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식 감독이 영화 ‘뉴 노멀’로 돌아왔다. / 바이포엠스튜디오​
​정범식 감독이 영화 ‘뉴 노멀’로 돌아왔다. / 바이포엠스튜디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지난 8일 개봉한 영화 ‘뉴 노멀’은 공포가 일상이 돼버린 새로운 시대를 그린 스릴러다. 개봉 전부터 이미 18개국 이상의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 초청된 것은 물론, 전 세계 24개국 판매 및 해외 개봉을 확정하며 작품성과 재미를 인정받았다. 

메가폰은 ‘호러 마스터’ 정범식 감독이 잡았다. 정범식 감독은 아름답고 슬픈 호러로 꾸준히 회자되는 ‘기담’으로 데뷔, 제27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감독상, 제10회 디렉터스컷시상식 올해의 신인감독상, 제8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감독상까지 신인감독상 3관왕을 석권했다. 

이후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를 작업하며 ‘무서운 이야기 2’로 브뤼셀판타스틱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인 은까마귀상을 수상했고 ‘체험형 공포’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완성도와 대중성을 모두 잡은 영화 ‘곤지암’으로 한국 공포 영화 역대 흥행 2위를 기록, 큰 사랑을 받았다. 

신작 ‘뉴 노멀’로 돌아온 정범식 감독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 속 공포를 예측할 수 없는 전개와 특유의 위트, 능숙한 장르의 변주로 담아내 호평을 얻고 있다. 또 한 번 독창적인 세계를 완성했다는 평이다. 최지우‧이유미‧최민호‧표지훈‧하다인‧정동원 등 배우들의 신선한 조합도 호평 이유로 꼽힌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정범식 감독은 “서스펜스 조율이나 호러 연출은 고전에서 차용하되 이야기나 흐름은 젊은 세대가 반응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고 연출에 중점을 둔 부분을 밝혔다. 

일상 공포를 담아낸  ‘뉴 노멀’. / 바이포엠스튜디오​
일상 공포를 담아낸 ‘뉴 노멀’. / 바이포엠스튜디오​

-트렌디한 구성, 연출 방식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어떤 고민을 했나. 

“영화감독을 꿈꾸기 시작한 것은 극장에 다니면서부터다. 그때는 혼자 영화를 본다기보다 관객과 함께 본다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 있었다. 그런데 점점 개인화되고 TV나 기기들이 좋아지면서 영화를 보는 것에 대한 것이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좋든 싫든 변하고 있기 때문에 새롭게 영화를 보기 시작한 젊은 세대와 어떤 식으로, 어떤 영화로 만나야 할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이번 영화도 트렌드 자체를 다 읽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복잡하지 않고 무겁지 않아야한다는 이야기적인 원칙이 있었다. 서스펜스 조율이나 호러 연출은 옛날 고전에서 차용하고 활용하되, 이야기나 호흡은 젊은 세대들이 잘 반응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뉴스로 영화를 열고 ‘혼밥’하는 모습으로 영화를 닫았다. 연출자의 의도는 무엇이었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의 사건을 던져놓고 영화를 시작하고 싶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빠져나왔을 때 이거 진짠데? 무슨 차이가 있지? 하는 생각을 주고 싶었다. 서스펜스의 정의는 ‘죽음의 가능성이 가까이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길을 가는데 모르는 사람이 흉기를 휘두르고 백화점 안에서도 칼부림이 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전국 곳곳에 살해 예고글이 올라온다. 우리나라에 이런 죽음의 가능성이 예전에도 이렇게까지 있었나 싶다. 전쟁이 아닌 다음에야. 작가적 상상력으로는 세상 자체가 서스펜스로 가득 차있는 것 같았다.

영화에서 서스펜스를 다루고 있는데 마지막에 현실로 바뀌면서 뉴스를 들려주고 관객으로 하여금 뭐가 다르지라는 생각하게 하고 싶었다. 또 어떻게 하다 이렇게 됐지 시각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런 세상에 살고 있었고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것이 조금 더 건강한 진단이라고 생각한다. 또 장르적인 유희를 철저히 즐기고 나서 영화가 마무리 될 때 ‘혼밥’하는 일상이 나오는데, 쓸쓸한 자화상이 아닐까 생각했다. 고립과 건강하게 만나지는 관계가 아닌 것들로부터 파생되는 문제가 이런 끔찍한 사건들로까지 비화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각 인물마다 다른 에피소드를 담은 작품이었다. 구성은 인물이 아닌 시간으로 챕터를 나눴다. 이유가 있다면. 

