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필로스 수원 고색산업단지 공장 방문기
알칼라인·PEM 기반 수전해장치 생산 및 연구진행
정부 정책에 공장 구축부터 난항… “수소 업계 지원 절실”

기후위기, 환경오염 등의 문제로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수전해 기반 그린 수소 산업도 급성장하는 추세다. 사진은 지난 9월 문을 연 수소전문기업 '지필로스'의 수소용품 생산공장 내부 모습./ 박설민 기자
기후위기, 환경오염 등의 문제로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수전해 기반 그린 수소 산업도 급성장하는 추세다. 사진은 지난 9월 문을 연 수소전문기업 '지필로스'의 수소용품 생산공장 내부 모습./ 박설민 기자

시사위크|수원=박설민 기자  인류의 발전은 언제나 ‘에너지’와 함께 했다. 142만년 전 불의 시대를 지나 화석연료, 원자력 발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에너지원은 인류 문명이라는 금자탑의 벽돌이 돼 왔다. 그러나 기후 위기, 폐기물 문제 등 수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에 최근 주목받는 해결책 중 하나가 바로 ‘수전해 기술’이다.

물을 전기분해해 무공해 ‘그린 수소’를 생산하는 수전해 기술은 핵융합 발전과 함께 궁극의 친환경 에너지기술로 꼽힌다. 때문에 관련 산업 규모도 해마다 성장하는 추세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베리파이드마켓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그린 수소 산업 규모는 오는 2030년 84억1,200만달러(약 11조954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국내 역시 수전해 기술 개발에 진출하는 에너지 기업들이 다수 포진돼 있다. 그중 수전해 기술 분야 선도 기업으로 꼽히는 곳은 수소생산기술 전문기업 ‘지필로스’다. 특히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원과 연계한 ‘P2G시스템’ 개발의 선구자다. 이에 <시사위크>에서는 지필로스가 이번에 수원에 새롭게 문을 연 수전해용품 제조공장을 방문, 기술 개발 및 사업 현황을 살펴봤다.

10kW급 수전해 모듈러의 생산 및 성능 검사가 진행되는 시험장의 모습./ 박설민 기자
10kW급 수전해 모듈러의 생산 및 성능 검사가 진행되는 시험장의 모습./ 박설민 기자

◇ 한국 그린 수소 산업의 퍼즐이 맞춰지는 ‘수원 고색산업단지’

12일 오후 4시, 수원 고색산업단지의 한 공장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매캐하고 건조한 새 건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곳은 지필로스의 수전해 수소용품 제조 공장. 최근 그린수소생산시스템의 핵심 기술인 수전해 생산을 위해 사업개시 신고를 마치고 막 문을 연 상태였다. 때문에 공장 내부는 아직 정리 중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헬멧, 안전벨트 등 근무자 안전 설비 등은 미리 구비된 상태였다.

공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곳은 ‘성능 시험장’. 지필로스 연구진들은 컴퓨터 모니터 2대에 띄워진 화면을 빨려 들어갈 것처럼 쳐다보고 있었다. 이는 수전해장치의 전력 효율 및 생산량 등을 체크하는 과정이다.

이날 성능 테스트는 ‘100kW급 고분자전해질(PEM) 모듈타입 수전해시스템’ 제품에 관한 것이었다. PEM 수전해시스템은 고분자 전해질막을 사용한 수전해 방식이다. 백금 촉매와 양이온교환막을 사용해 높은 전류밀도의 운전이 가능하고 에너지 효율도 높아 장치의 소형화에 특화돼 있다.

건너편에선 지필로스의 핵심 제품인 ‘판넬형 ‘100kW급 알칼라인 수전해시스템’도 성능 시험을 위해 놓여 있었다. 은색 전자레인지처럼 보이는 10kW급 수전해 모듈러가 커다란 강철 사물함에 들어서 있었다. 이 장치는 하루 43㎏의 수소 생산이 가능한데 이는 일반 가정 및 소형 빌딩의 하루 전력 생산이 가능한 양이다. 수소차는 8.5대를 가득 충전할 수 있다.

‘판넬형 ‘100kW급 알칼라인 수전해시스템’. 이 장치는 하루 43㎏의 수소 생산이 가능한데 이는 일반 가정 및 소형 빌딩의 하루 전력 생산이 가능한 양이다. 수소차는 8.5대를 가득 충전할 수 있다./ 박설민 기자
‘판넬형 ‘100kW급 알칼라인 수전해시스템’. 이 장치는 하루 43㎏의 수소 생산이 가능한데 이는 일반 가정 및 소형 빌딩의 하루 전력 생산이 가능한 양이다. 수소차는 8.5대를 가득 충전할 수 있다./ 박설민 기자

지필로스는 이 수원 공장에서 알칼라인 100kW∼1MW급, PEM 100kW급의 모듈타입 수전해시스템을 자체적으로 연구·생산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내년부터는 15메가 규모로 수전해시스템 장치도 생산한다는 목표다. 실제로 지난 9월 1MW급 컨테이너 수전해장치를 선보이며 대형 수전해시스템 생산 능력을 증명한 바 있다. 모듈 100개가 탑재된 이 수전해장치는 하루 85대의 차량 충전이 가능한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엄규문 지필로스 경영지원팀 상무는 “지필로스는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P2G통합시스템의 설계와 시공, 운영솔루션(PMS) 그리고 에너지버퍼장치와 전력공급시스템 등의 기술을 가졌지만 막상 청정수소 생산의 핵심 기술인 수전해 제조 기술력을 미처 확보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회사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2년간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올해 9월 수전해시스템(ALK Linked 100kW∼1MW, PEM 100kW)을 자체 기술력으로 개발에 성공했다”며 “이 기술을 원동력으로 대규모 수전해장치 생산이 가능한 공장을 수원 고색산업단지에서 문 열게 됐다”고 말했다.

