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재영이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감독 김한민)로 관객 앞에 섰다.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 정재영이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감독 김한민)로 관객 앞에 섰다.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연극부터 영화, 드라마 등 무대를 넘나들며 내공 있는 연기로 대중의 신뢰를 얻어 온 베테랑 배우 정재영에게도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감독 김한민)는 특별한 도전이었다.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작품을 소화해 왔지만, 외국인 배역과 100% 외국어 연기는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촬영 6개월 전부터 언어 공부와 연습에 매진했다는 그는 현장에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기 위해 평소 절친한 사이인 동료 배우와도 철저하게 거리를 두는 등 단 한순간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았다고 했다. 이러한 노력 덕일까. 정재영은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얼굴로 이질감 없이 극 안에 녹아들며 관객을 완벽히 설득한다. 

‘노량: 죽음의 바다’는 임진왜란 발발 후 7년, 조선에서 퇴각하려는 왜군을 완벽하게 섬멸하기 위한 이순신(김윤석 분) 장군의 최후의 전투를 그린 전쟁 액션 대작이다.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 마지막 작품으로, 지난달 20일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를 점령하며 흥행 순항 중이다.

극 중 정재영은 이순신 장군을 도와 조명연합함대를 함께 이끄는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을 연기했다. 진린은 명량해전 이후 이순신 군대와 함께한 인물로, 명나라의 실리와 이순신과의 의리 사이에서 고민하며, 조선, 왜와는 또 다른 결의 명나라 수군의 입장을 보여주는 캐릭터다. 

정재영은 최근 <시사위크>와 만나 작품을 택한 이유부터 캐릭터 구축 과정, 촬영 비하인드 등 ‘노량: 죽음의 바다’와 함께한 시간을 돌아봤다. 특히 “영화에 참여한 사람도, 영화를 선택한 관객도 모두 만족하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는 바람을 전했다.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을 연기한 정재영.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롯데엔터테인먼트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을 연기한 정재영.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롯데엔터테인먼트

-부담감이 컸을 작품과 캐릭터였다.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아무래도 시나리오가 제일 컸다. 읽으면서 되게 궁금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순신 장군 최후의 전투가 과연 어떻게 표현될지. 글로만 읽었는데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3부작 중 앞선 두 편은 통쾌한 마음이 들었는데 ‘노량’은 먹먹한 마음이 더 컸다. 마치 지구를 지키는 히어로가 사라진 것처럼… 시나리오가 좋아 3부작의 마지막인 이 작품에 꼭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명나라말로 해야 할 거라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그냥 한국말이었다.(웃음)”

-기대했던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장면을 스크린으로 본 소감은. 

“시나리오보다 훨씬 좋았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특히 북소리가 모든 걸 다 복합해서 이야기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북소리가 저렇게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구나 싶더라. 북소리의 여운이 기가 막혔다. 그 어떤 말보다 세련되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외국어로 연기해야 했다.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쉽게 할 수 있을까, 덜 고생할까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방법이 없더라. 그냥 무조건 많이 연습하고 배우고 듣고 따라 하고 모르는 것은 다시 물어보고 검사받으면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방법밖에 없었다. 5~6달 동안 준비했다. 공부를 그렇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웃음) 그렇게 했는데도 힘들더라. 촬영장에서도 계속 연습했고 끝날 때까지도 아무리 짧은 대사라도 반복해서 우리나라 말처럼 익숙해지고자 했다. 체계적으로 배운 게 아니라 대사 위주로 하다 보니 더 어려웠던 것 같다. 중국의 정통사극이나 영화들 특히 ‘삼국지’ 시리즈를 다 봤다. 처음에는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니 나중에 많이 배우고 하니까 들리는 대사가 있더라.”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정재영.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정재영.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촬영장에서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지 않을 정도로 언어의 감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한국어로 수다를 나누면 깨져버린다. 발성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한국말로 떠들다가 다시 명나라말로 대사를 하려면 더 힘들다. 계속 유지하려면 그나마 한국말을 덜 해야 했다. 최대한 상태가 입술이나 혀 등 신체 기관이 명나라말에 익숙하게 유지를 해야 해서 농담도 못하고 대화도 많이 나누지 못했다. 또 영화 자체가 전체적으로 무겁고 비장해서 현장 분위기도 그랬다.” 

-언어뿐 아니라, ‘외국인’을 연기해야 했다. 관객을 설득하는 게 중요했는데.  

“그래서 언어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국 사람이 명나라 말을 하는 것은 훨씬 부담이 적잖나. 엄청나게 잘할 필요도 없고. 그런데 진린은 명나라 사람이잖나. 또 나는 누가 봐도 한국 사람인데 명나라 사람인 것처럼 해야 하고 천연덕스럽게 감정 표현까지 해야 하니 부담스러웠다. 첫 등장이 가장 중요했다. 처음에 말을 딱 했을 때 관객이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때 승부가 갈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잡지 못하면 흐트러지는 것이고 일단 잡으면 관객도 인정하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첫 장면에 제일 공을 많이 들였다. 그런데 영화에 나온 것은 내가 생각한 첫 장면이 아니더라. 공들인 보람이 없었다.(웃음)” 

-그렇게 완성한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는 어땠나. 

