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새로운 인력 충원과 연구 사업은 연구기관에게 가장 큰 과제죠. 근데 예산 때문에 신입직원을 뽑을 수도, 새로운 과제를 진행하기도 어려워지고 있어요.”

얼마 전 국가연구기관 관계자들과 가진 송년회 자리였다. 한 정부출연 연구기관에서 근무하는 A연구원은 붉게 상기된 얼굴로 기자에게 말했다. 정부가 내년도 국가 과학계 예산 삭감 정책을 발표한 이후 국가연구기관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A연구원은 말처럼 내년도 과학계에 대한 정부 지원은 크게 줄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10월 발표한 ‘2024년도 예산안 총괄 분석’ 자료에 따르면 국가과학기술연구회와 연구회 산하 25개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2024년도 예산안은 2조1,445억2,300만원. 전년 대비 2,237억4,800만원(9.4%↓) 줄었다.

가장 큰 규모로 예산이 줄어든 곳은 ‘에너지’ 관련 분야였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기연)이었다. 에기연의 내년도 예산은 전년 대비 18.7% 줄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지질연)도 전년 대비 16.9% 감소했다. 국가 원자력 에너지 및 핵융합 산업의 중심축인 한국원자력연구원(원자력연)과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핵융합연)도 각각 10.2%, 14.9% 예산이 줄었다.

윤석열 정부가 강조했던 ‘4차 산업’과 ‘우주항공’ 분야 출연연도 예산 칼질을 피하지 못했다.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연구를 이끄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전년 대비 16.7% 예산이 줄었다. 누리호 발사에 성공하며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축하말까지 전했던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도 6.5% 줄었다.

더 큰 문제는 이 예산안이 각 기관의 인건비와 경상경비, 시설비, 주요 사업비(연구비)를 모두 포함한 금액이라는 점이다. 인건비, 시설비, 경상경비 등을 전부 제외하면 2024년 편성된 순수 연구 예산은 8,858억8,300만원. 전년 대비 무려 25.2%나 줄어들었다. 줄어든 금액은 2,988억8,800만원이다.

결국 줄어든 연구 예산은 과학자들의 연구에 크나큰 장애물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기초과학’이다. 흔히 ‘돈’이 안 되는 연구 분야가 홀대 받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기후변화, 자원 발굴, 의학 연구의 성지인 ‘극지’ 연구 예산은 대폭 줄었다. 경쟁 부족 및 성과 미흡이 이유였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공개한 ‘극지 연구 중기재정 계획 및 2024년도 예산안’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극지 연구·개발(R&D) 예산은 전년 대비 67% 줄어든 1,058억원으로 책정됐다. ‘극지 유전자 R&D 사업’은 단독 입찰 사업이라는 이유로 92.9% 예산이 삭감됐다.

출연연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내년도 추진 예정이었던 연구사업 중 하나가 예산이 90% 이상 삭감돼 사실상 포기하게 됐다”며 “진행한 연구가 정부 기준에서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원이 줄어드는 것을 보면 과학자라는 직업에 대한 회의감마저 든다”고 토로했다.

“4차 산업혁명시대, 디지털 심화 시대엔 과학기술 수준이 곧 그 나라의 수준이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 또한 첨단과학기술력 확보에 달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2023년 과학기술인·정보방송통신인 신년인사회’에서 ‘과학강국’으로의 도약을 강조했다. 그 핵심은 결국 뛰어난 인재들이 얼마나 우수한 성과를 낼 수 있느냐에 달렸다.

그러나 자신의 연구에 몰두하는 과학자들을 카르텔로, 수익이 적은 연구 분야는 홀대하는 정부의 정책을 보면 과연 인재들이 힘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우리가 과학자에게 받아야 할 것은 연구가 얼마나 돈이 되는가가 적힌 영수증이 아닌, ‘과학적 가치’가 담긴 연구 논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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