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거미집’으로 관객 앞에 선 오정세. / 바른손이앤에이
영화 ‘거미집’으로 관객 앞에 선 오정세. / 바른손이앤에이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2001년 영화 ‘수취인불명’으로 데뷔한 오정세는 역할의 크기에 상관없이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2013년 영화 ‘남자사용설명서’를 통해 코미디의 진수를 선보이며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존재감을 알린 그는 ‘타짜-신의 손’(2014), ‘조작된 도시’(2017), ‘스윙키즈’(2018) 등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했다.  

이후 2019년 개봉해 역대 전체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른 ‘극한직업’, 신드롬급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2019)에 연이어 출연하며 대세 배우에 등극했고,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2020), ‘엉클’(2021), ‘지리산’(2021), ‘악귀’(2023) 등을 통해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입증하며 ‘믿고 보는 배우’ 반열에 올랐다. 

영화 ‘거미집’(감독 거미집) 속 활약도 돋보인다. ‘거미집’은 1970년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다시 찍으면 걸작이 될 거라 믿는 김열 감독(송강호 분)이 검열과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 제작자 등 미치기 일보 직전의 악조건 속에서 촬영을 밀어붙이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작품. 

극 중 오정세는 영화 속 영화 ‘거미집’의 남자 주인공이자 바람둥이 톱스타 강호세를 연기했다. 어떤 배역이든 진정성 있는 인물로 완성하는 오정세는 톱스타의 허세와 그 뒤에 숨겨진 사랑 때문에 번민하는 호세의 순수함을 입체적으로 그려내 또 하나의 매력적인 인물을 탄생시켰다.  

오정세에게 ‘거미집’은 유독 더 특별한 작품으로 남았다. ‘꿈’이었던 송강호와의 연기 호흡은 물론, 영화적 낭만을 물씬 느끼게 한 현장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오정세는 ‘거미집’에 참여한 소감을 묻자 “꿈을 이뤘다”며 웃었다. 

오정세가 ‘거미집’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 바른손이앤에이
오정세가 ‘거미집’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 바른손이앤에이

-완성된 영화는 어땠나. 

“재밌었다. 배우를 보는 맛이 참 살아있는 영화다. 나 말고 다른 배우들.(웃음) 각자의 자리에서 잘 놀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신기했던 것은 보통 시사회 후 지인들에게 영화 어땠냐고 물어보면 ‘누가 좋았어, 어떤 배우가 좋더라’고 이야기를 해주고 그 배우가 보통 한 방향으로 향하는데 이번에는 다 달랐다. 표가 몰릴 법도 한데, 평균이 있을 법도 한데 평균이 없는 반응이라 신기했다. 나도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지운 감독에게 제안받고 어땠나. 호세의 어떤 면에 흥미를 느꼈나.  

“호세에 꽂히진 않았고 놀이터에 꽂힌 것 같다. 김지운 감독님과 송강호 선배, 그리고 나와 플레이할 멤버들. 그들과의 놀이터에 대한 끌어당김이 컸다. 그들과 같이 한 공간에서 놀고 싶다. 그들과 한 스크린에, 하나의 작업에 참여하고 싶다는 게 컸다.”

-바람둥이에다 톱스타 역할이었다. 어떻게 접근했나.  

“예전 분들(70년대 배우)의 모습을 많이 가져오진 않았다. 첫 스타트는 김열 감독이 걸작을 만들기 위해 가는 여정 속에서 여러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걸림돌이 되는데 그중 하나의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거였다. 어떤 걸림돌이 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설정만 보면 두 사람을 사랑하고 바람을 피우는 역할이기 때문에 비호감인데, 그로 인한 답답함, 불편함의 걸림돌이 이 작품에 맞나 고민도 했다. 그래서 너무 비호감으로 가는 것보다 지금의 호세처럼 저런 마음을 가졌지만 조금은 열린 마음으로 갈 수 있게 하는 톤이 이 영화와 결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또 끝에서 호세가 크지는 않더라도 아주 찰나의 뉘우침을 느끼는 모습을 표현하려고 했다.”

-송강호와의 작업은 어땠나.  

“배우를 꿈꿨을 때 로망이었던 두 분이 있다. 송강호 선배와 최민식 선배다. 최민식 선배는  팬클럽도 가입해서 팬들과 가졌던 자리에 참석하기도 했다. 구석에 앉아서 구경하다 오고 그랬던 기억이 있다. 송강호 선배와의 꿈은 이번에 이뤘다. 긴 여정이 있었던 것 같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오디션을 봤으나 떨어져서 못 만났고, ‘우아한 세계’ 단역으로 연기했지만 스크린에서는 편집돼서 만나지 못했다. ‘하울링’ 오디션도 떨어졌다. 그러다 ‘거미집’으로 기쁘게 만나게 됐다.

‘거미집’ 현장은 영화적 낭만이 있었다. 바쁘게 시간에 쫓기면서 찍는 느낌보다, 영화적 낭만이 있는. 김열 감독이 도망가는 신이 있는데 송강호 선배가 테이크마다 내 시선을 잡아준다고 전력질주를 해주더라. 큰 감정신이 아니기 때문에 시선만 해도 되거나 다른 스태프가 도와줘도 되는데 송강호 선배가 전력질주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울림이 있었다. 김지운 감독, ‘거장’이라고 하면 그려지는 게 있지만 그 안에 치열함, 고뇌 등이 있을 거잖나. 배우 송강호도 마찬가지다. 연기를 너무 잘하는 ‘대배우’이지만 그 안에서는 어려움이 있을 거다. 현장에서 ‘액션’하면 ‘짠’하고 나오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고민하고 찾아가려는 힘듦, 그 과정을 옆에서 보면서 큰 울림이 있었던 현장이었다.” 

