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오늘날 미국인의 40%가 만성 수면 부족으로, 하루에 최소한으로 필요한 수면 시간인 7시간을 채우지 못한다. 영국에서는 놀랍게도 인구의 23%가 하루에 채 5시간을 못 잔다. 우리 중 겨우 15%가 개운함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난다. 이는 새로운 현상이다. 1942년 이후로 평균 수면 시간이 1시간이나 줄었다. 아동은 지난 1세기 동안 하루 수면 시간이 평균 85분 줄었다. 정확한 감소 규모를 두고 과학적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국립수면재단(National Sleep Foundation)은 지난 100년간 수면 시간이 20% 감소했다고 추정했다.”

요한 하리의『도둑맞은 집중력』에 나오는 통계인데, 지난 100년 동안 수면 시간이 1시간 정도 줄어들었다는 게 놀랍지 않은가? 문제는 그게 영국과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걸세.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들보다 훨씬 덜 자고 있네. 한국인의 평균 수면 시간이 세계에서 최하위 수준이라는 조사들이 많아. 그 중 하나인 2023년 9월18일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 보도에 따르면, 한국인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6.3시간이었네. 최소한 7시간은 자야 하는데 42분 정도를 덜 자고 있는 거지. 전체 조사 대상 35개국 중 34위였네. 꼴찌는 일본이 차지했는데 그들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이 6.1시간이었어.

한국과 일본은 수면 효율도 매우 낮았네. 수면 효율이 가장 높은 핀란드의 경우 주중과 주말이 각각 86.8%, 86.5%인 반면, 한국은 주중 84.3%, 주말은 83.7%로 34위였네. 일본은 주중이 83.3%, 주말은 82.9%로 꼴찌였어. 동아시아의 두 나라는 수면 시간도 짧고 수면 효율도 낮았어. 수면 효율이 낮다는 건 깊은 잠을 자지 못한다는 뜻이야.

그러면 어쩌다가 전 세계 사람들이 잠을 충분히 잘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을까? 산업화 이전보다 경제적으로 더 풍요로운 세상이 된 건 분명한데 잠을 자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뭐가 잘못된 걸까?

생명 있는 것들에는 낮과 밤의 교체에 맞춰진 일주기(日週期) 리듬이 있네. 흔히 생체 리듬이라고 부르지. 그래서 해가 지면 잠을 자고, 해가 뜨면 일어나는 거야. 자연의 리듬이고, 태양의 리듬이며, 농부의 리듬이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전깃불이 아직 없었던 시절에 살았던 사람들은 밤에 잠자리에 들면 동이 틀 때까지 잤네. 그래서 밤이 긴 겨울에는 10시간 이상도 잘 수 있었지. 1960년대까지 대다수 한국 사람들은 그렇게 살았어.

하지만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이런 자연의 리듬이 깨지기 시작했네. 공장에서 밤늦게까지 일을 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노동자들에게 잠은 더 이상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기본 욕구가 아니게 되어버렸지. 밤에도 인공조명 아래서 졸면서 일을 해야만 했거든. 산업화와 함께 커피의 대중화가 시작된 게 결코 우연이 아니야. 전기가 등장하고 텔레비전이 대중화되면서 보통 사람들의 잠자는 시간도 많이 줄어들었어. 빛이 많으면 잠들 수가 없으니 당연하지.

하지만 가장 치명적인 수면 장애와 단축은 20여 년 전에 등장한 스마트폰 때문에 발생했네. 스마트폰은 남녀노소, 계급계층 구분 없이 누구나 좋아하는 슬롯머신이야. 누구나 부지불식간에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괴물 같은 마약이라고나 할까. 스마트폰 웹을 개발하는 사람들의 최대 목표가 이용자들을 오래 잡아두는 것이라는 건 알지? 그래야 광고도 오래 보고, 돈도 쓰게 되니까.

자본주의 체제는 사람들이 충분히 자는 걸 싫어할 수밖에 없네. 왜냐고? 잠든 사람들은 노동도 소비도 하지 않거든. 많은 사람들이 저임금으로 초과노동을 하지 않고 돈도 쓰지 않으면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는 유지될 수 없어. 그래서 자본주의 체제는 충분한‘수면’을 싫어하며, 다양한 방법으로(커피의 대중화도 그 중 하나) 많은 사람들을 잠들 수 없게 만드는 거야.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잠도 돈을 주고 사야하는 상품으로 만들고 있지. 수면 장애 치료를 위해 병원에 다니고 수면제나 수면보조제 등을 복용하게 만드는 게 다 잠의 상품화야. 병 주고 약 주는 거지.

그래서 지난 편지에서 말한 대로 노년에 잠을 잘 자기 위해서는, 나아가 자본에 예속된 비루한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지 않는 비본질적인 것들로부터 해방되어야 하네. 다시 한 번 브라이언 패튼의 시를 읽어 보게. 고양이로부터 깊은 잠을 자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걸세. 늦었지만, 요즘 스마트폰의 부작용을 알아차린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 다행이네. ‘디지털 디톡스’즉‘도파민 디톡스’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거든. 우리 같은 노인들이 스마트폰 없는 세상에서 불필요한 연결을 끊고 몇 년 조용히 살다 가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닐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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