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얼마 전 고향에 갔다가 소싯적 뛰놀던 영산강 제방에서 나주 금정산 너머로 지고 있는 겨울 해를 보았네. 서녘 하늘을 붉게 물들인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바람결에 몸을 싣고 하늘거리는 억새들의 군무에 혹해서 쉽게 발을 뗄 수가 없었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어.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칠순 노인을 위해 저녁 해와 억새들이 함께 준비한 경로잔치 같았거든. 남은 세월 쓸데없는 노욕과 아집으로 추해지지 말고 아름답게 살라는 고향 땅과 하늘의 신신당부를 가슴에 깊이 새기고 돌아왔네.

청복(淸福)이란 말을 아는가? 문자 그대로 맑고 깨끗한 행복일세. 그런 청복은 돈이나 권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야. 소욕지족하면서 자연과 함께 맑고 소박하게 살 때 누릴 수 있는 복이지. 청복의 반대말은 열복(熱福)인데, 세속적으로 출세를 해서 떵떵거리며 부귀영화를 누리는 복을 말해. 어느 게 얻기 더 어려울까? 답은 청복이야. 청복은 하늘도 아끼는 복이거든. 그래서 열복을 얻은 사람은 많지만 청복을 누리고 사는 사람은 보기 드물어. 특히 지금 우리 사회처럼 돈이 모든 가치판단의 중심이 되어버린 세상에서는 더 얻기 힘들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들까지 ‘돈돈돈’하는 세상 아닌가.

“토란국과 보리밥을 배불리 넉넉하게 먹고, 부들자리와 따뜻한 온돌에서 잠을 넉넉하게 자고, 땅에서 솟는 맑은 샘물을 넉넉하게 마시고, 서가에 가득한 책을 넉넉하게 보고, 봄날에는 꽃을 가을에는 달빛을 넉넉하게 감상하고, 새들의 지저귐과 솔바람 소리를 넉넉하게 듣고, 눈 속에 핀 매화와 서리 맞은 국화에서는 넉넉하게 향기를 맡는다네. 한 가지 더, 이 일곱 가지를 넉넉하게 즐기기에 팔여(八餘)라고 했네.”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김정국(1485~1541)이 자신의 호를 팔여(八餘)라고 지은 이유를 묻는 친구에게 한 대답일세. 멋있지 않는가. 이런 사람이 진짜 청복을 누리고 사는 사람이지. 나도 이순을 넘긴 후에는 청복을 누리려고 나름 애쓰고 있네만 아직 부족해서 부끄러운 게 많아. 그래서 평생 청복을 누렸다고 믿는 노자와 장자의 가르침을 열심히 배우고는 있네. 하지만 어디 그게 글로 배울 수 있는 지식의 문제인가. 직접 실천하는 게 중요하지. 그러니 오늘도 장자의 입을 빌려 자기성찰 하면서 마음을 다질 수밖에.

“못가의 꿩 한 마리,/ 열 걸음에 한 입 쪼고,/ 백 걸음에 물 한 모금,/ 갇혀서 얻어먹기 그토록 싫어함은,/ 왕 같은 대접에도 신이 나지 않기 때문.”(오강남 풀이)

『장자』 내편 「양생주」편에 있는 글이네. 아마 『장자』에서 가장 시적인 문장일 거야. 그러니 한 편의 시를 읊듯이 큰 소리로 다시 한 번 읽어 보게나. 못가에서 자유롭게 거닐고 있는 한 마리 꿩의 모습이 눈에 선하지 않는가. 이‘꿩 이야기’는 「추수」편의 ‘거북 이야기’와 더불어 장자의 소요유(逍遙遊) 정신을 잘 보여주는 우화들이야. 권력과 부귀영화보다는 자유롭게 사는 걸 택하겠다는 장자의 고집이 보이지. 우리에 갇혀 있으면 주인이 주는 밥 배불리 먹고 편히 살 수 있지만, 자유를 빼앗겨서 싫다는 거야. 열 걸음을 걸어야 모이 하나 주워 먹고, 백 걸음을 걸어야 물 한 모금 마실 수 있을 정도로 힘들어도 자유롭게 살겠다는 거지. 먹이 하나를 얻기 위해 걷는 아홉 걸음과 물 한 모금을 마시기 위해 걷는 아흔아홉 걸음도 놀이처럼 하면 즐거운 일이니까.

나는 이런 장자가 좋네. 「추수」편의 거북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는 분명 열복보다는 청복을 추구했던 사람일세. 초(楚)나라 임금이 대부(大夫) 두 사람을 보내 재상 자리를 맡아달라고 부탁했을 때 “거북은 죽어서 뼈를 남겨 귀하게 대접 받기를 원했을까요, 아니면 살아서 진흙탕 속을 꼬리를 끌고 다니기를 원했을까요?”라고 반문하는 기개를 보게나. 통쾌하지 않는가. 한 나라의 2인자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기보다는 자연과 더불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겠다는 장자. 그런 사람을 친구 삼아 남은 세월 즐겁고 넉넉하게 유유자적하려고 애쓰는 것도 나름 내 청복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독일의 저널리스트인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가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에서 했던 말을 연말 선물로 들려주고 싶네. “존재의 불안에 억눌리지 않고 굶주림에 시달리지 않고 집세를 지불하고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일들을 할 수 있는 한, 얼마든지 행복하고 우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그러려면 부자가 되려는 꿈을 꾸지 않아야 한다. 그런 꿈을 꾸는 경우에는 현재의 상황과 꿈꾸는 상황 사이의 불일치가 영원한 불만족의 근원이 된다.”어디 부자가 되는 꿈뿐이겠나. 우리 나이에는 권력과 사랑을 꿈꾸는 것도 불만족의 근원일 수밖에 없어. 청복을 꿈꾸고 실컷 누리는 2024년이 되길 바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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