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에바 벵그진 폴란드 제슈프 대학교 교수

‘멸종(Extinction)’. 지구상에 존재하던 어떤 종이 모종의 이유로 세계에서 사라져 개체가 확인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지구의 입장에서 멸종은 항상 일어나는 작은 사건일 뿐이다. 지구의 생명역사가 시작된 38억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생명체 대부분이 사라지는 ‘대멸종의 시대’가 존재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멸종의 원인이 기존의 ‘자연현상’에 의한 것이 아닌, 인간이 직접적 원인이 된 멸종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오염, 불법 포획부터 지구온난화까지 우리 스스로 자초한 결과물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이제 지구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 스스로 자초한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있는가.” [편집자 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포화로 고래들이 죽어가고 있다. 에바 벵그진(ewa węgrzyn) 폴란드 제슈프 대학교 교수에 따르면 전쟁 기간 동안 흑해 연안 고래 개체수의 20%가 감소했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하 러우 전쟁)’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2월 24일,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를 러시아군이 침공하면서 시작된 이 전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항전 의지로 러시아군의 예상 밖 고전이 이어지면서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인근 생태계 피해 규모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있다. 특히 고래들은 이번 전쟁에 직격탄을 맞았다. 러우 전쟁 발발 이후 전쟁 지역 인근 흑해(Black sea)에 서식하는 고래가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그렇다면 러우 전쟁이 고래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또 우리가 고래를 전쟁의 포화로부터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시사위크>에서는 에바 벵그진(ewa węgrzyn) 폴란드 제슈프 대학교(Uniwersytet Rzeszowski) 생물학 및 생명공학 연구소 교수에게 이 문제의 답을 찾고자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에바 벵그진(ewa węgrzyn) 폴란드 제슈프 대학교(Uniwersytet Rzeszowski) 생물학 및 생명공학 연구소 교수./ 제슈프 대학교

◇ 3개월간 소셜미디어 분석… 전쟁 기간 흑해 고래수 20%↓

에바 벵그진 교수는 제슈프 대학교 생명공학부 생물학과장 및 동물학위원장을 역임한 폴란드 대표 생물 연구자 증 한 명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동물학 및 조류학이다. 최근에는 생태계 파괴 및 멸종위기종에 관한 연구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벵그진 교수가 지난해부터 관심을 가진 분야는 러우 전쟁이다. 전쟁이 인근 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을 우려해서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환경부에 따르면 기름 및 오염물질 유출, 대형화재, 대기오염 등으로 인해 자연보호구역 160곳, 습지 16곳이 파괴 위험에 처했다고 한다.

벵그진 교수는 인근 해역에 서식하는 고래류에도 러우 전쟁이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 예상했다. 그는 “연구팀은 항상 무시돼왔던 ‘말 없는 희생자’들의 피해 규모를 알아보고자, 러우 전쟁 기간 흑해 지역의 고래 사망률 변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쟁 중 희생당한 동물의 피해규모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당장 인간에게 가해지는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다른 생태계 피해 규모를 파악하는데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다. 벵그진 교수 역시 “전쟁은 인간에게 너무나 큰 고통을 줬기 때문에 다른 생물들에 대한 피해는 대부분 무시돼 정량화조차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연구진이 고안한 연구 방법은 ‘시민 과학(Citizen science)’이었다. 이는 과학자와, 전문 지도를 받은 일반 대중이 함께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연구 방법이다. 자연 생태계 조사 등 광범위한 데이터 수집이 필요한 분야에서 매우 효과적인 연구 방법 중 하나로 꼽힌다.

벵그진 교수팀이 고안한 시민 과학 프로젝트는 ‘소셜미디어’ 데이터 분석이다. 각종 SNS, 온라인커뮤니티 등에 올라온 고래 사체 이미지, 고래 사망 정보를 수집·분석한 후, 러우 전쟁 지역과 밀접한 곳의 데이터만 추려낸다. 그 다음 고래가 어떤 식으로 죽었는지 과학자들이 분석하는 방식이다.

벵그진 교수는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소셜미디어가 장기간에 걸친, 또 넓은 지역 등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3개월 동안 소셜미디어에 게시된 고래 폐사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다”고 말했다.

3개월의 분석 결과, 벵그진 교수팀은 흑해에서의 러시아·우크라이나군의 군사활동이 고래종의 사망률 증가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산출하는데 성공했다. 조사 기간 동안 수집된 고래류 사체 관련 데이터는 약 2,500건이었다. 벵그진 교수에 따르면 죽은 고래의 6~8%만이 해변으로 밀려오고, 나머지는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즉, 전쟁 기간 동안 죽은 고래의 숫자는 3만7,500~4만8,000마리로 추산할 수 있다. 이는 흑해에 서식하는 고래 숫자의 약 17~20% 수준이다.

벵그진 교수는 “전쟁 전 흑해에 서식하는 고래 개체수는 약 25만3,000마리 정도였으나, 3개월 만에 20% 가까이 개체수가 감소했다”며 “이는 일반적인 고래 폐사율의 8.8~14.3배나 높아진 수치”라고 설명했다.

