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슈퍼컴퓨터, 자원·성능·에너지 효율 모두 세계 최상위권 달성
기업의 적극적 투자에 따른 성과… 디지털트윈·AI시대 활성화 기대

슈퍼컴퓨터 기술의 확보는 곧 국가 미래 과학력과 직결된다. 국내 과학·산업계 역시 슈퍼컴퓨터를 국방, 우주·항공, 의료, 에너지, 기상 예측 등 다양한 연구 분야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최근 한국 IT기업들의 적극적 투자로 국가 슈퍼컴퓨터 기술 경쟁력도 극대화되는 추세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슈퍼컴퓨터 기술의 확보는 곧 국가 미래 과학력과 직결된다. 국내 과학·산업계 역시 슈퍼컴퓨터를 국방, 우주·항공, 의료, 에너지, 기상 예측 등 다양한 연구 분야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최근 한국 IT기업들의 적극적 투자로 국가 슈퍼컴퓨터 기술 경쟁력도 극대화되는 추세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현대 첨단과학기술 발전은 대용량 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할 수 있는 ‘초고성능 컴퓨팅(HPC)’ 기술이라는 사상에 쌓인 누각 같은 것이다. 특히 여러 HPC모델 중, 연산 능력이 500위 안에 드는 ‘슈퍼컴퓨터’는 각종 산업·연구 분야에서 없어선 안 될 장비로 꼽힌다.

전문가들 역시 슈퍼컴퓨터 기술의 확보가 곧 국가 과학력과 직결된다는 공통된 의견을 내놓는다. 이는 단순 과학자들의 주장만이 아니다. 관련 산업 규모도 해마다 커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프레지던스 리서치’에 따르면 슈퍼컴퓨터 시장은 오는 2032년 248억7,000만달러(약 32조원) 규모에 달할 전망이다.

국내 과학·산업계 역시 슈퍼컴퓨터를 국방, 우주·항공, 의료, 에너지, 기상 예측 등 다양한 연구 분야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최근 한국 IT기업들의 적극적 투자로 국가 슈퍼컴퓨터 기술 경쟁력도 극대화되는 추세다.

◇ 성능·에너지 효율 모두 최상위권 달성한 韓 슈퍼컴퓨터 기술

국내 슈퍼컴퓨터 연구에 있어, 고무적인 소식이 최근 들렸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 따르면 지난 12일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 위치한 콜로라도 컨벤션센터는 ‘슈퍼컴퓨팅 컨퍼런스 2023’을 개최하고, 세계 슈퍼컴퓨터 순위인 ‘Top500’을 발표했다.

Top500은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 1초에 몇 번 연산하는지를 기준으로 세계 슈퍼컴퓨터 순위를 매기는 행사다. 이번 발표에 따르면 1위를 차지한 것은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ORNL, Oak Ridge National Laboratory)의 ‘프론티어(Frontier)’가 1위를 차지했다.

이번 발표가 의미 있는 것은 우리나라가 슈퍼컴퓨터 경쟁력에 있어 글로벌 최상위 국가 지휘를 갖게 됐다는 점이다. 한국은 국가별 보유 대수 순위에서 총 12대로 이탈리아와 함께 공동 7위를 기록했다. 슈퍼컴퓨터 성능 기준으로는 총합 151.3페타플롭스(PFlops)로 9위를 기록했다. 여기서 페타플롭스란 1초당 1,000조번 연산 가능함을 나타내는 단위다.

국내 슈퍼컴퓨터 중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한 것은 네이버의 ‘세종(Sejong)’이다. 사진은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세종'에 구축된 슈퍼컴퓨터 '세종'의 서버실 모습./ 네이버
국내 슈퍼컴퓨터 중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한 것은 네이버의 ‘세종(Sejong)’이다. 사진은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세종'에 구축된 슈퍼컴퓨터 '세종'의 서버실 모습./ 네이버

컴퓨터 개별 순위에 있어, 국내 슈퍼컴퓨터 중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한 것은 네이버의 ‘세종(Sejong)’이다. 최대 연산능력 33페타플롭스를 보유한 세종은 전체 순위 중 22위를 차지했다. 세종은 엔비디아의 GPU(그래픽 처리 장치)인 ‘A100 텐서 코어’ 2,240개로 만들어졌다.

2위는 삼성전자의 ‘SSC-21’이 차지했다. 25.2페타플롭스의 연산 능력을 보유한 SSC-21은 네이버 세종이 등장하기 전까지 국내 최대 슈퍼컴퓨터의 자리를 지켰다. 이 외에도 기상청의 ‘구루(GURU)’, SK텔레콤의 ‘타이탄(Titan)’, KISTI의 ‘누리온(Nurion)’ 등이 각각 47, 59위, 61위를 기록하며 세계 슈퍼컴퓨터 상위권을 차지했다.