“불안불안하게 봤다. 사실 나는 지금 들어도 내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만족도라는 게 없다. 중국어를 아는 분이나 유학을 갔다 온 분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걱정이 되는 거다. 시사회 왔던 분들이나 지인 중에 중국어를 잘하는 분이 그냥 수고했다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성조가 굉장히 어려운데 잘했다고 듣는데 별 이상 없었다고 해줬다. 고생 많이 했을 것 같다고 해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재영이 캐릭터 접근 과정을 떠올렸다.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정재영이 캐릭터 접근 과정을 떠올렸다.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액션도 소화해야 했다. 

“옷이 무겁고 불편했고 조금만 잘못하면 투구가 돌아가니 그런 부분을 신경 써야 했다. 감정도 신경 써야 하고. 예전에 ‘신기전’ 할 때 검도부터 해서 6~7개월 정도 칼 쓰는 법을 연습해놔서 조금은 수월했다. 처음 했으면 힘들었을 거다. 그것까지 준비해야 했으면 못했을 거다. 다행히 그 부분은 조금 수월해서 언어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진린에게는 액션이 주인 영화는 아니었으니까.”

-진린은 실존 인물이었다. 어떤 인물로 다가왔고 어떻게 그리고자 했나.  

“그때그때 진실 되게 충실하고자 했다. 이순신 장군과 이야기할 때 진린은 정말 적이 물러갈 거라는 생각이 확고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더 문제를 일으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 그 말이 틀렸다는 게 확인됐을 때 태세를 전환해 ‘내가 틀렸소’라고 한다. 좋게 말하면 인간적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이순신 장군에 대한 애정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잘못했다는 걸 시인할 수 있었고 자신만만하게 반대할 수도 있었던 거다. 직책을 이용해 다 무시해 버릴 수 있는데 말이다. 실제로도 명나라 장수 중 이순신 장군에게 가장 호의적이었고 작전도 도와줬다고 하더라. 왜 그랬을까. 이순신 장군의 매력을 알았던 거다. 또 유유상종이라고 진린도 시골에서 자라 자수성가하고 모함도 당하고 질책도 당하고 감옥도 갔다가 다시 복직하고 우여곡절이 많았더라. 나라가 다르더라도 군인과 군인으로서 애국자라는 사실을 느꼈을 것 같다.”

정재영이 이순신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정재영이 이순신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롯데엔터테인먼트

-김윤석과의 호흡은 어땠나.

“물론 사적인 자리에서는 가끔 보고 했지만 작품에서는 처음 봤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영화 속 이순신의 느낌으로 현장에서도 계속 있었던 것 같다. 그 덕에 나 역시 이순신으로 바라보고 느끼며 연기할 수 있었다. 본인은 촬영 내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도 든다. 무거운 갑옷을 입고 고민에 빠져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순신 장군 하면 직진만 하는 사람 같지만 그 안에서는 너무나 많은 고민을 하며 내리는 결론이다. 그런 지점들이 현장에서의 김윤석에게도 느껴졌다.”

-이 작품을 통해 이순신에 대해 느낀 새로운 감상이 있다면.

“알면 알수록 대단한 분이다. 김한민 감독님은 지금도 힘들 때마다 난중일기를 본다고 하는데, 난중일기만 봐도 7년 동안 이어진 전쟁 통에 누가 그런 걸 쓰고 싶겠나. 매일 일지를 기록하라고 지시할 수도 있는데 본인이 직접, 그 힘든 와중에도 그걸 하셨다. 우여곡절도 너무 많았잖나. 그럼에도 나라를 지켜야 하는 일념 하나로 모든 걸 다 바쳤다. 거기에 지혜와 전략, 강단과 용기까지 유비 관우 장비가 나눠 갖고 있는 걸 혼자 다 갖고 계신 분이다. 그런 분이 있었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 지구 대표 장군님이다.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가락 안에 꼽는 훌륭한 분이다. 서양에서 태어났으면 전 세계 사람들이 아는 더 유명한 분이셨을 거다. 몇백 년 만에 한 번씩 날까 말까 한 인재인 것 같다.”

-‘노량: 죽음의 바다’를 통해 이루고 싶은 성과나 바람이 있다면.

“내가 나온 부분이 이질감이 없었다고 느끼는 결과라면 그것보다 감사한 일이 어딨겠냐. 많은 분이 ‘노량’을 위해 시간과 열정과 에너지를 쏟았다. 모두 행복하게 마무리 지었으면 좋겠다. 또 이 작품이 시리즈의 마지막이잖나. 유종의 미를 잘 거뒀으면 좋겠다. 참여한 모든 분이 참여하길 잘했다고 느끼고, 영화를 선택한 관객도 이 영화를 보길 잘했다고 느끼는, 모두가 훈훈한 작품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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