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3일의 휴가’(감독 육상효)로 관객 앞에 서는 김해숙. / 쇼박스
영화 ‘3일의 휴가’(감독 육상효)로 관객 앞에 서는 김해숙. / 쇼박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지금도 가짜로 하진 못해요. 가짜로 하면 꼭 NG가 나더라고요. 배우가 느끼는 것을 관객이 그대로 가져간다고 믿기 때문에 온전히 그 인물의 마음으로 들어가려고 해요.”

어느덧 연기 인생 50년을 바라보고 있는 배우 김해숙은 셀 수 없이 많은 작품과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고도 여전히 ‘진심’과 ‘최선’을 다해 스크린 속 그 인물로 살아내고 있었다. 영화 ‘3일의 휴가’(감독 육상효) 속 복자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코끝이 시큰해지는 이유가 아닐까. 

‘3일의 휴가’는 하늘에서 휴가 온 엄마 복자(김해숙 분)와 엄마의 레시피로 백반집을 운영하는 딸 진주(신민아 분)의 이야기를 담은 힐링 판타지다. 2019년 ‘나의 특별한 형제’로 따뜻한 연출력을 선보인 육상효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영화 ‘7번방의 선물’ 각색, ‘82년생 김지영’ 각본에 참여한 유영아 작가가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김해숙은 죽은 지 3년이 되던 어느 날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휴가를 받고 지상으로 내려온 엄마 복자를 연기했다. 수많은 작품에서 다양한 색깔의 모성을 그려온 그는 거칠지만 부드럽고 투박하지만 따뜻한, 평범해서 더 특별한 모성을 묵직하게 그려내 다시 한 번 관객의 마음을 흔든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김해숙은 작품을 택한 이유부터 딸 신민아와의 연기 호흡, 연기에 중점을 둔 부분 등 ‘3일의 휴가’와 함께 한 순간을 돌아봤다. 특히 ‘3일의 휴가’를 두고 “가장 의미 있는 작품”이라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김해숙이 작품을 택한 이유를 밝혔다. / 쇼박스
김해숙이 작품을 택한 이유를 밝혔다. / 쇼박스

-완성된 영화는 어떻게 봤나. 

“강기영이 엄청 울었다. 나도 터져서 엉엉 울었다. 영화가 참 묘한 게 각자 터지는 시점이 다르더라. 본인과 연결된 데 있어 추억처럼 오고 생각나고 그런 시점이 다 다르더라. 묘했다.”

-또 한 번 모성을 이야기하는 ‘3일의 휴가’를 택했다. 출연을 결정한 이유는. 

“내 나이에 할 수 있는 역할이 엄마였다. 정말 그 당시 운 좋게 기존 엄마의 틀에서 벗어난 캐릭터가 많았다. 나로서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를 하고 싶은데 선택의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엄마 역할을 연기하면서 세상에는 정말 많은 엄마가 있구나 깨달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이라면 될수록 많은 엄마들을 찾아서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상상할 수 없는 엄마들이 많았다. 소매치기 엄마도 있었고. 이들로 배우로서 나의 갈증, 목마름을 풀어도 되겠다고 싶었고 해소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3일의 휴가’는 정말 각별했다.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들 바쁘게 살잖나. 나조차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소중한 것을 잊고 사는 것 같다. 친구나 연인 사이에는 싸우거나 오해가 생기면 금방 풀 수 있는데 부모 자식 간에는 서로 각자 생각하는 것 같다. 또 이상하게 부모에게는 고마워, 사랑해 이런 말을 잘 못했다. 점점 메마르고 핵가족화되는 시대에 소중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법을 이 영화를 통해 알길 바랐다. 너무 늦어 후회하고 가슴 아파하지 말고 쉽게 전달할 수 있으면, 그래서 조금 더 따뜻해졌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영화를 통해 전해졌으면 했다. 또 요즘 가족이 같이 볼 수 없는 영화가 없잖나. 같이 부담 없이 보고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고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으로 작품을 택했는데 정말 잘한 것 같다.” 

-연기에 중점을 둔 부분은. 

“제목만 봐도 슬플 거라고 예감하잖나. 3일의 휴가를 받아서 하늘에서 내려온 엄마라는 설정 자체가 엄청 슬프잖나. 잘못하면 구태의연하다는 말이 나올 수 있으니 처음에는 어떻게 풀어야 할지 어려웠다. 작정하고 울리려고 하는 것 같을 것 같아서 연기톤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걱정되고 어려웠다. 부모 자식 간이라는 것은 굉장히 간단한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엄청난 이야기들이 있다. 그것을 차근차근 풀어나가다 보면 굉장히 괜찮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놓고 울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처음 복자가 내려왔을 때 진주가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보고 싶었는데 생각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있어서 아무리 영혼이지만 정말 화가 났을 것 같고 볼 때마다 속상할 것 같았다. 거기서부터 해답을 얻어서 연기를 시작했다. 또 가족들 간에도 너무 가깝다 보니 이야기를 못한 부분도 많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서 지나치는 경우가 많잖나. 그 당시 서운했던 것을 서로 풀지 않고 말을 하지 않으면 각자 상처를 갖고 있을 수 있다. 영화에서도 그런 부분이 있다.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에서는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3일의 휴가’에서 엄마 복자로 분한 김해숙. / 쇼박스
‘3일의 휴가’에서 엄마 복자로 분한 김해숙. / 쇼박스

-복자가 지나치게 희생적으로만 그려졌다는 반응도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해석하기 나름인 것 같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엄마가 있다. 직업도 다르고 사랑 방식도 다르다. 복자는 복자만의 인생이 있는 거다. 영화에서는 복자가 딸을 위해 희생한다고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부모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자식을 위해 희생한다. 물론 다르게 살아가겠지만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은 똑같은 것 같다. 자식을 위해 희생할 준비가 돼있을 거다. 어쩔 수 없는 진리인 것 같다.”