이어 “가장 큰 피해를 본 고래종에는 ‘하버돌고래(Phocoena Phoocoena)’, ‘짧은부리코돌고래 (Delphinus delphis)’, ‘큰돌고래 (Tursiops truncted)’ 등이 있다”며 “특히 하버돌고래는 2019년 개체수가 90~970마리 수준이었기 때문에, 전쟁이 지속될 경우, 흑해 지역에서 멸종당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군인들의 포격과 감압병 등으로 인해 죽은 돌고래들의 모습./ 제슈프 대학교

◇ 군함의 음파 신호는 고래를 굶어죽게 만들었다

러우 전쟁이 가장 큰 피해를 입힌 지역은 어딜까. 벵그진 교수는 “이를 정확히 특정하긴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고래 사체가 해안으로 떠밀려오기 전 해류를 타고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이동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고래가 흑해의 어디에서 죽었는지 지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고래의 사체에 남겨진 상처, 변색, 부패 상태 등을 고려해 추측해볼 수는 있다.

벵그진 교수는 “3개월간의 조사 과정에서 해안으로 밀려온 고래들의 몸에 이전에 없었던 부상이 발생했음을 확인했다”며 “특히 폭발로 인한 화상자국과 피부 변형 등으로 미뤄볼 때 러시아의 오데사 항구 및 주변 환경 포격에 의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고래에게 피해를 준 원인에는 무엇이 있을까. 벵그진 교수는 기뢰 등 폭발이 고래의 떼죽음에 결정적 영향이 있을 것으로 봤다. 주변 폭발로 겁을 먹은 고래들이 수면 위로 빠르게 상승할 경우, ‘감압병’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감압병은 체내 혈액 속에 들어있던 질소가 기포화되는 증상이다. 깊은 물속에서 빠르게 수면 위로 올라올 때 주로 발생한다. 인간 잠수부들에게도 자주 발생하는데 주로 관절통, 내출혈, 근육통, 경련 등을 일으키며,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하지만 벵그진 교수는 폭격으로 인한 감압병보다 더 위험한 것은 ‘음파탐지기(SONAR, Sound Of Navigation And Ranging)’라고 봤다. 러시아 해군이 다수 보유한 군함과 잠수함에서 발생한 음파탐지신호가 고래의 ‘멜론(melon)’ 조직을 파괴해, 사냥 및 수영 등의 생존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 

멜론은 이빨고래류의 이마에 있는 조직이다. 지방으로 이뤄져 말랑말랑한 멜론은 고래의 초음파 조절 및 주파수 설정을 담당한다. 이때 잠수함과 군함에서 발생한 음파탐지신호는 멜론 조직이 버틸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초음파다. 이 신호가 지속적으로 가해지면 멜론 조직 내부엔 미세 손상이 발생하게 되고, 고래는 다른 고래와의 의사소통 및 방향 위치 추적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벵그진 교수는 “루마니아의 생물학자 라즈반 포페스쿠(Razvan Popesku) 박사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흑해에서 죽은 돌고래들의 멜론 안에는 미세병변이 있었다”며 “이는 음파 노출로 인한 전형적인 손상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고래들의 경우 지방층이 1.5㎝ 미만에 달했는데, 이것은 고래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굶주렸는지를 나타내는 증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군함 및 잠수함에서 사용되는 음파탐지기 신호는 최대 90해리(166.7㎞)의 거리에 걸쳐 고래류의 행동을 방해할 수 있다”며 “전쟁 동안 점점 확장되는 대규모 군사 작전이 흑해에서 고래들에게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음파탐지기에 의한 멜론 손상으로 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돌고래의 모습./ 제슈프 대학
음파탐지기에 의한 멜론 손상으로 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돌고래의 모습./ 제슈프 대학

◇ 고래 보호, ‘종전’만이 유일한 길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우리가 흑해의 고래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이렇다 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잠수함의 음파탐지기의 경우, 사용되는 주파수가 정해져있기 때문에 당장 변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전문가들의 관련 연구 역시 미비한 상태다. 

국내에서 고래 연구를 담당하는 연구기관인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의 한인우 연구원도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전시 상황 등 특별한 상황이 아니다보니 국내 연구진 중에선 관련 연구를 진행한 사례가 없다”며 “군함의 음향신호 관련해서는 자세한 연구가 이뤄진 사례는 별로 없고, 고래의 해안가 좌초, 혼획 대책 등에 주로 연구를 진행한다”고 전했다.

벵그진 교수는 “전쟁의 비극으로부터는 어떤 동물종도 보호받을 수 없다”며 “전쟁 동안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도 돌보기 힘들기 때문에 다른 종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람들이 전쟁으로부터 스스로를 막을 수 없다면, 수천 마리의 무고한 고래들이 희생당하게 될 것”이라며 “유일한 해결책은 전쟁을 멈추는 것이지만, 과학자들에게 이를 막을 힘이 없으며 흑해의 고래를 도울 방법은 사실상 없는 우울한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지리한 전쟁은 지금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희생자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지금까지 최대 약 31만명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상황에서 고래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은 어쩌면 위선자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인간과 고래 두 종 모두를 위해선 전쟁을 끝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만약 이 전쟁을 끝내지 못한다면 다음 희생자는 고래가 아닌 인간 자신이 될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전쟁은 승자가 없고 모두가 패자’라는 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근거자료 및 출처
The use of social media in assessing the impact of war on cetaceans
2023. 4. 5 The Royal Society
Impacts of Navy Sonar on Whales and Dolphins: Now beyond a Smoking Gun?
2017. 9. 17 Frontiers in Marine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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