지필로스는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수소 산업 시장으로의 진출도 목표로 삼고 있다. 현재 사내에서 중점 추진 중인 진출 국가는 ‘호주’다. 호주는 전 세계 수소 수출 1위인 ‘수소 강국’으로 재생에너지원을 기반으로 한 청정 그린 수소 생산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연간 약 13억달러(약 1조7,160억원)의 예산을 관련 사업에 투입 중이다.

김두화 지필로스 제조사업본부 상무는 “풍부한 재생에너지원을 가진 호주는 지필로스가 개발한 P2G시스템 기반 수전해기술을 수출하기 가장 최적화된 국가”라며 “이번에 문을 연 수원 공장에서 대규모 수전해장치 생산이 가능해진다면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출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약 100대의 수전해 모듈러가 설치된 1MW급 컨테이너 수전해장치의 내부 모습./ 박설민 기자
약 100대의 수전해 모듈러가 설치된 1MW급 컨테이너 수전해장치의 내부 모습./ 박설민 기자

◇ “수소는 첨단 산업 아냐”… 우여곡절 거친 공장 구축

수전해 용품 제조공장 구축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번 수원 고색산업단지 공장은 당초 예정된 공장 부지는 아니다. 지난해 8월 지필로스는 용인사옥 제2공장을 증축하면서 본격적인 수소용품 제조 생산설비를 구축하고자 했다. 하지만 커다란 장애물이 하나 등장했다. 수소용품 제조사업이 ‘첨단업종’에 포함돼 있지 않은 것이었다.

산업통상자원부령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르면 첨단업종은 기술의 혁신 속도가 빠르고 기술 집약도가 매우 높은 업종이다. 지필로스가 당초 공장을 짓고자 했던 용인시 언남동은 ‘자연녹지’ 지역으로 첨단업종만이 사업이 가능했다. 때문에 지필로스는 당시 약 50억원을 투입해 구매한 공장부지 사용이 불가능했다.

아쉬운 점은 점은 지난 2009년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기술분류체계 모음’ 자료에는 수소생산 이용기술이 코드 ‘050215’로, ‘미래유망 신기술(6T)’로 분류됐다는 점이다. 6T는 ‘오늘날 인류의 미래를 주도할 첨단산업기술’이다. △IT (정보기술) △BT (생명공학기술) △NT (나노기술) △ST (우주항공기술) △ET (환경,에너지기술) △CT (문화기술)이 포함된다. 즉, 당시 정부 기준으로 보면 그린 수소 생산기술 역시 첨단 업종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셈이다.

엄규문 상무는 “산업부에 여러 차례 건의도 해 봤지만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며 “수소 발생장치인 수전해시스템 제조사업이 가능한 곳을 물색한 결과, 수원 고색동 산업업단지을 임대해 제조공장을 구축했고 최근 KGS의 완성검사을 받고 사업개시 신고까지 마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당장은 수원산업단지을 임대해 생산시설을 구축했지만 수십 메가 규모의 수전해시스템을 생산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설”이라며 “약 50억원이 투입된 제2공장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산업부에서 첨단업종을 개편해 수소용품 제조사업이 포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당사와 같은 중소 수소전문기업이 수소경제 활성화 기반 시설 조성을 통해 수소 선도기업으로 성장하는데 커다른 추진력이 될 것”이라며 “내년 산업부 첨단업종 개편에 희망을 걸고 있고 한편으론 지자체의 수소경제 정책과 맞물려 또 다른 부지를 물색해 수소사업을 확장하는 것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10kW급 수전해 모듈러의 생산 및 성능 검사를 진행하는 지필로스 연구원의 모습./ 박설민 기자
10kW급 수전해 모듈러의 생산 및 성능 검사를 진행하는 지필로스 연구원의 모습./ 박설민 기자

◇ “수소 산업 글로벌 경쟁력 높이려면 정부 지원 절실”

높은 수전해 기반 그린 수소의 생산 단가 때문에 시장 활성화 속도가 느린 것도 극복해야 할 문제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 따르면 그린 수소의 단가는 1kg 당 약 1만원. 석탄이나 가스를 개질해 생산하는 ‘그레이 수소’가 1kg 당 2,000원의 비용밖에 들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5배 이상 비싼 셈이다. ‘그린피스’를 포함한 글로벌 환경단체 전문가들은 수소가 친환경 에너지원이 되기 위해선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그레이 수소 대신 그린 수소가 활성화돼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그린 수소 및 수전해 산업 활성화를 위해선 어느 때보다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입장이다. 그러나 2021년 이후 해마다 청정 수소 생산기지 구축예산은 축소하는 실정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올해 발표한 ‘2023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종합’ 자료에 따르면 수소생산기지 구축 사업 예산은 2021년 666억원에서 2023년 88억원까지 떨어졌다. 2년 만에 무려 657%가 줄어든 셈이다.

수소 산업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심각한 수준이다. 2050년까지 에너지 비중의 23%를 그린 수소로 달성할 계획인 유럽(EU)은 수전해 설비 용량을 6GW, 2030년에는 80GW까지 확충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재생에너지 및 그린 수소 제조 설비에 최대 3,400억유로(483조8,506억원)을 지원할 방침이다.

박가우 지필로스 대표는 “지필로스를 설립할 때 화석 연료로 얻은 과학기술로 이제 지구와 인류 문명을 영속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며 “그 해답은 재생에너지 기반 수전해 기술에 있다고 생각하며 이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정부 지원이 어느때보다 절실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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