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구로병원 부검실 4구 안치… 보관 어려워 ‘화장’ 가능성도
전문기관 선정 안 돼 정부 지원도 난항… “박물관 등 보관이 희망”

지난 2010년 오산시 가장2 산업단지 조성부지에서 임진왜란 이전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 미라를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연구진들의 모습. 사진 맨 앞 좌측은 국내 미라 연구 최고 권위자인 김한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 김한겸 고려대 명예교수
지난 2010년 오산시 가장2 산업단지 조성부지에서 임진왜란 이전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 미라를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연구진들의 모습. 사진 맨 앞 좌측은 국내 미라 연구 최고 권위자인 김한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 김한겸 고려대 명예교수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미라’는 오래 전 죽은 사람이나 동물의 시신이 현재까지 썩지 않은 채 보존된 상태를 말한다. 고대인의 생활 습관, 영양 상태, 문화, 질병 등 다양한 역사적 사실을 연구할 수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큰 연구 자산이다. 특히 보존 상태가 좋은 미라일수록 그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미라가 병원 부검실에서 관리자 없이 2년 넘게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 역사 연구의 귀중한 자산인 미라 관리에 대한 문화재청 등 정부의 관리·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병원 부검실에 맡겨진 미라 4구, 연구자 퇴임 후 관리자 없어

27일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4구의 조선시대 미라를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관 중인 미라는 경기도 오산에서 발견된 ‘유인구성이씨지구(儒人駒城李氏之柩)’와 ‘의인여흥이씨지구(宜人驪興李氏之柩)’, 학봉장군의 부인 및 3대 후손의 부인 미라 등 총 4구다.

지금까지 이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관리하던 연구자는 김한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였다. 김한겸 교수는 한국 미라 연구의 최고 권위자다. 지난 2002년 발굴된 파평 윤씨 모자(母子)미라 연구를 비롯해 한국에서 발견된 대부분의 미라 연구는 김한겸 교수가 도맡아 진행했다. 때문에 그가 속해 있는 고려대 구로병원에서는 연구 목적으로 미라를 보관해왔다.

그런데 지금까지 20년간 미라를 관리해왔던 김한겸 교수가 이제 연구 선상에선 은퇴했다. 때문에 지난 2021년 3월 김한겸 교수가 정년퇴임한 이후, 미라들을 돌볼 연구자는 고려대 구로병원 내엔 없는 실정이다. 즉, 2021년부터 현재까지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미라는 관리자 없이 병원 내 부검실에 안치돼 있었던 것이다.

고려대 구로병원 관계자 역시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병원에서 미라를 보관하고는 있으나 사실 현재로써는 딱히 관리·연구를 담당하는 부서가 없는 상황”이라며 “김한겸 교수님께서 계셨을 때는 그나마 어떻게 관리가 됐지만 교수팀 퇴임 이후 누가 어떻게 보관해야 한다는 것이 결정되진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문제는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보관이 어려워질 경우 ‘화장터’로 가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라의 경우 보통 오래된 ‘무연고 시신’으로 분류돼서다. 이 때문에 국내서 발견된 대부분의 미라는 1차 연구가 종료되면 옷가지, 유물 등을 제외하곤 화장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문화재청에 따르면 1998년부터 2017년까지 발견된 59구의 미라 가운데 24구가 화장·매장돼 사라졌다.

김한겸 교수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고려대 구로병원 입장에선 미라 연구자가 없을 경우 여건상 문제로 더 이상 보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 때문에 500년 한국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미라는 결국 화장터로 가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기자가 확인한 결과, 고려대 구로병원 측은 아직 화장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고려대 구로병원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내부적으로는 병원 내 부검실에서 보관 중인 미라에 대해선 아직 화장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지난 2010년 오산시 가장2 산업단지 조성부지에서 미라를 발굴하고 있는 연구자들의 모습./ 
지난 2010년 오산시 가장2 산업단지 조성부지에서 미라를 발굴하고 있는 연구자들의 모습./ 김한겸 고려대 명예교수