“이야기를 만들 때 관객이 너무 많이 봐서 지겨워하는 게 뭘까 고민한다. ‘곤지암’은 사연을 넣지 말고 진짜 정면 승부를 하자고 생각했다. 공포적인 비주얼과 현실 사운드를 활용해서 하니, 영화음악으로 분위기를 잡지 말자 과감하게 배제했다. 영화적 조명이나 촬영이 아닌 정말 배우들이 100% 찍은 소스를 편집해서 날 것의 긴장감을 주고자 했다.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었다.

이번에는 등장인물이 외모나 옷차림, 들고 있는 소품이나 어떤 일에 종사하고 있는지 딱 그 정도 정보만 갖고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나리오에 가정환경이나 학력, 성장 배경이나 트라우마 등 그 어떤 것도 담지 않았다. 오로지 인물과 사건만 있었다. 나머지는 배우 각자 상상하면서 채워갔다. 6명이 연결돼 있지만 처음에는 배우들도 몰랐다. 배우는 오로지 감독과 일대일로만 소통했다. 연결은 감독인 내가 한 거다. 관객만 오로지 그 연결이 어떻게 돼 있는지 발견하게 되는 구성을 만든 거다. 우리가 살고 있는 ‘뉴 노멀’이 알게 모르게 연결돼 있다는 것을 관객이 깨닫길 바라면서 만들었다.”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고립’이었다. 각 인물의 관계에 서사를 부여하지 않은 이유일까. 

“누구와 누구를 맺어주고 어떤 관계를 설정한다면 현실 같지 않고 극화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련의 여러 끔찍한 사건들이 어떻게 보면 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건들이잖나. 영화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이 들면 안 될 것 같았다. 영화는 임팩트를 주기 위해 항상 무언가를 더 극적으로 만들잖나. 모든 영화가 극적인 것을 가공하고 있을 때 우리 영화 한 편 정도는 그렇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일상에서 마주칠 법한 인물을 따라가다 보면 어떤 사건에 마주하고 서스펜스를 느끼고 이들이 연결돼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영화 한 편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 그것이 기존에 있던 서스펜스 영화와 차별화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뉴 노멀’에서 호연을 펼친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최지우‧이유미‧표지훈‧정동원‧하다인‧최민호. / 바이포엠스튜디오​
‘뉴 노멀’에서 호연을 펼친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최지우‧이유미‧표지훈‧정동원‧하다인‧최민호. / 바이포엠스튜디오​

-캐스팅 조합도 신선했는데. 

“고민을 많이 했다. 워낙 연기를 잘하는 분들이 많지만 어떻게 하면 색다른 조합을 꾸릴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연기만 잘하는 배우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연기뿐 아니라 호감도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 조합을 꾸려야 신선한 것이냐에 대해서도 처음 연기하는 친구들을 해보자고 한 게 정동원과 표지훈, 하다인이다. 최지우는 누가 봐도 제일 안할 것 같은 배우를 생각하다가 ‘지우히메’가 떠올랐다. 관객이 놀랄 거라는 게 예상됐다. 예상하지 못한 캐스팅인데 그분의 이미지와 합쳐졌을 때 폭발력이 어마어마했다. 이런 저런 조합을 많이 생각했다. 구성이 새롭다, 영화가 새롭다는 칭찬도 감사하지만 배우들이 이전에 했던 연기와 다른 것을 보여줬다고 할 때 연출자로서 뿌듯함을 느낀다. 협업이 잘 됐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처음 하는 배우들에 대한 칭찬, 기존에 있던 이미지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뿌듯하고 흡족하다.” 

-음악 활용도 인상적이었다. 어떤 기준이 있었나.  