연산능력뿐만 아니라 한국의 슈퍼컴퓨터는 ‘에너지 효율 부문’에서도 세계 최상위권을 차지했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슈퍼컴퓨터 ‘올라프’가 새롭게 등재된 동시에 ‘에너지 효율성 부문(Green500)’ 세계 10위를 달성한 것. IBS에 따르면 올라프는 2.03페타플롭스의 연산 능력과 45.12기가플롭스 당 1W의 전력 효율성을 기록했다. 

노도영 IBS 원장은 “Green500 순위 등재는 올라프의 높은 에너지 효율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성과로, 전기요금 급등으로 인한 슈퍼컴퓨터 운영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주목할 점은 한국 슈퍼컴퓨터 경쟁력 확대의 중심엔 국내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가 적극 이뤄졌다는 점이다. 실제로 네이버 세종과 삼성전자 SSC-21를 포함함, 12개 슈퍼컴퓨터 중 6개가 기업 투자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과거 정부 부처 및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슈퍼컴퓨터 기술 확보에 기업들이 적극 뛰어들기 시작했다는 방증이다.

이식 KISTI 국가슈퍼컴퓨팅본부 본부장도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한국의 슈퍼컴퓨터가 이번 슈퍼컴퓨팅 컨퍼런스 2023에서 Top500 및 Green500의 상위권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기업들의 적극적 투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위쪽부터)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 설치된 슈퍼컴퓨터 5호기‘누리온’와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슈퍼컴퓨터 '올라프'의 모습./ KISTI, IBS
(위쪽부터)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 설치된 슈퍼컴퓨터 5호기‘누리온’와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슈퍼컴퓨터 '올라프'의 모습./ KISTI, IBS

◇ 디지털 트윈·인공지능 필요성에 기업 투자↑

그렇다면 한국이 ‘슈퍼컴퓨터 강국’ 반열에 오른 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가상 시뮬레이션 기술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트윈’ 기술의 자유로운 구현 가능성을 꼽는다. 디지털 트윈이란 현실세계의 기계나 장비, 사물 등을 컴퓨터 속 가상세계에 구현하는 기술이다. 

일반적으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통신 등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거나, 의료 연구를 진행할 때는 실험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또한 실험 실패에 따른 위험도 매우 크다. 반면 디지털 트윈 공간에서 가상 실험을 진행하면 실패의 위험성이 크게 줄어들 뿐만 아니라 실험 비용 절감에도 효과적이다. 

이때 효과적인 디지털 트윈 기술 구현을 위해선 슈퍼컴퓨터가 필수적이다. 정밀한 가상 공간 구현을 위해선 막대한 데이터 처리 능력이 필요한데, 이 경우 슈퍼컴퓨터의 강력한 연산 능력이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글로벌 컴퓨터 제조사 ‘휴렛 팩커드 엔터프라이즈(Hewlett packard enterprise)’는 최근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교’와 함께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가상의 디지털 트윈 뇌 모델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식 본부장은 “실제 세계가 아닌 가상 세계에서 실험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많은 위험 문제가 해결되고, 실패에 대한 부담감도 적어질 수 있다”며 “과학적 연구라는 것은 많은 실패를 통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인데, 슈퍼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트윈은 과학자들에게 ‘마음대로 실패할 수 있는 자유’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슈퍼컴퓨터 기술력 확보의 중요성은 ‘인공지능(AI)’의 발전에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글로벌 AI기술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우수한 연산 능력을 가진 AI모델 개발이 필수다. 이때 AI에게 빠른 속도로 많은 데이터를 학습시키고, 구동할 수 있는 고성능 컴퓨팅 자원은 필수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세계를 뒤집은 AI챗봇 ‘챗GPT’의 전신인 초거대 AI모델 ‘GPT-4’의 경우, 2만5,000여개의 GPU 자원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테슬라의 AI기반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는 슈퍼컴퓨터 ‘도조(Dojo)’의 연산 능력을 빌려 매일 50만개의 이동 관련 영상 데이터를 학습한다.

이식 본부장은 “생성형 AI와 같은 고성능 AI모델을 학습 시키는데 어마어마한 컴퓨팅 자원이 필요하다”며 “이런 측면에서 슈퍼컴퓨터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졌고, 국내 기업들 역시 이 측면에서 투자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조악한 수준의 망원경과 현미경을 거쳐 매우 작은 바이러스나 몇십억광년 떨어진 은하까지 볼 수 있게 됐다”며 “이와 마찬가지로 슈퍼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가상 시뮬레이션과 AI라는 새로운 기술이 뒷받침된다면 우리는 과학 연구에 있어 훨씬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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