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수’(감독 류승완)로 돌아온 김혜수. /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영화 ‘밀수’(감독 류승완)로 돌아온 김혜수. /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밀수’(감독 류승완)는 배우 김혜수가 37년 연기 인생 동안 처음으로 행복함을 느낀 현장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신뢰했던 순간, 눈빛만으로도 전해지던 상대의 마음, 그래서 더 진심이었던 연기. 김혜수는 이 모든 것이 ‘혼자’가 아닌 ‘함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했다.  

‘밀수’는 바다에 던져진 생필품을 건지며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 앞에 일생일대의 큰 판이 벌어지면서 휘말리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류승완 감독이 ‘모가디슈’(2021) 이후 2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자, 배우 김혜수‧염정아를 전면에 내세운 여름 극장가 유일한 여성 투톱 영화로 주목받고 있다. 

김혜수는 성공을 꿈꾸며 밀수판에 뛰어든 조춘자를 연기했다. 조춘자는 14살에 식모살이부터 시작해 돈이 되고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인물로, 수년 만에 자신의 고향 군천으로 다시 돌아와 승부수를 던질 제안을 한다. 김혜수는 ‘날 것’의 연기로 조춘자를 입체적으로 빚어낸다. 류승완 감독도 “영화를 보고 나면 대체불가 캐스팅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만족감을 표했다.

김혜수는 최근 <시사위크>와 만나 ‘밀수’를 택한 이유부터 캐릭터 구축 과정, 한계에 부딪혔던 순간까지 솔직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특히 “팀원들과 일체감을 강하고 진하게 느꼈다”며 동료 배우들을 향한 진심을 전하기도 했다. 

김혜수가 작품을 향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김혜수가 작품을 향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완성된 영화는 어떻게 봤나.   

“다행히 재밌게 봤다. 그때(촬영 때) 생각이 많이 나더라. 별의별 것들이 다 생각났다. 함께 나눴던 호흡, 마주쳤던 눈, 냄새까지 다 생각이 나는 거다. 감독님의 마이크 소리까지도.”

-작품을 택한 이유는.  

“흥미로웠다. 1970년대, 해녀, 밀수 이런 영화적 요소들이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그렇게 개인적인 흥미로 시작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내가 경험한 것들이 굉장히 농후하게 느껴졌다. 작품을 할 때마다 팀원으로서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공동 목표를 갖고 함께하는데 팀원으로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민한다. 이번 현장에서는 협업이라는 것, 팀원으로서 나의 정체성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다. 좋은 멤버가 모였지만 그렇다고 늘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런 지점에 있어서 이번 현장에서는 일체감을 여러 번 느꼈고 그것을 유지하면서 촬영할 수 있었다. 연기나 영화적인 것과 별개로 정말 좋았다. 굉장히 진하고 강렬하게 나를 이끌어 간 힘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상기하면서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에서 내겐 큰 의미가 있다.”

-류승완 감독이 ‘연출부 같았다’고 할 정도로, 촬영 전부터 많은 아이디어와 자료를 공유했다고. 

“매 작품 그렇게 한다. 준비하는 과정이다. 작품이 요하는 자료를 공유하고 하면서 나 스스로도 작품에 진입하는 거다. 우리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것들에서 무엇이 체크되고 어떤 것이 걸러지는지에 따라 작품 전체에 대한 구조가 전체적으로 잡혀가는 게 있다. 내가 일을 하는 방식 같은 거다. 춘자 패션의 경우 이 사람의 아웃룩도 생존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또 70년대 트렌디한 부분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어울리는 자료를 제시했다. 원단이나 디자인도 다 확인했다. 70년대 자료들이 내게 많이 있기도 했고, 도시의 분위기나 어촌의 모습, 해녀들에 대한 자료를 전달하기도 했다. 장도리(박정민 분)의 옷 같은 경우는 당시 이소룡이 굉장히 핫했기 때문에 그런 자료들도 의상팀에게 전달했다.”    