“남들이 많이 하는 것은 이미 하는 분들이 있으니까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남들이 어둡게 가면 밝게 가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금은 너무 많은 작품을 보다 보니 늘 그렇게 했던, 패턴화된, 매뉴얼대로 나오는 영화에 대해 조금 염증을 느끼는 것도 같아서 새로운 시각과 시도로 타계해나가자는 생각으로 영화를 찍는데 이번 영화도 역시 그런 방식을 택하고자 했다.”

-윤상 음악감독이 참여했다. 

“촬영에 들어가서까지 음악감독님을 구하지 못했다. 항상 내 영화의 음악은 내가 슈퍼바이징한다. 어떤 곡이 어떻게 배열되고 들어가는지 결정하면 3분의 2이상 해놓은 거라고 생각하는데 ‘뉴 노멀’은 그게 더 일인 거다. 이렇게 벌려놨는데 이걸 누가 음악으로 완성해줄 수 있을까 했다. 그러다 문득 윤상 선배가 생각났다. 힘들 때마다 윤상 선배의 ‘달리기’라는 곡을 듣는다. 하루에 열 몇 번 들은 적도 있다. 그 곡을 듣다가 윤상 선배가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까지는 (윤상이) 영화음악을 한 적이 없었다. 친분이 있던 윤종신 선배에게 연락처를 물어봐서 연락을 했고 ‘기담’을 좋게 봐주셨다면서 흔쾌히 승낙해줬다. (윤상이) 너무 고생했다. 내가 원하는 음악 스펙트럼이 너무 넓었는데 일일이 다 맞춰서 해줬다. 영화가 훨씬 더 고급스럽게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윤상 음악감독님 덕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범식 감독이 연출 철학을 밝혔다. / 바이포엠스튜디오​​
정범식 감독이 연출 철학을 밝혔다. / 바이포엠스튜디오​​

-공포, 스릴러라는 외피를 따르지만 블랙코미디 성격도 짙은 작품이었다. 

“연출할 때는 최대한 리얼한 소재를 가져오고 영화적으로 가공함에 있어 장르적인 유희를 마음껏 느낄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박찬욱 감독이 ‘가장 유머가 안 나올 것 같은 상황에서 사람을 웃게 하는 게 진정한 유머’라고 했는데, 나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이런 상황에서 웃을까 하는 순간 웃음을 터트리게 하고 싶었다. 어떤 관객은 왜 이걸 보면서 웃으라고 하는 거야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장르영화를 보는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나 시의성 짙은 사회파 영화가 아닌 장르영화인데 메시지도 담고 있는 거다. 서스펜스는 쫄깃하게 느끼면 되는 거고 블랙코미디는 웃으면서 즐기면 되는 거다.” 

-공포 장르만 하는 감독은 아니지만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감독이 이야기를 하는데 있어 이 장르가 주는 매력은 무엇인가. 

“이야기가 좋고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있으면 영화는 잘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그것만으로 성에 안 찬다. 디자인의 영역도 중요하다는 거다. 시각적, 사운드적 디자인과 그것이 허용되는 장르가 스릴러, 호러다. 시각적인 것과 청각적인 모든 것을 조율할 수 있는 지휘자처럼 통제하고 만들어내는 것이 내 입장에서는 영화를 만드는 재미이기 때문에 확실히 이쪽 장르로 들어와야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생긴다. 그래서 호러와 스릴러를 선호한다. 끔찍한 유혈을 즐기는 게 아니다. 서스펜스를 통해 관객을 당기고 밀고 하는 거다. 각본과 연기만 가는 것보다 시청각적인 설계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형식미를 추구하고 즐기는 감독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냥 느끼는 대로 즐겨줬으면 좋겠다. 외국에서 들은 칭찬 중에 시대적인 메시지와 전 세계 통용되는 메시지가 있음에도 장르적으로 다양한 색깔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는 평이 있다. 정확히 의도한 부분이다. 메시지만 있는 것도 아니고 장르만 있는 것도 아니다. 메시지는 느껴지면 느끼면 되는 것이고 장르적 유희를 즐겨주면 된다. 기존 영화와 차별화된 새로움이 있다, 장르적으로 즐길 거리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런 부분들이 관객을 극장으로 올 수 있게 하고 붐이 마련돼서 한국영화가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간다면 최고의 기쁨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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