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보다 메신저가 중요할 때가 있다. 송 왕조 시절 대대적인 개혁을 했던 왕안석(좌),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우). / 위키백과 한국, 뉴시스
메시지보다 메신저가 중요할 때가 있다. 송 왕조 시절 대대적인 개혁을 했던 왕안석(좌),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우). / 위키백과 한국, 뉴시스

시사위크=서예진 기자  ‘메시지’가 중요할까, ‘메신저’가 중요할까. 메시지의 옳고 그름이 우선 중요하다. 그러나 메신저에 대한 호불호가 메시지 수용을 막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어떤 메신저가 어떤 메시지를 내느냐’를 놓고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이는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메신저가 누구인지, 혹은 메신저의 태도에 따라 메시지를 해석하기 때문이다. 

◇ 왕안석의 희녕변법

1,000년 전 중국으로 가보자. 당시 중국은 송(宋, 북송) 왕조 시절이었다. 우리는 당대 인물 중 한 사람의 이름이 아주 익숙하다. 바로 포청천이다. 이마에 초승달이 있고 개작두를 대령하라던 드라마 속 그 인물이다. 사실 포청천은 별명이고, 그의 이름은 포증(包拯)이다. 하지만 오늘은 포청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1,000년 전 중국은 송 왕조가 다스리고 있었다. 송은 1038년 티베트 계열 탕구트족이 세운 서하(西夏)와 오랜 기간 전쟁을 치렀다. 양쪽은 화평조약을 맺는데 서하는 송에 신하의 예를 취하고, 송은 매년 비단 13만필, 은 5만냥, 차 2만근을 보내게 된다. 결국 송은 여러 요인으로 재정 파탄 지경에 몰렸다. 

이 상황에서 나타난 인물이 왕안석(王安石)이다. 왕안석은 송 신종에 등용돼 1069~1074년에 걸쳐 개혁 정책을 시행했다. 희녕 2년(1069년)부터 시행된 이 개혁을 희녕변법(熙寧變法)이라고 한다. 희녕변법은 당대 큰 반향을 불러왔다. 기존에 기강의 혁신, 조정의 근검절약을 주장했다면 희녕변법은 정치, 재정, 군사 정책 전체를 혁신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희녕변법은 국가의 재정난을 극복하고 대지주와 대상인의 횡포로부터 농민과 중소상인들을 보호해 부국 강병을 이루려는 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 춘궁기에 상평창에 보관하던 곡식을 낮은 이자로 농민에게 빌려준 뒤 가을에 돌려받거나 세제 개혁안, 중소상인에게 저리로 돈을 빌려주고 물가가 하락하면 상품을 고가로 매수하고 상승하면 저가로 되파는 등의 방안이 담겼다. 

다만 왕안석의 개혁은 현실에 맞지 않는 등의 문제가 있었고, 기득권층의 저항도 거셌다. 또 정계의 급변으로 구법파(개혁반대파)가 신법파(개혁추진파)를 몰아내고, 구법파의 당수 사마광(司馬光)은 왕안석의 개혁안을 모두 폐지시켰다. 사마광이 재상에 올라 사망하기까지 1년 4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여기서 우리는 왕안석 개혁안의 옳고 그름을 논하지 않는다. 오늘의 주제는 그의 개혁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왕안석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예정이다. 왕안석이라는 인물은 당대에만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이 아니라, 후대 지식인 사이에서도 뜨거운 화두였다. 조선조 지식인들도 왕안석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내린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 왕안석과 김은경 혁신위

우선 ‘세종실록’에 실린 왕안석의 평가를 보자. 변계량(卞季良)은 세종에게 “성격이 온화하고 어질며 부지런함은 사마광이 최고다. 왕안석은 문장이 뛰어나고 정사처리에 능하며 마음 씀씀이가 그(사마광)에 미치지 못한다 해서 소인(小人)이라 할 수는 없다”고 평했다. 이에 세종은 “왕안석은 소인이면서 재주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왕안석의 인품에 대한 평가인 셈이다. 

이익(李瀷)은 왕안석을 “학문을 논하여 집요한 면이 있어 나라를 그르친 점(執拗誤國)이 있다”면서도 “세상을 속이고 임금의 은총을 취하는 자라고 한다면 그(왕안석)는 필시 불복할 것”이라고 평했다. 즉 왕안석의 개혁 의도는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 성격이 지나치게 집요해 실패했다는 뜻이다. 

또 연산군 시절 신하들은 상소를 통해 “왕안석은 속으로는 간사하고 교활하면서 겉으로는 질박한 척 하며 스스로 도덕과 경술을 자기의 소임으로 삼았다. 또 변법을 만들어 기존의 법을 고쳐 어지럽히고 자신의 주장만 집요하게 밀어붙였다”고 꼬집었다. 남구만(南九萬)은 “사람들의 말을 굳이 돌아볼 것이 없다고 여긴 것이 그의 죄상 중 가장 큰 것”이라고 왕안석을 평했다. 

이외에도 왕안석의 태도를 지적하는 기록이 다수 남아 있다. 아무래도 그는 독선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개혁의 내용보다 왕안석의 태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좀 더 많아 보인다. 이는 메신저에 대한 공격으로 해석된다. 메시지의 옳고 그름은 논쟁의 여지로 남겨둘 수 있으나, 메신저의 태도는 공격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회가 지난 10일 활동을 마무리했다. 당내에선 혁신안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혁신위가 조기 종료한 데는 혁신의 메시지(내용)만이 원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김은경 위원장의 노인 관련 발언이 촉매제 역할을 했다. 김 위원장이 사과하기까지 며칠의 시간이 걸리면서 혁신위 폐지 목소리까지 나왔다. 

일각에선 혁신위에 대해 “‘군기반장’을 하라고 그랬더니 ‘완장혁신’을 한다는 비판을 스스로 자초하는 꼴”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결국 이번 혁신위는 메신저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혁신안의 내용은 당내에서 평가받겠으나, 혁신위의 태도가 혁신안 평가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근거자료 및 출처
조선조 문인의 王安石 및 그의 新法에 대한 평가 / 조규백 
2022. 12 대동문화연구 제120호
중국 전근대 지식인의 王安石 평가 / 이근명 
2019. 10 역사와 담론 제9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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