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평생 자네와 허물없이 가깝게 지내왔지만 언젠가는 서로 잊게 마련이네. 그런데 자네는 나의 겉에 드러난 면만 가까이해서 이를 따르려고 하니 슬프지 아니한가! 그건 이미 지나간 것인데 자네가 지금 있기라도 한 듯 구하려고 들면 이는 말을 빈 마구간을 구하는 격이네. 내가 자네를 기억하는 건 순간에 지나지 않고, 자네가 날 기억하는 것도 순간에 지나지 않네. 그렇다고 자네가 괴로워할 까닭은 없지! 예전의 나를 잊어도 끝없이 새롭게 태어나는 내가 있으니까. 자네에게 나는 결코 잊혀질 수 없는 존재일 것이네.”(김정탁 역)

『장자』 「전자방(田子方)」 제3장에 나오는 공자의 말일세. 선생님께서는 벼슬을 한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 제자 안회(顔回)의 질문에 공자가 했던 대답의 끝 부분이야. 공자는 스승으로부터 겉만 배우지 말고 내면을 배워야 말한다면서, 자신은 만물이 그러는 것처럼 자연의 변화를 따라갈 뿐이라고 말하네. 자고나면 동쪽에서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듯이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고 있을 뿐이라는 거지. 내가 자주 언급하는 ‘일일신 우일신’을 실천하는 공자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없네. 몸과 마음, 지향하는 가치와 취향, 사랑과 우정, 심지어 식성까지도 세월이 가면 변해. 영원히 머무는 것도 없고, 고정된 실체도 없어. 불가에서 말하는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제법무아(諸法無我)의 가르침이야. 지난 10여년 불교와 노자, 장자를 공부하면서 얻은 내 나름의 깨우침이기도 해. 어렸을 때 참이라고 여겼던 게 청년일 때까지 참이기는 어렵고, 청년 때 진리로 받아들였던 게 노년에서도 진리이기는 어려워. 60년 이상 세상 경험과 많은 공부를 하고서도 어렸을 때랑 세상을 보는 눈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닐까? 그런 분들은 아마 학교나 사회에서 너무 과잉사회화를 당했거나, 게을렀거나, 부자 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공부는 전혀 하지 않았거나,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살았던 사람들 중 하나 일 가능성이 높아.

요즘 ‘예전의 나’에만 익숙한 사람들을 만나면 힘들 때가 많네. 누구 못지않게 애주가였던 내가 술도 마시지 않고(그래서 자연스럽게 말이 줄었다), 정해진 식사 시간에 소식을 고집하는 ‘현재의 나’가 그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올 거라는 걸 나도 알기 때문이야. 위 인용문의 안회처럼 빈 마구간에서 말을 찾는 격이니 황당하기도 하고. 그들 중에는 분명 실망이 커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을 거야. 그런 분들에게는 먼저 ‘너무 변해서 미안하다’고 정중하게 사과할 수밖에 없지. 하지만 내가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거야. ‘예전의 나’는 이미 죽었어. 그러니 거듭 새롭고 태어나는 ‘현재의 나’를 예전처럼 예쁘게 봐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되돌아보면,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생겼던 건 대부분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일 때가 많았네. 친구 자체가 아니라 친구에 대한 나의 생각, 나의 기대, 나의 이해관계 때문에 소원해져서 잃어버린 옛친구들이 많아. 그땐 왜 사람 관계도 움직이는 것이고,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몰랐을까? 한번 친구면 영원한 친구일 수밖에 없다고 오해한 거지. 하지만 이제는 아네. 모든 관계가 배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정지되어 있는 관계는 위험하다는 것을. 함께 노력하고 변해야 오래 지속된다는 것을. 이건 부부관계에서도 마찬가지야.

터키 시인인 하룬 야히아의 <새와 나>라는 짧은 시일세.

“나는 언제나 궁금했다./ 세상 어느 곳으로도/ 날아갈 수 있으면서/ 새는 왜 항상/ 한곳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그러다가 문득 나 자신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푸른 가을 하늘을 훨훨 날고 싶지 않는가?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한곳에서만 머물다 가는 건 억울하지. 이제라도 우리 함께 힘차게 날아보세. 그러기 위해선 먼저 변해야 해. 북쪽 깊은 바다의 곤(鯤)이라는 큰 물고기가 붕(鵬)이라는 큰 새로 변하여 남쪽 바다로 날아가듯이. 우리 나이에는 남의 눈치 볼 필요 없어. 참새나 까치 같은 작은 새들이 어찌 대붕의 큰 뜻을 알겠는가? 장자 선생님 말처럼, 작은 지혜는 큰 지혜에 미치지 못하는 법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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