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월은 나에게 나름 의미가 있는 달일세. 왜냐고? 내가 엄마 따라 긴 소풍 나왔던 달이거든. 벌써 6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 그래서 세는나이로는 올해가 칠순(七旬)이지. 예전에는 일흔 살까지 사는 사람들이 드물어 70세를 고희(古稀)라고도 했어. 하지만 기대수명이 여든 다섯 살에 가까운 우리 세대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죽은 말(死語)이지.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는 『논어』에서 유래한 종심(從心)이라는 말도 극우 정권을 떠받치고 있는 요즘 노인들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공자에게 지금 이 나라의 70세 노인을 종심이라고 불러도 되냐고 물으면 가짜뉴스라고 고발할 거여.

지난 며칠 69년의 삶을 뒤돌아보면서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네. 지난 10여 년 동안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나랑 함께했던 장자가 많은 도움을 주었지. 장자는 누구나 자연의 순리에 몸을 맡기고 살면 신나고, 활기차고, 풍성한 삶이 가능하다고 말하네. 우리가 갖고 있는 분별지와 고정관념, 헛된 자만심, 인간중심적 사고 등을 버리고 자연의 운행과 리듬에 몸을 맡기고 살라 하지. 그러면 우리 안에 있는 생명력이 활성화되어 모든 얽매임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삶을 향유할 수 있다는 거야.

『장자』「대종사(大宗師)」편에는 그런 양생에 성공한 사람들을 대종사, 즉 자연의 원리를 깨달은 스승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오늘은 5장에 나오는 자사(子祀)와 자여(子輿) 이야기만 하겠네. 자사가 몸이 꼽추처럼 변하는 중병에 걸린 ‘자여’ 문병을 갔네. 자여는 자기 몸을 흉물스럽게 만든 조물자(造物者)를 원망하기는커녕 참으로 위대한 존재라고 칭송하네.

“조물자(造物者)가 정말로 위대하다. 내 몸을 이토록 구부러지게 만들다니! 이토록 구부러져 등이 불끈 치솟아서 곱사가 되고, 오장은 위로 올라가고, 턱은 배꼽 아래로 감추어지고, 어깨는 머리보다 높고, 목덜미의 등골뼈는 하늘을 향해 있네.”(김정탁 역)

자신의 몸속에서 음양(陰陽)의 기(氣)가 뒤엉켜 대다수 사람들이 혐오하는 흉측한 모습이 되었는데도 자여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배포는 어디에서 나올까? 답은 현해(懸解)일세. 그게 뭔지 자여의 설명을 들어보게. “삶을 얻으면 우연히 그런 때를 만난 것이요, 삶을 잃으면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다. 그러니 삶을 얻을 땐 편히 머물고, 삶을 잃을 땐 자연의 질서를 따르면 마음에 슬픔과 즐거움이 끼어들지 못하네. 옛 사람은 이런 삶의 자세를 현해, 즉 하늘에서 거꾸로 매달린 상태에서 풀려나는 거라고 말하네.”자연의 순리를 받아들여 생에 대한 집착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면 누구나 절대적 자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거지. 고정관념이나 인위적인 삶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거야.

장자는 「양생주(養生主)」편에서도 현해를 말하네. 노담(노자)의 상가에 간 진실(秦失)이 세 번 곡만 하고 나오자, 노자의 제자가 얼굴을 찌푸리며 따지듯이 묻네. 우리 스승의 친구라면서 어떻게 그런 성의 없는 조문을 할 수 있어요? 그러자 진실은 노자가 지인(至人)인 줄 알았는데 상가 분위기를 보고 크게 실망했다고 대답하지. 늙은이들은 마치 자식을 잃은 것처럼 통곡하고, 젊은이들은 어머니를 여윈 것처럼 우는 모습이 노자의 가르침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야. 그러면서 이런 식의 문상은 “하늘을 속이고, 진실을 외면하고, 본분을 망각한 짓”이라면서 “자네들 스승은 와야 할 때 때맞추어 태어났고, 가야할 때 순리에 따라 간 거네. 와야 할 때를 편히 받아들이고, 가야할 순리에 편히 머물면 슬픔과 즐거움이 끼어들 수 없지. 옛 사람들은 이를 제지현해(帝之懸解)라고 말했네”라고 밝혔네.

앞에서 인용한 자여의 말과 비슷하지. 자연의 순리에 따라 왔다 가는 게 인생이니 누구의 죽음이든 너무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자사와 자여의 막역지우인 자래(自來)의 말대로 죽음을 “성연매(成然寐), 거연각(蘧然覺)”으로 생각하라는 거지. 자래의 마지막 이 여섯 글자 유언은 ‘죽는 듯 편히 잠들었다가 홀연히 새롭게 태어난다’는 뜻일세. 죽음이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이라는 거지. 생사존망지일체(生死存亡之一體), 즉 죽음과 삶(死生), 있음과 없음(存亡)이 한 몸이라는 걸 받아들이면 남은 노년이 신나고 풍성한 시간이 될 거라 믿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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