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젊었을 땐 사계절 중 여름을 가장 좋아했지만 지금은 아닐세. 한두 살 더 먹을수록 점점 더 여름나기가 쉽지 않네. 햇볕이 무서워서 집밖에 나갈 엄두도 나지 않아. 하천이나 바닷가 백사장에서 노인을 보기 힘 드는 걸 보면 나만 땡볕을 싫어하는 건 아닌 것 같네. 어릴 적에는 여름 내내 냇가에서 동무들과 미역 감고 놀다보면 금방 가을이었는데, 이제 여름이 너무 길고 견디기도 힘들어. 그래서 기후변화와 기후위기에 관한 책을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생각하고 걱정하는 지도 몰라.

“지구 온난화 시대가 끝나고 지구 열대화 시대가 시작됐다”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의 말처럼 기후위기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 같네. 기후위기를 넘어 ‘기후 재난 시대’가 된 거야. 7월과 8월에 세계기상기구(WMO)와 외신들이 쏟아낸 기후 관련 소식들을 보면, 대부분 ‘폭염’과 ‘산불’이야. 북미, 남아메리카, 중국,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를 폭염이 휩쓸고 있어. 심지어는 지금 겨울이어야 할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최고 기온이 각각 37.0도와 38.0도를 기록했다니…… 갑자기 무서워지지 않는가? 우리 설날 기온이 35도를 넘었다고 상상해보게. ‘겨울 폭염’속의 설날,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이럴 때 인류는 어떻게 해야 할까?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전 세계가 온실가스 감축에 합의했지만 그 이후에도 온실가스 배출은 줄지 않았네. 오히려 더 늘어났어. 작년에는 전 세계가 연간 온실가스 배출 최고치를 경신했네. 그래서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지구 평균온도 상승 폭을 1.5도 이내로 유지하는 게 이미 틀렸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 내 생각도 비슷해. 인류가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고, 미국식 ‘대량생산 대량소비’삶의 방식을 버리지 않는 한 온실가스 배출 감축은 결코 쉽지 않을 거야. 그래서 지구 가열화(global heating)와 기후붕괴(climate breakdown)는 인류가 피할 수 없는 암담한 미래 같아 보이네.

이럴 때 필요한 게 ‘희망’인데, 어디를 봐도 암담하기만 하네. 그렇다고 송나라의 농부처럼 나무 그루터기를 지키고 앉아 토끼가 부딪쳐 죽길 기다릴 수는 없지(수주대토守株待兎). 두 앞발을 높이 치켜들고 수레바퀴 앞에 버티고 선 사마귀(당랑거철螳螂拒轍)를 따라하지는 못할지라도 인류 앞에 놓인 암울한 상황이 더 악화되는 걸 막기 위해서는 뭔가 해야 하는 게 기후재난시대를 살고 있는 시민의 의무라고 생각해. 왜냐고? 탄소배출량을 조금이라도 더 일찍 줄일수록 우리들, 특히 우리 후손들이 치르게 될 대가가 줄어드니까.

그래서 2012년 IPCC 보고서를 썼던,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지구 물리학과 기후 위험 분야 명예교수인 빌 맥과이어(Bill McGuire)는 『기후변화, 그게 좀 심각합니다: 지구인을 위한 안내서』의 ‘에필로그: 지구 우리는 무엇을?’에서 “고속도로나 정유소 입구를 맨몸으로 막아서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면 그렇게 하라”고 말하네. 이런 공격적인 방식은 싫다고? 그럼 이런 일은 어떤가. “전기차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비행기를 타지 않고, 친환경 에너지 요금제로 전환하고, 육류를 덜 먹고, 친구와 가족에게 우리가 어떤 곤경에 처했는지 알리고, 정치인들에게 영향력과 투표권을 행사하여 기후 비상상태를 논의하고 실천하는 정부가 집권하도록 만드세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일 들일세. 물론 그 마음을 바꾼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만….

최근에 읽은 시 하나 소개하고 싶네. 많은 사람들이 이 시인처럼 대자연 앞에서 겸손하게 자연의 순리를 따르면서 산다면, 인류의 미래가 지금처럼 암담하지는 않을 걸세. ‘지구 행성의 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심연에서 생태학적 상상력을 그물질하는 시인’ 최계선의 <따라간다>를 조용히, 눈을 감고 읊어보게. 시를 따라가다 보면 저 멀리 숲길 끝에 옹달샘이 보일 걸세. 자연, 지배하지 말고 따라가야 하네.

“물 길으러/ 뒷산 계곡/ 숲길 간다// 샘으로 가는 이 길은/ 사람이 낸 게 아니다/ 샘을 찾은 것도/ 내가 아니다// 숲의 주인들이 오가며 들르던/ 옹달샘/ 숲길을/ 나는 따라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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