춘자로 분해 날 것의 연기를 보여준 김혜수. / NEW
춘자로 분해 날 것의 연기를 보여준 김혜수. / NEW

-춘자는 어떤 인물이었나. 어떻게 해석하고 접근했나. 

“태생적으로 굉장히 외로운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에너제틱하고 밝은 에너지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 내면은 불안정하고 위태롭다. 반면 진숙(염정아 분)은 나름 어촌에서 금수저 같은 존재다. 아빠는 배를 가진 선장이고 진숙은 해녀들의 대장이다. 그리고 좋은 리더로서 품성과 자지를 갖춘 사람이기도 하다. 자신의 안위보다 전체를 살피는 진중하고 책임감 있고 의리가 있는 인물이다. 그런 진숙은 떠돌이 춘자를 가족처럼 거둬준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춘자에게 진숙은 단짝친구 이상, 가족, 어쩌면 그녀의 전부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생존의 경계에서 발버둥 치고 살던 춘자에게 안락함과 따뜻함을 내밀어 준 유일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 관계가 춘자에 접근하는데 제일 컸다. 초반에는 춘자의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고 서울로 간 춘자는 자신의 외로움이나 불안정 같은 것들을 티 내지 않기 위해 오히려 더 활발한, 살아가기 위해 위장하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여성 중심 서사, 여성 투톱 영화라는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나는 이 작품을 여성 투톱 영화로 한정하고 싶지 않다. 보는 분들에 따라 다르겠지만, 춘자와 진숙 외에도 각 캐릭터들의 앙상블, 시너지가 빛을 발해야 잘 돌아가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권 상사를 말없이 끝까지 수호하고 지키는 그의 오른팔 ‘애꾸’도 있고, 순박한 어촌 노인이지만 인간적인 정이 녹아있는 진숙의 아버지도 있다. 그런 인물들, 또 그들의 관계성이 참 좋았다. 어디에 치중되지도, 너무 무겁거나 가볍지도 않는 조화로운 관계성이 참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해녀 역할이라 수중 촬영이 많았다. 고충은 없었나.

“해녀 역할을 맡은 모든 배우들이 3개월 정도 정말 열심히 준비를 했는데, 나는 ‘소년심판’ 촬영할 때라 훈련을 제대로 못했다. 다행히 물을 되게 좋아한다. 공황상태만 오지 않으면 됐다. 공황이 원래 있었던 것은 아닌데 영화 ‘도둑들’에서 수중 촬영할 때 느꼈다. 그때는 공황인 줄도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공황이 온 상태였고, 몸이 움직이지 못하고 내가 스스로 통제할 수 없고 호흡이 확보가 안 되면 증상이 올 수 있다고 하더라. 그 후에 물에 들어간 적이 없어서 이번에는 어떨지 걱정이 됐다.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조금 더 걱정이 됐다. 그런데 촬영 전에 물에서 테스트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신기하게 너무 잘 하는 거다. 뭔가에 홀린 것 같은 느낌이랄까. 팀플레이 덕분이다. 팀과 함께라서 할 수 있었다.”

여성 중심 서사로 관객 취향 저격에 나서는 ‘밀수’. / NEW
여성 중심 서사로 관객 취향 저격에 나서는 ‘밀수’. / NEW

-류승완 감독의 현장은 어땠나. 

“현장이 좋을 순 있지만 행복하다는 경험은 없었다. 배우들이 현장이 너무 힘들지만 행복한 순간이 있어서 좋았다고 하는 것을 들을 때 나도 경험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번 ‘밀수’가 그랬다. 단지 감독이 제공하는 환경 때문만은 아니다. 배우들끼리 일체감을 느꼈다. 파트너인 염정아와도 둘만 알 수 있는, 예상하지 못했던 찰나의 온전한 집중과 신뢰를 느꼈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 특히 수중 촬영을 할 때 더더욱 그랬다. 그것은 춘자와 진숙보다 더 진할 수도 있다. 정말 좋았다. 살면서 처음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온전하게 신뢰하고 의지한 순간, 내가 이 사람이고 이 사람이 나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경험을 어디서 하겠나. 이런 작품의 배우니까 경험한 거다. 