‘거미집’에서 강호세를 연기한 오정세 스틸. / 바른손이앤에이
‘거미집’에서 강호세를 연기한 오정세 스틸. / 바른손이앤에이

-‘영화적 낭만’을 느꼈다고 했는데, 예를 든다면.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진짜 현장과 영화 속 현장, 두 개의 현장이라 그 기분이 더 증폭됐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또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로망, 김지운 감독 송강호 배우에 대한 향수 때문에 그런 걸 수도 있고. 나의 해석일 수 있지만 김지운 감독님이 스태프로 나오는 단역들 중에 저 친구가 너무 안 나왔네 하면 자리 배치를 다시 했다. 모두가 할 수 있게 신경 쓰는 느낌이 들었고 그런 모습에서 낭만을 느꼈다.” 

-끊임없이 연구하는 배우 중 하나다. 캐릭터를 만나고 구축하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나. 

“체계적으로 잡혔으면 좋겠는데 할 때마다 정답을 찾는 과정이 너무 다르고 힘들다. 어떤 캐릭터는 일찍 만나기도 하고 어떤 친구는 늦게 만나기도 하고 그렇다. 부족하니까 뭔가 하려고 하는 것 같다. 방법을 모르니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거다. 예전에는 단역 오디션에서 ‘쪽대본’을 받으면 누군가를 괴롭히는 양아치 정도의 설정만 아는 상태에서 이 인물에 대한 전사를 세웠다. 이 친구는 빨간색을 좋아하고 같은 질문 50가지를 스스로 던져서 그리기도 하고 답하기도 한다. 도움이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는 작업을 하는 거다. 그래도 성에 안 차면 그 영화 주인공의 고향을 찾아가 본 적도 있다. 정서적으로 도움이 될까 싶어서 여행 겸 간다. 무슨 도움이 되겠냐마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모르니까 생각난 걸 한 거다. 그렇게 계속 이런 저런 시도를 하며 매번 다른 방법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나아가는 배우 오정세. / 바른손이앤에이
끊임없이 연구하고 나아가는 배우 오정세. / 바른손이앤에이

-그런 노력이 결국 지금의 오정세를 만든 게 아닌가 싶다. 스스로가 생각하는 배우 오정세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웃음) ‘남자사용설명서’때부터 받는 질문이다. 원래 주인공이 아니고 다른 역할이었는데, 캐스팅이 안돼서 이원석 감독님이 ‘네가 주인공 할래?’해서 하게 된 거다. 당시 투자자, 영화사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오정세의 매력은 뭐냐’는 질문에 감독님이 대답을 못했다고 하더라. 하하. 그러면서 나한테 ‘너의 매력은 뭐야?’라고 하기에 나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때부터 계속 물음표로 남아있다. 끊임없이 받는 질문이기도 하고 명쾌하게 답하지 못하는 질문이기도 하다.(웃음) 다만 내가 가진 가장 큰 무기 중 하나는 긍정적인 사고다. 긍정적인 사고가 없었다면 버티지 못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초반에는 오디션에서 떨어지면 힘들고 ‘왜 안 될까’ 그랬는데, 어느 순간 마음가짐이 ‘나를 떨어뜨렸어? 오케이 난 괜찮아 너희 손해야’라는 마음이 생겼다. 물론 떨어질 만한 이유가 충분했지만 내 안에서는 그렇게 마음을 먹고 편해지는 시점이 왔다.” 

-배우 오정세의 욕망은 무엇인가. 

“작품도 사랑받고 배우로도 사랑받고 있기 때문에 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없다. 지금처럼만, 아니 조금 덜 사랑받더라도 나는 사실 충분하다. 역할이 작든 크든, 사랑을 더 받든 덜 받든 즐길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건강이 기본이 돼야 한다. 욕망이라는 표현에 맞는지 모르겠지만 건강이라는 키워드가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 (배우로서) 잘 즐기고 놀 자신이 있는데 그러기 위해 아프지 말자, 건강하자는 마음이 크다.”

-힘든 순간에도 즐길 수 있을 만큼 연기가 좋나. 

“나도 내가 연기를 왜 좋아하지? 생각해 봤다. 만약 허리가 아픈 친구를 마사지 해줬을 때 그 친구가 시원해하면 거기서 오는 성취감이 있잖나. 내가 팔이 아파도 신나서 해주잖나. 그런 결이 아닐까.(웃음) 누군가 나의 연기, 작품을 보고 기뻐하기도 하고 무언가를 가져가기도 하고 생각하기도 하는 것들을 보며 나도 신나하지 않나 싶다. 매번 교감할 순 없지만 누군가는 좋아해 주고 기뻐해 주는 것을 보면서 신나서 연기할 수 있는 것 같다.”

-대중에게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나. 

“하나의 대표작이 없는, 각자의 시선에서 여러 작품이 대표작이 되는 배우로 남고 싶다. 하나의 색깔로 규정돼 누군가에게 각인 되는 것은 싫다. 그 인물이 계속 없어졌으면 좋겠다. 내가 쌓아온 이미지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는 작품마다 새로운 인물, 신선한 공기로 다가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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