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규 감독이 영화 ‘1947 보스톤’으로 돌아왔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강제규 감독이 영화 ‘1947 보스톤’으로 돌아왔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1947 보스톤’(감독 강제규)은 1947년 광복 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 대회에 출전하기 위한 마라토너들의 도전과 가슴 벅찬 여정을 그린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한국 마라톤 전설 손기정 선수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영웅 서윤복 선수의 실화를 담았다. 

메가폰은 영화 ‘은행나무 침대’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등 한국영화의 패러다임을 바꾼 강제규 감독이 잡았다. 영화 ‘장수상회’(2015) 이후 8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지난 27일 박스오피스 2위로 데뷔한 ‘1947 보스톤’은 주요 극장 3사 사이트에서 높은 실관람 평점을 기록하며 호평을 얻었다. 

‘1947 보스톤’은 억지 눈물을 강요하거나, 감동을 위한 작위적인 설정 없이 실화 그 자체의 힘으로 담담하면서도 묵직하게 풀어내 더 큰 감동과 울림을 선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보스턴 마라톤 대회의 생생한 현장감을 고스란히 재현, 스포츠 영화로서의 미덕도 잃지 않는다. 하정우‧임시완 등 배우들의 진정성 있는 열연 역시 호평 이유다.

강제규 감독은 최근 <시사위크>와 만나 ‘1947 보스톤’의 출발부터 캐스팅 과정, 촬영 비하인드 등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동안 다양한 작품을 통해 흥행은 물론, 묵직한 울림까지 전달해 온 그는 “내가 영화를 통해 받은 선물을 관객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해당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오랜만에 관객과 만나는 소감은. 

“설렌다.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예전에는 무덤덤했는데 지금은 조금 더 긴장되고 설렘도 있고 그렇다. 관객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개봉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는데.

“촬영 끝난 지 3년이 흘렀다. 촬영 끝나자마자 코로나19가 왔고 극장 개봉이 줄줄이 연기됐다. 굉장히 마음이 착잡했다. 조금 지나면 되겠지 했는데 너무 장기화됐고 그 과정에서 관객의 극장 관람 패턴도 바뀌었다. OTT 약진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영화계가 큰 타격을 입는 것을 보면서 굉장히 심각한 문제구나 실감했다. 무엇보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철저히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지 않았나 싶다. 큰 변화에 어떤 식으로 화답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야 할 때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실화의 묵직한 힘, ‘1947 보스톤’. / 롯데엔터테인먼트
실화의 묵직한 힘, ‘1947 보스톤’. / 롯데엔터테인먼트

-후반 작업 기간도 자연스럽게 길어졌다. 모니터링 시사도 여러 번 진행했다고.

“영화의 목적은 어떻게 보면 관객과의 교감이다. 결국은 관객을 위해 만들어지는 창작물이잖나. 예전에는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 ‘이렇게 영화를 만들었으니 관객이 알아서 판단해 주세요’라는 일방적 구조였다면, 지금은 쌍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람직한 형태인 것 같다. ‘1947 보스톤’도 블라인드 시사도 하고 예비 관객이 미완성 단계에서 영화를 어떻게 보고 어떤 문제점을 지적하는지 과정을 거쳤다. 후반작업 과정에서 최대한 관객의 생각과 정서를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신파’ ‘국뽕’ 등에 대한 우려가 컸는데, 완성된 영화는 오히려 담백한 느낌이었다. 의도한 부분인가. 

“감정의 과잉, 감정의 수위 조절을 어디까지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에 대한 고민을 시나리오 때부터 했다. 특히 최근 젊은 관객이 영화를 볼 때 감정 과잉에서 오는 신파라는 부분에 거부 반응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 측면에서 강요된 슬픔이나 눈물이 과연 적절한가라는 부분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 자기 검열과 정제를 많이 하면서 시나리오 작업을 했던 것 같다. 현재 결과물을 놓고 감동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 관객에 따라 편차가 있을 순 있겠지만, 감정적으로 불필요하게 확대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담백하게 절제하면서 세 선수의 감정을 담대하게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과장된 감정은 배제하려고 했다.”

-손기정과 서윤복, 남승룡. 세 인물에 집중하게 된 계기도 궁금하다. 

“세 선수에 대해 다 알고 있었지만 1947년 보스턴 대회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세 선수의 스토리가 한 경기에 집약돼 있다는 게 너무 신선했다. 우리나라 마라톤계에 대단한 세 인물이 한 대회, 경기 속에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갔던 이야기에 매료됐다. 세 사람의 관계, 이들의 레이스, 드라마를 보는 과정에서 나는 누구에게 조금 더 대입할 것인가 하는 다양성을 줘서 좋았다. 무조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포츠영화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마라톤을 택한 이유는.    

“대학교 시절 ‘불의 전차’(1981)를 보고 스포츠 영화가 가진 힘, 뜨거움, 열정을 느꼈다. 스포츠가 가진 낭만이 있더라. 다양한 감정이 응집돼 있다고 느꼈다. 마라톤은 굉장히 단순한 경기지만 경기에 임하는 선수의 열정과 집념, 응축된 표정과 동작이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게 시발점이 된 것 같다. 그때부터 달리는 영화, 달리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고 결국 그 끝은 마라톤이었다. 단거리도 매력적이지만 마라톤은 훨씬 더 드라마틱하고 사람을 이야기하기에, 인생을 담아내기에 좋은 그릇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제규 감독이 실화를 연출하면서 고민한 지점을 밝혔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강제규 감독이 실화를 연출하면서 고민한 지점을 밝혔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실화가 오히려 더 극적이라 정도를 조절하는데도 고민했을 것 같다. 특히 마라톤 대회에서 강아지가 튀어나오는 것은 영화적 설정이 아닌 실제 일어난 일이었다. 어떤 고민을 했나. 

