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미정 기자  은행권이 ‘동네북’ 신세다. 대통령의 ‘종노릇’ 발언을 시작으로 금융당국, 정치권까지 나서 은행권을 대상으로 총공세에 나섰다. 고금리 환경 하에 막대한 이자 수익을 누리면서 민생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는 게 비판의 골자다. 이러한 비판론 아래 야당은 횡재세 도입으로 압박에 나섰고 금융당국은 대놓고 상생금융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금융당국 수장들은 이러한 압박전선에 선봉에 서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서민과 소상공인이 이자부담이 짓눌려 있는 가운데 은행권의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는 상황을 짚으면서 강도 높은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일엔 금융지주 회장단과 간담회를 갖고 “이자 부담 경감을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을 만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직접 압박했다. 

결국 은행권은 서둘러 상생금융안 마련에 나섰다. 은행권은 연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이자 부담을 경감할 수 있는 상생 방안을 마련해 발표키로 했다. 지난 2월에도 은행권은 대통령의 ‘돈 잔치’ 발언 이후 3년간 10조원을 공급하는 상생금융 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최근에 또 다시 당국이 ‘이자장사’ 문제를 거론하며 압박하자 은행권은 상생금융 시즌2 마련에 나선 것이다. 

은행권은 당국의 요구에 보조를 맞추면서도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들이 어려운 상황인 만큼 당국의 상생금융 요구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라면서도 씁쓸한 미소를 보였다. 그러면서 은행을 탐욕 집단으로 매도하는 듯 한 발언에 대해선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은행권이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금리 환경 수혜를 누려온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최근 2년간 크게 늘어난 은행권의 이자이익이 이를 반증한다. 다만 이 같은 금리 인상과 이자이익 증가가 은행의 탐욕으로만 발생했다고 보긴 어렵다. 대출금리는 통화긴축 기조에 아래 기준금리가 상승하면서 자연스럽게 상승세를 보여 왔다. 일각에선 준거금리에 더해 산정되는 가산금리를 통해 은행권이 과도한 이익을 챙기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비판한다. 

그러나 은행권은 이 같은 비판에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당국의 오락가락 금융정책에 가산금리 책정에도 애로사항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올해 은행권의 금리 산정에 사실상 적극적인 개입을 이어갔다. 이자장사로 은행권이 큰 수익을 거둔 점을 꼬집으며 대출금리 인하를 압박해왔다. 원가에 해당되는 준거 금리는 손댈 수 없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영업마진인 가산금리를 내리라는 압박이다. 이에 일부 은행들이 가산금리 조정하며 일부 대출상품의 금리를 인하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문제는 가계부채가 급증세를 보이면서 당국의 정책기조에 변화가 생겼다는 점이다.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지난해 4분기부터 주춤세를 보였다가 올해 2분기부터 증가세로 돌아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3분기말 가계신용 잔액(잠정)은 1,875조6,000억원을 기록,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이는 전분기 대비 14조3,000억원 증가한 것이다.

가계빚에 경고등이 켜지자 당국은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은행권의 대출 조이기를 압박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은행권은 지난달 가산금리를 높이고 신규 대출 공급을 조이는 방식으로 주택담보대출(주담대) 대출 문턱을 높였다. 

2분기 이후 가계빚이 급증한 데는 주담대 대출 급증의 영향이 컸다. 시장에선 올해 정부가 시행한 특례보금자리론,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부동산 시장 규제 완화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실패론이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이러한 책임론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모양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가계대출 증가세가 특례보금자리론과 50년 만기 주담대 등 규제 완화 영향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자 책임을 은행권에 넘기는 모습도 보였다. 그는 이날 정부가 주도한 50년 만기 대출과 시중은행 50년 만기 주담대와는 차이가 있다면서 은행권의 영업행태가 상식적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가계빚 급증 책임을 은행에게만 미루는 것도 상식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가계 부채는 오랫동안 누적돼온 문제이며, 최근 빚 급증 역시 원인이 복합적이다. 은행의 영업 행태에도 일부 문제가 있었을 수 있겠지만 정책을 이끄는 당국 역시 책임론을 피할 수 없다. 오락가락 금융정책에 대한 시장의 혼란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남탓 대신 근본적인 원인을 살피고 세심한 대책을 마련할 때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