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며칠 전 아침 식사를 하면서 아내가 뜬금없는 말을 하더군. “낮에도 자고 밤에도 자고 복이 많은 사람이여!” 나에게 하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물었지. “누가?” “누군 누구여, 철없는 분이지.” 그러면 넉살좋게 웃으면서 응답하네. “왜 그래. 한평생 철없이 사는 것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아니야. 잠이 보약이라는 말 몰라? 잘 자는 게 청복(淸福) 중 하나라고.”

실제로 집에 있는 날은 비교적 많은 잠을 자네. 점식 후에 30분 정도 낮잠을 자지. 그런데도 신기하게 날이 어두워지면 서서히 몸에 신호가 와. 내 몸의 솔방울샘에서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melatonin)이 분비되기 시작하는 거지. 하품이 나오고 눈꺼풀이 무거워져. 생체시계가 잠 잘 시간이라는 신호를 몸에 계속 보내고 있는 거야. 9시 경에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우면 곧 잠이 드나봐. 새벽 4시 경에 눈을 뜨고 나서야 잘 잤다는 걸 알지. 그러면 가분한 몸과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서 매우 좋아. 요즘은 젊었을 때보다 꿈도 많이 꿔. 잠을 충분히 자서 빠른 안구 운동 수면(rapid-eye movement sleep), 즉 렘수면 시간도 갖게 된 거야. 가장 강력한 렘수면은 보통 7~8시간은 자야 가능하거든.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이 말한 노인의 열 가지 좌절 중 두 개가 잠과 관련된 것이네. 대낮에는 꾸벅꾸벅 졸면서 밤에는 잠이 오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그러면 성호 선생처럼 많은 노인들이 늙으니 잠이 없다고 한탄하는데 잠만 잘 자는 나는 아내 말처럼 아직 철없는 사람일까? 지난 편지에서 이야기한 팔여거사(八餘居士) 김정국이 “부들자리와 따뜻한 온돌에서 잠을 넉넉하게 자는 걸 청복 중 하나”라고 말한 것을 보면, 잠을 잘 자는 게 흉이 아닌 것은 분명해. 게다가 최근에는 뇌 관련 학문들의 발전으로 수면 부족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이 하나둘 밝혀지고 있기도 하고. 다음 인용문은 프랑스의 신경과학자인 미셀르 방키앵이 『자연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에서 수면 부족으로 생체 리듬이 깨지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언급한 한 연구 결과일세.

“일주기 리듬이 동요하면 만성질환이 발병하거나 악화되는 데 직결된다. 그중에서도 수면과 각성 주기에 이상이 생기면 정신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 이는 25년에 걸쳐 8천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로부터 밝혀진 사실이다, 연구원들은 수면 시간과 치매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는데 치매 중에서도 잘 알려진 알츠하이머병에 관심을 가졌다. 연구에 따르면 50~70세 연령층에서 7시간 이상 정상적으로 잠자는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하루에 수면 시간이 6시간 이하였던 사람들이 치매에 걸릴 위험은 24~40퍼센트까지 높아졌다.”(김수영 옮김, 162쪽)

그러면 어떻게 해야 잠을 충분히 잘 수 있을까? 먼저 류시화 시인의 엮은 『마음챙김의 시』에 있는 영국 시인 브라이언 패튼(1946 ~ )의 <고양이는 옳다>을 읽어 보세.

“날마다 고양이는 무엇을 기억하는가?/ 추위를 피해 안으로 들어가는 길,/ 가장 따뜻한 지점과/ 먹을 것이 있는 위치를 기억한다./ 고통을 안겨 주는 장소와 적들,/ 애를 태우는 새들, 흙이 뿜어내는 온기와/ 모래의 쓸모 있음을./ 마릇바닥의 삐걱거림과 사람의 발자국 소리,/ 생선의 맛과 우유 핥아먹는 기쁨을 기억한다./ 그밖의 기억들은 모두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 마음속에서 내보낸다./ 그래서 고양이는 우리보다 더 깊이 잔다./ 너무 많은 비본질적인 것들을 기억하면서/ 심장에 금이 가는 우리들보다.”

이 시의 원제는 <비본질적인 것들 Inessential Things>이네. 요약하면, 고양이는 자기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본질적인 것들’만 기억하면서 살기 때문에 인간보다 깊은 잠을 잔다는 거지. 반대로 인간은 너무 많은 비본질적인 것들을 기억해서 ‘심장에 금이 가’ 깊은 잠을 잘 수 없네. 맞는 말일세. 지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비본질적인 것들, 즉 살아가는 데 크게 중요하지 않는 것들에 매달려 끙끙대고 있기 때문에 고양이와 같은 깊은 잠, 편안한 잠을 자지 못하고 있어.

그러면 ‘지금 여기’에서 노인들의 잠을 빼앗고 있는 가장 비본질적인 것은 뭘까? 나는 스마트폰이라고 생각하네. 적어도 잠자리에 들기 두 시간 전부터 디지털 기기 화면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를 피해야 멜라토닌의 분비가 활발해진다는 게 과학자들의 주장일세. 하지만 많은 노인들이 밤이 깊어가도 휴대폰을 멀리하지 못하지. 마치 애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밤새 곁에 두고 지켜보고 싶어 해. 잠시라도 멀리 떨어져 있으면 뭔가 중요한 걸 놓칠 것 같은 불안감도 들고. 이른바 포모(Fear of Missing Out),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야. 하지만 밤새 스마트폰 보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별 문제 없어.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도 마찬가지이고. 잠을 잘 자려면 제일 먼저 우리들의 눈과 귀를 현혹하는 이런 비본질적인 것들로부터 해방되어야 하네. 다음 편지에서도 잠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하세.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