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지난 몇 달 동안 지구가 펄펄 끓었다는 게 통계수치로도 확인되고 있네. 미국국립해양대기국(NOAA)의 발표에 따르면, 2023년 8월의 세계 평균 기온은 NOAA의 174년 관측 역사상 가장 높은 17.1℃였어. 20세기 8월 평균 기온보다 1.25℃ 높은 수치야. 해수면 온도도 지난 4월부터 8월까지 5개월 연속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어. 6월과 7월의 평균 기온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세계기상기구(WMO)의 발표는 이미 두 달 전에 비행수치(flight shame)를 이야기할 때 말했지. 지난여름은 정말 “지구 온난화 시대가 끝나고 지구 열대화 시대가 시작됐다”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의 말이 실감나는 계절이었어.

점점 심각해지는 기후재난 시대에 인생의 말년을 보내고 있는 나 같은 공부 좀 한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근래에 자주 하는 고민일세. 자본주의 체제를 버리는 혁명적인 전환 없이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은 알아. 솔직히 말하면, 인간이 지구가열화를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야. 대기 중에 온실가스가 너무 많거든. 지금이 앞으로 100년, 200년 인류가 감당할 수밖에 없는 고행의 시작 단계라고나 할까?

“秋燈掩卷懷千古(추등엄권회천고)/ 難作人間識字人(난작인간식자인).” 요즘 자주 떠올리는 매천(梅泉) 황현(黃玹)의 시행(詩行)일세. 조선이 망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읊었던 세 번째 절명시(絶命詩)에 나오는 유명 싯줄이지.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날 생각하니,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기만 하구나.”요즘 내 심정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북송의 시인 동파(東坡) 소식(蘇軾)이 “人生識字憂患始(인생식자우환시)/ 姓名麤記可以休(성명취기가이휴)”라고 읊었는지도 몰라. 글자를 알면 근심걱정 시작되니 이름자 대충 쓰기 시작하면 그만 배워도 좋다는 뜻이야.

그래도 기후위기와 재난 시대를 함께 통과하고 있는 동시대인들이 좀 더 생태친화적인 세계관과 자연관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네. 그래서 소개하는 두 편의 비교적 짧고 이해하기 쉬운 생태시일세. 추석 연휴에 남쪽 하늘에 뜬 보름달 보면서 지구와 우주와 생명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길 바라네. 먼저 김준태 시인의 <콩알 하나>야.

“누가 흘렸을까// 막내딸을 찾아가는/ 다 쭈그러진 시골 할머니의/ 구멍 난 보따리에서/ 빠져 떨어졌을까// 역전 광장/ 아스팔트 위에/ 밟히며 뒹구는/ 파아란 콩알 하나// 나는 그 엄청난 생명을 집어들어/ 도회지 밖으로 나가/ 강 건너 밭 이랑에/ 깊숙히 깊숙히 심어 주었다// 그때 사방 팔방에서/ 저녁노을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골 할머니의 구멍 난 보따리에서 빠져 나와 역전 광장에서 뒹굴고 있는 콩알 하나를 주어다가 강 건너 밭이랑 깊숙이 심어주는 마음. 가슴이 따뜻해지지 않는가. 생명 있는 것들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 없이는 아무나 베풀 수 있는 자비가 아니야. 시인은 그 콩알 하나를 ‘엄청난 생명’이라고 하네. 저 콩알 하나가 발아해서 잘 자라면 다시 수많은 콩들이 열리니 엄청난 생명일 수밖에.

안도현 시인의 <깃털 하나>도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노래하고 있는 시일세.

“거무스름한 깃털 하나 땅에 떨어져 있기에/ 주워 들어보니 너무나 가볍다/ 들비둘기가 떨어뜨리고 간 것이라 한다/ 한때 이것은 숨을 쉴 때마다 발랑거리던/ 존재의 빨간 알몸을 감싸고 있었을 것이다/ 깃털 하나의 무게로 가슴이 쿵쿵 뛴다”

들비둘기가 땅에 떨어뜨리고 간 가벼운 깃털 하나로 가슴이 쿵쿵 뛰는 시인과 콩알 하나를 주어 땅에 묻어주는 사람의 마음은 같은 것일세. 둘 다 생명에 대한 사랑과 경외심이 있어야만 가능한 아름다운 마음이지. 콩알 하나든 깃털 하나든, 거기엔 우주가 들어 있고, 콩이라는 식물과 들비둘기라는 새가 살아온 역사가 들어있기 때문에 소중하고 거룩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거야. 그래서 ‘생태 영성(Ecological Spirituality)’과 생태 감수성(Ecological Sensibility)’을 가진 분들은 콩알 하나와 깃털 하나에서도 ‘생명’을 느낄 수 있어. 물론 자본의 필요에 맞게 사회화된 뇌를 가진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황당한 헛소리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마지막으로 오래 전 이현주 목사의 책 《사랑 아닌 것이 없다》에서 읽었던 짧은 글 하나 소개하고 싶네. “호박씨 한 알 종이에 올려놓고 그윽한 눈길로 바라본다. 착시일까? 엷은 풀색 그림자가 물결처럼 겹쳐 흐르는 가운데, 희고 투명한 빛이 황금색으로 빛나는 호박씨를 감싸고 있다. 아! 호박씨 한 알에도 후광이 있구나!” 이번 추석에는 생명 있는 것들에서 후광(Halo)을 보는 영성의 시간을 갖길 바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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