르키공과대학교(Indian Institute of Technology Roorkee) 연구진이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브라마푸트라강의 주요 지류인 로힛(Lohit)강 유역에 설치된 수력발전소는 멸종위기종 7종, 취약종은 12종의 생존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물의 온도와 흐름 및 저장 특성을 바꿨기 때문이다.

공사 과정에서도 수많은 가비알이 희생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IUCN의 조사에 따르면 인도 우타라칸드의 파우리 가르왈 지역에 위치한 ‘람강가 댐(Ramganga River)’ 건설 당시 이뤄진 광범위한 서식지 파괴는 수많은 가비알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가비알들의 보금자리인 깊은 웅덩이 형태의 저수지가 대폭 감소했기 때문이다.

IUCN은 “서식지 파괴로 인한 가비알 개체수 급감 현상은 네팔 부근에 위치한 칼리 간다키 강(Kali Gandaki River) 인근의 트라베니(Tribeni) 댐이 인도-네팔 국경에 건설됐을 때도 발생했다”며 “1989년 댐 건설 이후, 해당 지역의 가비알 분포는 크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1979년에도 인도 북부 갠지스강 지역의 야무나 강 주요 지류인 베트와강(Betwa River)의 관개 및 수력발전시설 건설은 이 지역 가비알의 멸종을 불러일으켰다”며 “댐 건설로 인한 대규모 서식지 파괴는 많은 가비알을 죽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갠지스강 유역 어민들의 모습. 어업은 주민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활동이지만 폐어망 등으로 인한 가비알의 폐사는 큰 문제로 자리 잡았다./ WWF
갠지스강 유역 어민들의 모습. 어업은 주민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활동이지만 폐어망 등으로 인한 가비알의 폐사는 큰 문제로 자리 잡았다./ WWF

아울러 어업 활동 역시 가비알의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인도 중·북부의 참발 강(Chambal River) 인근에서 이뤄진 무분별한 어업 활동은 가비알의 먹이인 물고기를 고갈시켰다. 강가 여기저기 설치된 그물과 버려진 폐어망에 가비알이 얽혀 익사하는 일도 자주 발생했다. 또한 어업 활동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강에 저수지를 만들고, 물을 빼버리면서 가비알의 서식지도 파괴됐다. 이후 가비알이 수십 년 넘게 생존해 오던 참발 강 지역에선 가비알이 사실상 멸종되고 말았다.

◇ 국제사회 노력에도 불구 개체수 58% 감소… “적극적 보호연구 절실”

민물 최상위 포식자인 가비알은 다른 대형 악어종과 마찬가지로 생태계 균형 유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민물 어류 개체수 조절을 돕기 때문이다. 또한 커다란 덩치의 가비알이 사냥을 하기 위해 강바닥을 헤집고 다니면, 땅속에 있던 영양분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이렇게 하면 1차 생산자인 수생식물 및 강변 식물의 성장이 촉진된다. 또 이를 먹이로 삼는 수생곤충, 어류 개체수도 증가해, 건강한 강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다.

가비알의 이 같은 생태계 파수꾼으로서의 역할과 종 보존을 위해 국제 사회의 노력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추세다. 특히 가장 적극적으로 가비알 보호에 나선 국가는 주요 서식지가 밀집한 인도다.

인도에서 본격적인 가비알 보호·복원 활동이 시작된 시기는 1970년대부터다. 인도 정부는 1975년 유엔 개발 계획 및 식량 농업기구(UNDP-FAO)와 함께 ‘악어 보호(Project Crocodile)’ 프로그램을 설립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인도 정부는 약 240km에 이르는 강 유역에 6개의 가비알 보존 구역을 마련했다. 이곳에 1981년부터 약 3,000마리의 가비알을 야생으로 방류시키는 등 보존 활동을 진행했다. 또한 인도 산림부는 1992년 상업적 가비알 포획·사육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네팔 사육 센터에서 방생되는 새끼 가비알./ WWF
네팔 사육 센터에서 방생되는 새끼 가비알./ WWF

네팔에서도 1973년 ‘국립 공원 및 야생 동물 보호법’을 제정해 가비알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해당 법안에는 가비알 등 멸종위기종에 대한 포획 및 거래를 전면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울러 인도에서는 비영리 환경 단체 ‘가비알 보존 얼라이언스(Gharial Conservation Alliance, GCA)’를 구성하기도 했다. 이 조직은 가비알을 멸종위기로부터 구하고, 지속 간으한 야생개체군 정착을 위해 다양한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국제 조직이다. 지난 2014년까지 GCA에서는 가비알에 대한 과학적 인구 조사, 포로 번식 및 야생 재입식 프로그램에서 교육, 캠페인 등을 진행했다.

다만 이 같은 지속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비알의 개체수 회복은 쉽지 않다. 이미 그들의 생태계가 심각히 훼손돼, 상처가 아물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1970년대부터 가비알 보호를 위한 국제적 노력이 이어졌으나, 가비알의 개체수는 1990년대 이후 급격히 감소했다. 인도의 환경단체 ‘강가액션파리바르(Ganga Action Parivar)’에 따르면 1997년 기준 436마리였던 가비알의 숫자는 2006년에 이르러 182마리가 됐다. 단 9년 만에 58%의 개체수가 인도 지역에서 줄었다.

GCA 전문가들은 “가비알 보존작업이 1970년대 후반부터 계속되고 있음에도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며 “이는 과거의 보존 전략이 효과적이지 않았음을 나타내는데, 이는 지속적인 서식지 파괴로 인해 가비알 둥지와 알 보존, 새끼의 생존 가능성 저하 때문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이어 “가비알을 우리가 보존하기 위해선 서식지 보호, 보호 지역 시행, 교육 및 지역 주민들과의 협력을 우선 순위로 해야 한다”며 “가비알 보존 작업에 귀중한 자산이 될 수 있는 관련 종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기 위한 수집도 필수적”이라고 조언했다.

누군가 거짓 눈물을 보이거나 위선적인 행위를 할 때 우리는 ‘악어의 눈물’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절멸의 위기에 처한 가비알이 흘리는 눈물은 ‘거짓 눈물’이 아닌, 진심이 담긴 눈물일 듯하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강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가비알을 보호해야 한다’고 외치기만 하는 인간들이 진짜 ‘위선자’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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