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47 보스톤’이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1947 보스톤’이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나라가 독립을 했으면 당연히 우리 기록도 독립이 돼야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세계 신기록을 세운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하정우 분). 기미가요가 울려 퍼지는 시상대에서 화분으로 가슴에 단 일장기를 가렸던 그는 하루아침에 민족의 영웅으로 떠올랐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더 이상 달릴 수 없게 된다.

광복 이후 1947년 서울, 제2의 손기정으로 촉망받는 서윤복(임시완 분)에게 손기정이 나타나고 밑도 끝도 없이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나가자는 제안을 건넨다. 일본에 귀속된 베를린 올림픽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가슴에 새기고 달려 보자는 것. 운동화 한 켤레 살 돈도 없던 대한의 마라토너들은 미국 보스턴으로 잊을 수 없는 여정을 시작한다. 

영화 ‘1947 보스톤’(감독 강제규)은 1947년 광복 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 대회에 출전하기 위한 마라토너들의 도전과 가슴 벅찬 여정을 그린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영화 ‘은행나무 침대’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등 한국영화의 패러다임을 바꾼 강제규 감독이 영화 ‘장수상회’(2015) 이후 8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으로 주목받고 있다. 

진정성 있는 열연으로 ‘1947 보스톤’을 빛낸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하정우와 김상호, 임시완. / 롯데엔터테인먼트
진정성 있는 열연으로 ‘1947 보스톤’을 빛낸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하정우와 김상호, 임시완. / 롯데엔터테인먼트

담백하면서도 진하다. 영화는 한국 마라톤 전설 손기정 선수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영웅 서윤복 선수의 실화를 억지 눈물을 강요하거나, 감동을 위한 작위적인 설정 없이 담담하면서도 묵직하게 풀어낸다. 소위 말하는 ‘신파’도, ‘국뽕’도 없다. 그럼에도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건 조국의 독립을 알리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렸던 이들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 실화 그 자체의 힘이다. 

스포츠 영화로서의 재미도 놓치지 않는다. 박진감과 통쾌함, 희망적인 메시지까지 모두 담았다. 특히 실제 마라톤 경기를 보는 듯한 생생한 현장감과 몰입감 넘치는 연출로 이미 알고 있는 결과에도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하게 만든다. 이들의 꺾이지 않는 의지와 뜨거운 용기, 열정은 시대를 초월한 공감과 울림을 안긴다. 

배우들의 진정성 있는 열연도 돋보인다. 특히 서윤복을 연기한 임시완은 마라토너의 단단하고 다부진 체구 등 외적 변신부터 극한의 상황을 이겨내는 단단한 정신력과 투지까지 뜨겁게 빚어내며 서윤복 그 자체로 살아 숨 쉰다. 흠잡을 데 없는 열연으로 제 몫, 그 이상을 해낸다. 

하정우는 가슴에 일장기를 단 채 시상대에 올라야 했던 손기정 선수의 울분부터 1947년 최초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 대회에 참가하게 된 국가대표 마라톤팀 감독의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까지 폭넓게 소화하고, 김상호는 보스턴 현지에서 국가대표팀을 돕는 재정보증인 백남현을 개성 넘치는 연기로 그려내 유쾌한 활력을 불어넣는다. 

오랜만에 관객 앞에 서는 강제규 감독은 “1947년은 혼란스럽고 희망이 부족했던 시기”라며 “그런 상황에서도 목표를 이루고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을 통해 힘과 용기를 전하고 싶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러닝타임 108분, 오는 2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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