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장 의존도 높은 반도체 장비 회사 타격 불가피
삼성·SK하이닉스 등 고대역 메모리 기업엔 오히려 ‘기회’

미국 정부가 지난 9일 발표한 AI·반도체·양자컴퓨터 투자 규제 관련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이로 인해 국내 반도체 업계에도 어느 정도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미국 정부가 지난 9일 발표한 AI·반도체·양자컴퓨터 투자 규제 관련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이로 인해 국내 반도체 업계에도 어느 정도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미국의 대(對)중국 규제로 발발한 ‘반도체 차이나(China) 리스크’가 현실화되고 있다. 1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 상반기 삼성전자 중국 지역 매출은 17조8,080억원이다. 전년 대비 41.5% 줄어든 수치다. SK하이닉스의 중국 매출도 올해 상반기 3조8,820억원으로 지난해(8조240억원)와 비교해 51.6% 감소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미·중 갈등이 격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와 더불어 양자컴퓨터 등 첨단과학기술 분야 규제에 속도를 내면서다. 이에 국내외 반도체 업계의 불안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 中 AI·반도체·양자 투자 규제… 韓장비 업계 타격 예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일 △반도체 및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양자 정보 기술 △ 인공지능(AI) 시스템 3개 분야에 대해 미국 자본의 대중 투자를 규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인수합병(M&A)과 합작사업, 사모펀드, 벤처캐피탈 등의 대중 투자 모두 규제 대상에 올랐다.

이번 행정명령은 미국의 국가 안보 차원에서 마련된 것이다. 중국이 군사 기술에 활용할 수 있는 첨단기술개발에 미국 자본이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 AI, 반도체, 양자컴퓨팅 관련 투자를 진행하는 기업은 사전에 투자 계획을 의무적으로 신고하야 한다. 투자 금지를 포함한 규제권은 미 재무부에서 관리하게 된다.

이번 규제가 반도체 업계 위기 장기화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중국 해관총서에서 지난 8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첫 번째 반도체 규제 이후, 중국의 반도체 수입량은 16.8%나 감소했다. 이번 규제 범위가 지난해 규제보다 훨씬 광범위한 기술 범위인만큼, 그에 따른 피해 규모도 커질 가능성도 높다.

특히 글로벌 반도체 업계가 특히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이는 곳은 ‘인공지능(AI)’ 분야다. 현재 반도체 산업계의 가장 큰 먹거리인 AI반도체 수출이 제한받게 될 경우, 적잖은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실제로 지난 6월 말 미국 상무부가 미국 내 반도체 업체가 제조하는 AI반도체에 대해서 중국 고객 출하 중단을 명령한 이후, 글로벌 AI반도체 핵심 기업인 ‘엔비디아(NVIDIA)’의 주가가 2% 이상 하락하기도 했다.

우리 기업들의 피해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곳은 소재 및 부품, 장비 업체들이다. 국내 반도체 장비 기업들의 대중 수출 비중이 매우 높아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따르면 한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액의 69.7%를 중국이 차지한다. 이는 약 22억달러(2조9,416억원) 규모로 2위 대만(3,610억원)의 8배가 넘는 규모다.

류성원 산업혁신팀장도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중국 반도체 공장에 수출하는 우리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은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 “오히려 기회일수도”… HBM산업엔 ‘양날의 검’

반도체 장비뿐만 아니라 ‘고대역폭메모리(HBM)’ 산업 성장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HBM은 여러 개의 D램(RAM) 반도체를 수직으로 쌓아 만드는 반도체로, AI연산 성능을 극대화 시켜준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Trendforce)’에 따르면 HBM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각각 50%, 40%로 전체 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KB경영연구소는 ‘인공지능(AI) 시대 새로운 성장 동력 HBM’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AI연산에 필요한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의 대중국 수출을 제한하면서 HBM 성장세에 제동이 걸릴 우려가 엿보인다”며 “중국 AI반도체 시장이 침체될 경우, 국내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의 HBM 매출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당장 눈에 띄는 피해가 발생하진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번 규제 대상이 ‘미국 자본’으로 한정됐기 때문이다. 다만 지난해 발표한 반도체 수출 규제처럼 미국이 동맹국에 동참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어,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분위기다.

류성원 전경련 산업혁신팀장은 “미국의 중국 반도체·AI·양자컴퓨팅 분야 기술 투자를 규제한 것은 규제대상이 미국자본”이라며 “당장은 우리 기업에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정민규 상상인증권 연구원도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AI와 양자컴퓨터 시장은 중국뿐만 아니라 모든 지역에서 크게 성장하는 분야”라며 “꼭 중국을 미국이 강하게 견제한다 해서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에 크게 안 좋은 영향이 가진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반도체 제조 기업에겐 호재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국내 메모리 기업 입장에서 HBM연구 및 생산시설을 미국에 설립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는 것. HBM은 연구개발 단계부터 GPU 기업들과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때문에 효율성 측면에서 미국에 관련 시설을 설립하는 것이 유리하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텍사스주에 건설 중인 파운드리 공장을 이용해 HBM제조 및 협력 경쟁력 확보가 가능하다.

KB경영연구소는 “엔비디아, AMD, 인텔 등 주요 GPU 기업을 보유한 미국이 HBM의 최대 수요처로 부상하고 있다”며 “중국 규제시, 현지 시장에 인접한 생산 시설 구축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류성원 산업혁신팀장도 “반도체 수출 규제처럼 미국이 한국 등 동맹국에도 동참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며 “중국이 투자 규제 등으로 반도체 수출에 제동이 걸리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우리 기업엔 되레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근거자료 및 출처
삼성전자 반기보고서
2023. 8. 14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SK하이닉스 반기보고서
2023. 8. 14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한국 반도체 산업의 공급망 리스크와 대응방안
2021. 11. 23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인공지능 시대 새로운 성장 동력 HBM(고대역폭메모리)
2023. 7. 24 KB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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