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북한학 박사.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북한학 박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올 여름 도발 행보는 심상치 않은 양상을 보였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 시험발사와 7.27 정전협정 체결 70주년 열병식에 이어 군수공장을 잇달아 방문하면서 무기생산을 늘리라고 재촉했다. 그때마다 그는 한국과 미국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드러내며 호전적 발언을 쏟아냈다.

지난 8월 29일 북한군 총참모부 훈련지휘소를 찾은 김정은 위원장의 언동은 대남 적대감의 절정을 보여줬다. 그는 한미 합동 군사연습을 맹비난하면서 “원수들의 불의적인 무력침공을 격퇴하고 전면적인 반공격으로 이행하여 남반부 전 영토를 점령할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관영 선전매체들은 전하고 있다.

북한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응한 한미 훈련을 ‘북침 연습’이라고 호도해 선제적인 기습 타격이란 점을 숨기려하고 있지만, 노골적인 남침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가 내려진 이튿날 북한군 서부지구 전술핵 운용부대가 평양순안공항에서 전술핵을 가정한 탄도미사일 발사 훈련을 진행한 것은 이를 뒷받침 한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번 발사훈련의 경우 그 시점이나 훈련의 강도가 위험 수위를 넘은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 합동참모본부의 분석에 따르면, 북한은 전술핵 탄도미사일 2발을 360km 떨어진 섬 지역 목표물에 탄착시키는 훈련을 벌였다. 이런 사거리로 미뤄볼 때 육해군공 본부가 집결돼 있는 계룡대를 겨냥한 것으로 분석되는데 “상공의 설정고도 400m에서 공중 폭발시켜 핵 타격 임무를 정확히 수행했다”는 게 북한 주장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대남 대립각 세우기는 지난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본격화 했다. 영변 핵 시설 등을 폐기하는 수준에서 대북제재 해제와 북미관계 정상화를 관철하려던 북한은 비밀 핵 시설 목록까지 들이대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에게 일격을 당하고 빈손으로 평양으로 돌아갔다.

이후 북한은 중재자나 ‘운전자’ 역할을 자처했던 문재인 당시 대통령에게 ‘삶은 소대가리‘ 등의 비방을 퍼부었고 대미협상 실책을 남 탓으로 돌렸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는 대남관계를 접고 ’대적(對敵) 관계‘로 전환하겠다는 주장을 펼치더니 실제로 막가파식 행동으로 긴장 수위를 한껏 끌어올렸다. 

급기야 지난해 9월에는 ‘핵 무력 법령화’라고 칭하는 핵 독트린을 꺼내들더니 선제 핵 타격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움직임을 벌이기도 했다. 이번 전술핵 타격 훈련과 ‘남북부 점령’ 주장은 김정은 위원장의 생각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정은 위원장이 총참모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언급한 이른바 ‘작전계획 문건’은 나름대로 구체적이고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쟁이 시작될 경우 전방부대 포병운용 계획은 물론 미군 증원 전력의 한반도 전개를 막기 위한 ‘해외무력 개입 파탄계획’ 등도 포함됐다는 게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전언이다. 사회‧정치 및 경제적 혼란 사태를 연발시킬 수 있는 핵심 요소에 대한 동시다발적인 초강도 타격이나 배후 교란작전 계획을 보면 섬뜩한 느낌을 갖게 한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관영 선전매체를 총동원해 전시 작전계획이나 전술핵 훈련의 소상한 내용을 장황하게 공개하는 배경을 생각해보면 북한이 처한 상황이 어떨지 짐작되는 바가 있다. 진짜 기습타격이나 은밀한 작전이 필요한 사안이라면 극비에 부치는 게 맞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남반부 전 영토 점령’이란 김정은 위원장의 공언은 실현가능성이 없는 허풍떨기 수준일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무력도발 가능성에는 철저하게 대비해야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공갈이나 위협은 그 실체를 드러냄으로써 막연한 불안감을 갖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게 맞다. 

김정은 위원장의 훈련지휘소 방문과 전술핵 발사훈련은 예년보다 부쩍 강화된 을지프리덤쉴드(UFS) 한미 합동 군사연습에 맞대응하려는 성격을 띤다. 과거 북한의 최고지도자들은 한미 훈련 때 공개 활동을 자제하거나 동선을 아예 감췄다. 김정은 위원장도 집권 초 이런 모습을 보였지만 최근 들어 이 기간에도 도발을 하며 맞서려는 형국이다.

하지만 한미의 압도적 전력을 감안하면 김정은 위원장이 언급한 작전계획은 허황하기까지 한 측면이 있다. 마치 한미 측의 군사전력은 손발을 묶어놓고 북한만 핵과 미사일은 물론 재래식 무기와 병력을 동원해 이런저런 작전을 펼치겠다는 모양새다. 

현실은 미국의 폭격기와 핵잠수함을 비롯한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에 전전긍긍하고 대응책에 부심해야 하는 게 북한의 진짜 모습이란 걸 보여준다. 특히 이에 맞대응한다는 차원에서 핵·미사일 도발이나 재래식 전력을 동원한 훈련을 벌여야 하는 상황은 북한의 군사력이나 경제 능력으로 볼 때 감당하기 힘든 상황을 초래할 공산이 크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 지도부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다.

이미 북한은 한계상황에 도달해 있다. 최고지도자가 식량생산 문제를 걱정하며 논두렁을 나가봐야 하는 모습이나 ’아사자가 속출한다‘는 대북 정보 당국의 국회 정보위 보고 내용이 이를 잘 보여준다. 경제난의 풀리지 않는 책임을 총리에게 떠넘겨 희생양 삼으려는 김정은 위원장의 속셈을 엘리트와 주민들이 모를 리 없다.

김정은 위원장의 할아버지이자 선대 수령인 김일성은 6.25전쟁 도발로 한반도 전역을 적화 하려는 꿈을 꿨다. 하지만 자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호국의지와 미국을 위시한 유엔군의 도움에 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남반부 전 영토 점령‘을 운운한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은 스스로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 전범(戰犯)이 되겠다는 공언이나 다름없다. 38살에 남침 도발을 자행한 김일성의 뒤를 39살 손자가 뒤따르겠다는 얘기다.

엄청난 국가 역량과 경제·군사력 차이를 그대로 둔 채 핵 위협과 ICBM 협박으로 불순한 뜻을 이룬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핵주먹으로 불린 전설의 프로복서 마이크 타이슨은 “누구나 다 계획은 갖고 있다. 쳐맞기 전까지는…”이란 명언을 남겼다. 실전에서 기량이나 전략 차이로 참담한 패배를 당하기 전까지 자신의 역량을 무시한 이런저런 구상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정은 위원장이 친구로 지냈어야 하는 사람은 ‘코트의 악동‘으로 불린 NBA 출신 데니스 로드먼이 아니라 타이슨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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