-실제 엄마이기도 하고 딸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기도 했을 것 같은데. 

“26세를 넘기면 시집 못간다고 빨리 결혼하라고 하던 시절이다. 24세 아무것도 모르고 결혼을 했고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낳았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아이를 낳아서 키운 거다. 그런데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아무것도 할 줄 몰랐는데 하고 있더라. 이런 게 모성이구나 싶었다. 나도 너무 신기했다. 나도 ‘워킹맘’이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나의 어머니한테 아이들을 맡기고 나가서 하고 싶은 일을 했다. 그때 어떤 엄마였냐고 한다면 참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으니까. 그런데 거꾸로 생각하면 또 내가 키운 것보다 나가서 알아서 본인이 했던 부분이 도움이 된 것도 같고 잘 커줘서 감사하고 그렇다. 큰 문제 없이 키웠지만 딸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항상 있다. 

영화를 찍으면서 제일 생각난 게 엄마다. 내 자식이 나한테 가장 소중한데 그 소중한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없지만 엄마한텐 맡길 수 있다. 그때는 그게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손녀인데 당연히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던 것 같다. 너무 철없었던 시절이다. 지금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우리 딸이 비슷한 행동을 하더라. 소름이 끼친다.(웃음) 우리 엄마가 저때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생각도 들었다. 영화를 보면서 모든 게 다 내 이야기 같았다.” 

-딸이 영화를 봤나. 어떤 이야기를 하던가. 

“원래 내 영화를 잘 안본다. 본인이 바쁘기도 하고. 이번에는 봐줬으면 했는데 다행히 왔더라. 보고 엄청 울었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진주가 나더구만?’ 하더라.(웃음) 영화를 보면 모든 자식들이 그럴 거다. 스토리 안에 자신의 모습이 다 들어가 있을 거다. 그래서 많이 공감하고 마음이 아플 거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진심을 다하는 연기로 마음을 두드리는 김해숙. / 쇼박스
언제나 진심을 다하는 연기로 마음을 두드리는 김해숙. / 쇼박스

-복자가 영혼이라 진주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설정이었는데 연기하는 것은 어땠나. 새로운 경험이었겠다. 

“특별한 장치가 없어서 오히려 담백했던 것 같다. 혼자 그렇게 연기하는 것은 처음이다. 각자 따로 연기하는데 너무 웃긴 거다. 답답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상대 배우의) 코밑까지 가게 되고 귀에다가 소리도 지르게 되고 하더라. 색다른 경험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천상세계는 어떨까. ‘사랑의 영혼’처럼 내 옆에서 누군가 있는데 모르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보게 되더라.”

-신민아와의 호흡은 어땠나.  

“정말 좋았다. 민아와 비슷한 것도 많고 생각도 비슷하다. 두 달을 같이 있으면서 대화도 많이 하고 호흡을 맞췄는데 서로 가까워지고 속을 다 터놓는 사이가 됐다. 가장 중요한 마지막 장면을 위해 감정을 참 많이 아껴뒀는데 그 장면을 찍으면서 민아도 나도 눈물이 나와서 참는 게 힘들었다. 감정을 교류하는데 우리가 정말 많이 가까워졌구나 싶더라. ‘찐’엄마의 눈빛이 나오더라. 정말 호흡이 좋구나 느꼈다.”

-별다른 것을 하지 않아도 배우의 얼굴만으로도 가슴을 건드리는 힘이 있다. 비결이 있을까.

“좋게 봐줘서 고맙다. 비결은 없다.(웃음) 다만 눈물을 흘려야 하는 신이 있으면 지금도 가짜로 하지 못한다. 가짜로 하면 꼭 NG가 난다. 그래서 감정신이 있을 때 누가 와서 건드리는 것도 싫어한다. 관객이나 시청자가 배우의 느낌, 마음을 그대로 가져간다고 믿기 때문에 감정신을 할 때 완전히 초집중을 하는 편이다. 항상 그 사람의 마음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 그래서 그게 보는 분들에게 전달이 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어느덧 연기 인생 50년을 바라보고 있다. 지치지 않는 이유, 원동력은 무엇인가. 

“내가 좋아하더라. 이 일을. 어릴 때 피아노를 쳐서 피아노를 쳐볼까 했는데 싫더라. 하고 싶은 게 뭘까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지 생각해 봤는데 맛있는 거 먹을 때와 어떤 작품이 들어와서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고 현장에서 일할 때더라. 그때가 제일 행복한 것 같더라. 그 마음이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열정이 아직 내 마음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밖에 없다. 담백하게 관객들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사연 하나하나 자연스럽게 동화될 수 있는 영화가 되길 바랐다. 뻔하지 않은 영화다. 내년이 벌써 50주년인데 49번째 되는 해에 이렇게 좋은 작품을 만난 게 행복이 아닌가 싶다. ‘3일의 휴가’는 보람을 느끼는 작품이고 의미 있는 작품이다. 관객들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고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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