◇ “연구자도 없고 보관도 어렵고”… 부담 커지는 병원

다만 병원 측 입장에서 보면 미라 보관에 대한 부담은 매우 크다. 실제로 장례업체에 문의한 결과, 시신을 안치하는 영안실이나 부검실의 경우 하루 보관비용은 약 10만원이다. 현재 고려대 구로병원에 안치된 미라가 4구임을 감안하면 하루 평균 40만원의 보관비용이 들 것으로 추정된다. 뿐만 아니라 병원은 박물관처럼 전문적으로 미라를 보관하는 곳이 아니다보니 관리에도 한계가 뚜렷하다. 특히 한국 미라의 경우 이집트 미라와 달리 수분기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즉, 인체 조직이 마르지 않아 의학적 연구에 훨씬 더 유리하다. 하지만 2000년대 발굴 이후 20년 가까이 병원 부검실에 안치되면서 현재는 바싹 마른 미라가 되고 말았다.

미라의 법적 지위가 ‘무연고 시신’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은 것도 문제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조항에 따르면 시신을 보관하는 영안실은 위생관리 기준 및 시설, 설비, 안전기준 마련이 필요하다. 즉, 일반 병원 부검실의 경우 위생이나 시설에는 문제가 없으나 법률상으론 장기간 시신 안치 시설엔 속하진 않는다.

안성길 법무법인 원 변호사는 <시사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부검실은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며 “부검실에 무연고 시신을 보관하는 경우 세부적인 기준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문제점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려대 구로병원 관계자 역시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사실 병원이라는 곳은 환자를 치료하는 기관인 만큼 미라에 신경 쓸 여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당시 김한겸 교수님께서 연구하실 때는 저희가 가지고 있어도 그나마 어떻게 관리를 할 수 있었지만 퇴임하시고 나선 연구를 이어받을 사람이 없는 실정”이라며 “병원에서도 이를 관리해야하는 의무가 있는 게 또 아니다 보니 특정 부서에서 미라를 담당·관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4월 문화재청이 발표한 중요출토자료 전문기관 선정 결과. 500년 역사를 담은 조선시대 미라 4구가 보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려대학교 구로 병원은 전문 연구기관 선정에서 제외됐다./ 자료=문화재청, 그래픽=이주희 그래픽 디자이너
올해 4월 문화재청이 발표한 중요출토자료 전문기관 선정 결과. 500년 역사를 담은 조선시대 미라 4구가 보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려대학교 구로 병원은 전문 연구기관 선정에서 제외됐다./ 자료=문화재청, 그래픽=이주희 그래픽 디자이너

◇ 전문기관 선정 안 돼 정부 지원도 난항… 박물관 보관이 ‘희망’

병원의 부담을 줄이고 소중한 문화유산인 미라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정부의 지원이다. 이를 위해 올해 2월부터 3월 21일까지 문화재청에서는 인골·미라 등 중요출토자료의 연구·보관사업 전문기관을 공모했다. 발굴조사 과정에서 출토되는 인골·미라 등 중요출토자료의 체계적 조사·연구를 지원하기 위함이다. 

안타깝게도 고려대 구로병원의 경우 해당 지원을 받긴 어려운 실정이다. 문화재청이 지난 4월7일 발표한 ‘중요출토자료 전문기관 선정 결과 공고’에 따르면 국립문화재연구원 등 7개 기관과 민간 기관 8곳이 전문기관으로 선정됐다. 이 가운데 가톨릭대학교, 세종대학교 등 6곳의 대학교가 선정됐지만 고려대 구로병원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문화재청 발굴제도과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문화재청에서는 한국문화유산협회 위탁 사업을 통해 가톨릭대학교 등을 연구전문기관을 올해 초 지정했다”며 “하지만 고려대 구로병원은 여기에 속하지 않은 만큼 현재 문화재청에서 직접 지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고려대 구로병원의 미라 4구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은 박물관 측에 맡기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 역시 박물관 측의 비용 부담 및 시설 확보 문제로 당장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 국내 최고(最古) 미라인 ‘학봉장군’의 미라를 보관하고 있는 한국자연사박물관 측은 가능하다면 안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국자연사박물관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미라를 안치하기 위해선 온·습도 조절 등 실내 환경 시설이 매우 잘 돼 있어야할 뿐만 아니라 2년에 한번 보존 처리도 필요하다”며 “하지만 인류학 연구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유산인 미라를 연구·관리·보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자연사박물관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없는 상황에서 이 역할을 해야한다는 사명이 있다”며 “박물관에서 미라를 받지 않으면 그냥 사장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그런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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