-앞서 제작보고회에서 “박정민의 최고 연기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는데, 과장이 아니더라. 고민시(옥분 역)도 인상적이었는데, 후배들이 잘 해내는 것을 보며 새로운 자극을 얻기도 했을 것 같다. 

“나는 빈말을 하지 않는다. 하하. 정말 내 말이 맞지 않나? 너무 잘했다. 잘하는 배우가 눈앞에 있으면 막 흥분된다. 신나고. 어떻게 저렇게 하지 싶다. 물론 경험치가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앞날이 훨씬 더 많은 배우들이잖나. 나는 저때 어땠지 생각이 들기도 하고 후배들을 보면서 뿌듯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우리 팀 멤버잖나. 힘차게 제대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좋은 자극이 됐다. 정말 너무 예쁘다. 현장에서도 모니터 보며 너무 좋아서 다시 보고 또 다시 보고 했다.”

-권 상사(조인성 분)와 춘자의 ‘케미’도 재미 포인트였다. 조인성과의 호흡은 어땠나. 

“우선 테스트 촬영을 할 때 투샷 어떡하지, 큰일 났다 싶더라. 파트너가 멋진 게 좋지만 (조)인성 씨가 인형 같잖나. ‘아이쿠야’ 싶었다.(웃음) 연기할 때는 눈이 정말 좋았다. 눈이 정말 엄청나게 깊은 거다. 멋있는데 무섭다. 정신이 바싹 들 정도다. 아는 얼굴이고 조금 전까지 편하게 이야기를 했는데 연기할 때는 진짜 권 상사가 되더라. 그 눈빛이 화면에서도 느껴지긴 하지만, 실제로 두 눈을 보고 느낀 만큼은 아니다. 너무 멋지고 서늘했다. 안 잊히더라.” 

김혜수가 배우로서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김혜수가 배우로서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언론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연기적 한계를 느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어떤 의미였나.    

“매번 느낀다. 예전에는 몰라서 준비가 안 돼도 괜찮았는데 지금은 준비가 안 되면 안 된다는 걸 아는 거다. 기를 쓰고 해도 기본을 하는 거니까. 그렇게 준비를 제대로 하고 현장에서는 다 버리고 다시 한다. 그 공간에서 파트너와 함께 하는 게 진짜니까. 그 순간 그 공간에서 그 사람과 느끼는 감정이 ‘진짜’거든. 내가 준비한 것과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서 신이 완성되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니터를 보면 ‘왜 이렇게 가짜 같지?’하고 느낄 때가 있다. 앞서 말한 현장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누가 나를 괴롭히거나 못마땅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분단위로 계속해서 체크해야 하는 게 일이다. 그게 너무 고통스러워 모니터를 안 보는 배우들도 있다. 그런데 난 본다. 괴롭다. 아무리 현장이 즐겁고 좋아하는 배우들이 있고 전체적으로 준비가 잘 돼서 잘 가고 있어도 내가 나의 민낯을 보는 것은 너무 괴롭다. 정말 힘들다. 끝까지 안 되면 눈물이 난다. 그런데 또 해야 한다. 그런 마음들이 교차하고 또 다잡고 하는 거다. 배우는 드러나는 일이라 그렇지만 연출자도 마찬가지일 거다. 스태프들도 그럴 거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나 자체를 받아들이고 인정하자는 생각을 했다. 모든 배우가 각자 장단점이 있고 오래된 배우의 장점, 신인인데 막강한 장점, 내가 오랫동안 고민하고 노력하지만 그래도 극복이 안 되는 단점도 있고 내 스스로 경계해야 할 것도 많다. 그런데 이것을 그냥 인정하자, 그래 나는 이런 배우인 거라고. 자조적인 게 아니라 나를 제대로 보고 인정하고 그러면서 또 방법을 찾자, 너무 괴롭히지 말자는 생각이다.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진 않는다. 하지만 이번 ‘밀수’ 현장에서는 일부러 잊어버린 것도 아닌데 그것을 압도하는 팀원들과의 일체감, 팀워크가 주는 힘이 나를 행복하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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