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우 대구은행장의 취임 첫해 경영 성적표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 대구은행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황병우 대구은행장의 취임 첫해 경영 성적표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실적 추이는 준수한 상황이나 내부통제 관리에 있어 허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감독원은 대구은행의 증권계좌 불법 개설 논란에 대한 검사 결과를 발표하고 관련 임직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예고했다.

◇ 고객 몰래 증권계좌 무더기 개설

황 행장은 올해 1월 대구은행장에 선임됐다. 1998년 대구은행에 입사한 그는 경영컨설팅센터장, 은행장 비서실장, DGB금융지주 전무를 거쳐 대구은행장에 올랐다.

그는 올 상반기까지 안정적인 경영 실적을 토대로 순탄한 행보를 보였지만, 불법 증권계좌 파문이라는 암초를 만나면서 곤혹스런 입장에 놓이게 됐다. 

금감원은 12일 대구은행 금융사고에 대한 검사 결과(잠정)를 발표했다. 금감원은 지난 8월 9일부터 9월 22일까지 대구은행 직원들의 증권계좌 불법 개설 의혹과 관련해 현장검사를 벌인 바 있다. 

검사 결과, 대구은행의 영업점 56곳의 직원 114명이 이번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2021년 8월 12일부터 올해 7월 31일까지 2년간 직원들은 예금계좌와 연계된 증권계좌를 개설하는 과정에서 고객 1,552명의 동의를 받지 않고 총 1,662건의 증권계좌를 부당 개설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직원들은 고객이 직접 전자 서명한 A증권사 증권계좌개설신청서를 최종 처리 전 출력해 사본을 만들고 B증권사의 계좌개설신청서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증권계좌를 부당 개설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이들은 출력본에 기재된 증권사 이름 또는 증권계좌 종류 등을 수정테이프로 수정해 다른 계좌 신청서로 재활용하는 수법을 썼다. 이 과정에서 출력본을 제대로 수정하지 않아 신청서 상의 증권사 이름, 증권계좌 종류, 계좌 명의인 정보가 실제 개설된 증권계좌 정보와 불일치하는 사례(669건)도 다수 발견됐다. 

금감원 측은 “직원들은 고객에게 출력본(사본) 활용을 설명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물적 증빙이 없었다”며 “또한 예금 연계 증권계좌 개설 서비스를 운영 중인 주요 시중은행에서는 이러한 방식의 증권계좌 추가 개설은 불가하다”고 꼬집었다. 

대구은행은 2021년 8월부터 은행 입출금통장과 연계해 다수 증권회사 계좌를 개설할 수 있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금감원 측은 이번 사고의 발생 원인을 놓고 우선 ‘과도한 실적 경쟁 유도’를 지목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대구은행은 2021년 8월 ‘증권계좌 다수 개설 서비스’를 시작한 후 증권계좌 개설 실적을 영업점 KPI(핵심성과지표) 및 개인 실적에 반영했다. 또한 지난해엔 영업점 KPI의 증권계좌 개설 만점 기준을 고객당 1계좌에서 2계좌로 강화하고 개인 실적에도 중복 반영했다. 

금감원은 이러한 실적 경쟁 독려가 증권계좌 부당 개설 유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금감원 측은 “부당 개설 계좌 1,662건중 90.5%는 KPI 변경 시점인 지난해 중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 실적 경쟁 유도·내부통제 미흡 드러나… 시중은행 전환 제동 걸리나 

현재 주요 시중은행도 예금 연계 다수 증권계좌 개설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대구은행과 달리, 증권계좌 개설 실적을 KPI에 반영하지 않거나 1계좌 또는 계열 증권회사의 계좌만 인정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감원은 내부통제 소홀도 금융사고 배경으로 지목했다. 금감원은 “증권계좌 개설 업무와 관련해 위법·부당 행위를 방지할 수 있는 업무절차, 전산통제, 사후점검 기준 등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구은행은 다수 증권계좌 개설 서비스를 신규로 시행하면서 관련 내규 등 별도 업무처리절차를 마련하지 않았다. 또한 고객이 전자서명한 서류를 전산오류 등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데도 출력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이를 타 증권사 계좌개설신청서로도 이용 가능하도록 운영했다. 

아울러 예금 연계 증권계좌 개설 서비스 시행 후 KPI 강화 등으로 부당 취급 가능성이 있음에도 이를 자점감사 기준 등에 반영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이후 실시된 영업점 및 본점 자점감사에서 다수 직원이 사본서류를 이용한 사실과 신청서상 흠결을 적발하지 못했다고 금감원은 지적했다.  

금감원은 이번 사고 및 관련 내부통제 소홀에 책임이 있는 임직원들에 대해 관련 법규에 따라 엄중히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금융실명법 위반 혐의가 있는데도 금감원에 이를 지체 없이 보고하지 않은데 대해서도 필요한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경고했다. 

대구은행의 불법계좌 파문은 시중은행 전환 추진 작업에 암초로 부상했다. / 대구은행
대구은행의 불법계좌 파문은 시중은행 전환 추진 작업에 암초로 부상했다. / 대구은행

대구은행은 지난 6월 30일 증권계좌 임의 개설 민원이 접수돼 7월 12일부터 전 영업점을 대상으로 자체 검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사고 내용 확인에 시간이 소요되면서 8월 9일 금감원 검사 착수 시점까지 해당 사안을 당국에 보고하지 않았다.  

내부통제 부실과 지연 보고 사실이 드러나면서 경영진의 책임론도 부상할 전망이다. 황병우 행장 역시 이번 사태의 후폭풍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파문은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추진 작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황 행장의 어깨를 무겁게 할 전망이다.  

대구은행은 연내 시중은행 전환을 목표로 내세우고 9월 시중은행 전환을 위한 인가를 신청할 예정이다.

그러나 직원들이 고객 몰래 증권계좌를 불법 개설한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인가 신청 시기를 미루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업계에선 이번 사태가 인가 심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1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이번 사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날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구은행에서 여러 가지 일탈이 발생하고 있다”며 불법 계좌 사건을 언급했다. 또한 과거 비자금 조성 혐의와 부정채용 사태 등을 언급하며 향후 시중은행 전환에 문제가 없는지를 김주현 금융위원장에게 물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시중은행 전환 신청을 하면 법에서 정해진 사업계획 타당성, 건전성, 대주주 적격성 등을 보게 돼 있다”며 “이번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심사 과정에서 이런 점을 고려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한편 대구은행은 시중은행 전환 인가에 필요한 최소자본금 요건(1,000억원)과 지배구조 요건(산업자본 보유 한도 4%·동일인 은행 보유 한도 10%) 등을 충족하고 있다. 다만 금융당국은 시중은행 전환 심사 과정에서 내부통제 및 고객보호 시스템 등도 중요 요소로 보고 있다. 특히 김 위원장이 내부통제 이슈를 심사 과정에서 고려하겠다고 밝힌 만큼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작업에 차질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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