“시나리오 단계부터 마지막 편집 단계까지 제일 많이 고민했던 장면이다. 자막 처리를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시나리오 단계에서는 빼야하지 않나 생각도 했다.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극적인 상황으로 보고 받아들이지 않을 위험이 있지 않을까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했다. 하지만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서윤복이라는 사람이 달리면서 가장 큰 위기가 그 순간이었는데 실제 존재했던 것을 빼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또 그렇다면 그의 위기를 어떤 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더라. 우려하는 의견이 많았지만 사실이고 가장 위기였고 극적인 순간이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게 미덕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남승룡도 큰 울림을 주는 인물이었다. 이 인물을 통해 관객에게 어떤 것을 전달하고 싶었나.  

“나를 자극하고 이 영화를 연출할 동력을 준 인물이 남승룡이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 다들 살고 있잖나. 결국은 서윤복도 우승을 한다. 남승룡은 정말 마라토너다. 36세에 마라톤에 출전하는 선수는 없다.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남승룡은 광복된 나라에서 일장기를 달고 뛰었던 한을 풀고 싶은 선수의 욕망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윤복을 빛나게 하기 위해 걸음이 되는 일을 자처한다. 자신이 2등이면 어떻고 10등, 20등이면 어떠냐 하는 자세로 달렸기 때문에 진정한 마라토너가 아닌가 생각했다. 그분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내가 배울 게 많구나 생각하게 했다.”

-임시완(서윤복 역)을 향한 호평도 쏟아지고 있다. 캐스팅 이유는. 

“시대물이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내용이기 때문에 캐릭터와의 일치율을 당연히 생각할 수밖에 없잖나. 신체적인 구조나 외형이 최대한 비슷한 배우를 찾는 게 중요했고, 그런 부분에서 임시완이 일치율이 굉장히 높았다. 아담하지만 하체가 길고 얼굴이 작고 마라톤하기에 유리한 조건인 근육형 체구를 갖고 있었다. 거기에 배우의 각고의 노력이 더해져 서윤복 선생과 비슷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임시완을 처음 본 것은 ‘미생’이었다. 이후 ‘불한당’부터 시작해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엄청난 내공을 느꼈다. 정말 물건이 하나 나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기회가 닿으면 같이 작업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시나리오를 받고 하정우, 임시완을 제일 먼저 떠올렸다.” 

흥행은 물론 묵직한 울림까지 전하는 강제규 감독. / 롯데엔터테인먼트
흥행은 물론 묵직한 울림까지 전하는 강제규 감독. / 롯데엔터테인먼트

-하정우(손기정 역)도 손기정과 흡사했다고.  

“얼굴 윤곽 느낌도 너무 비슷하고 체격 조건도, 키도 거의 비슷했다. 자세나 걸음걸이 등도 닮은 데가 있었다. 더 근접해지기 위한 배우의 노력도 있었다. 손기정 선생이 워낙 멋쟁이셨다. 운동할 때도 항상 머리를 단정하고 가지런하게 다녔던 분이라 그런 부분을 하정우가 그 당시 시대상에 맞게 잘 표현해 나갔던 것 같다. 촬영하는 내내 진짜 손기정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부분에서 흐뭇하고 기분 좋았다. (하정우가) 워낙 과하지 않게 연기를 하는 배우잖나. 어떨 때는 ‘더해도 되는데 저것밖에 안 하네’ 싶기도 했는데 막상 스크린에서 보니 더 좋더라. 훨씬 더 절제되고 함축돼 있는 연기를 하는 배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놀라움의 연속이었고 만족하고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로 천만 관객을 불러 모은 원조 ‘천만 감독’이기도 하다. 어떤 소재와 이야기를 만났을 때 마음이 움직이나. 기준이 있다면.  

“대부분 감독이 자신의 영화를 보고 삶에 어떤 자극이 되거나 새로운 좌표가 되거나 힘이 되길 바랄 거다. 관객의 마음에 오래 남아있길 원하는 거다.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다. 나 역시 영화를 통해 얻은 선물이 많다. 좋은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의 꿈이 바뀌기도 했고 생각이 변하기도 했고 삶의 자세가 전환되기도 했다. 내가 받은 선물을 다시 관객에게 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내 안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지 않나 싶다. 영화를 선택할 때도 나도 모르게 그런 기준, 그런 잣대로 시나리오를 보고 기획을 보고 아이템을 보는 것 같다. 이번 ‘1947 보스톤’ 역시 그런 마음으로 택했다.” 

-‘1947 보스톤’의 흥행에 대한 기대는.  

“코로나19 이후 어려운 상황이 되다 보니 투자가 위축돼 있다. 계속해서 반복되고 장기화되고 있기 때문에 영화계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큰 선물은 못하더라도 실망감보다는 ‘그래도 버텨줬네’ 하는 느낌을 주고 싶다. 어려운 시기에 영화인들이 새로운 동력을 얻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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