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살인자ㅇ난감’은 우연히 살인을 시작하게 된 평범한 남자와 그를 지독하게 쫓는 형사의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다. 파격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연재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두터운 팬층을 거느린 꼬마비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 영화 ‘사라진 밤’ 등 장르물에 탁월한 감각을 선보이며 평단과 대중의 호평을 받은 이창희 감독이 연출을 맡고, 2019년 경기 시나리오 기획개발 장편 부문 대상을 수상한 김다민 작가가 각본을 맡은 ‘살인자o난감’은 치밀하고도 독특한 시선으로 신선한 이야기를 완성, 글로벌 시청자를 매료했다.

특히 현실 밀착형 스토리와 심리묘사가 압권인 원작의 매력을 고스란히 살리는 것은 물론, 장르적 쾌감을 한층 극대화해 시리즈만의 새로운 재미를 완성했다는 평이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이창희 감독은 쉽지 않은 도전을 택한 이유부터 각색 과정, 캐스팅 비하인드 등 ‘살인자o난감’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작품을 둘러싼 호불호 평가와 논란 등에 대한 솔직한 생각도 들을 수 있었다. (*해당 기사에는 시리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상화하기 쉽지 않은 소재와 이야기였다. 어떻게 연출을 결심했나. 

“처음 웹툰을 봤을 때 우연히 사람을 죽이는데 그들이 나쁜 사람이었다는 설정 자체가 재밌는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굉장히 독특한 스토리라인이었다. 어떻게 끝날까 했는데 모든 게 예상 밖이었다. 흔하지 않게 이야기가 흘러가고 예측 불가능한, 통통 튀는 매력에 매료가 됐다. 두 번째는 굉장히 딥한 이야기라고 하지만 그렇지 못한 그림체와 희한한 연출법이 자극이 됐다. 잘해봤자 본전일 것 같아 고민을 많이 했지만 새로운 도전이 될 것 같아 용기를 냈다.” 

-공개 후 반응을 찾아봤나. 

“호불호가 있는데 난 항상 불호 반응만 본다. 어떻게 나쁘게 봤는지 관심을 갖는 편이다. 처음에는 물론 기분 나쁘다. 반박하고 싶고. 그런데 받아들여야 하잖나. 그래야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긍정적 반응을 보면 용기도 얻고. 그래서 지금 내 기분이 아주 좋진 않다.(웃음)”

-원작자의 반응도 궁금하다. 

“아침에 전화 와서 8번씩 정주행하고 있다고 하더라. 시간이 많으시다.(웃음) 워낙 겸손하셔서 바뀐 부분에 대해 다 받아들여주셨다. 사실 걱정이 됐다. 당연히 원작자가 싫어할 수 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지점에 대해 고맙다고 해주시더라. 한 줄 평은 ‘더할 나위 없다’였다. 조만간 술 한잔하기로 했다.” 

-원작에서 이탕이 영웅 심리에 취하기도 하고 살인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담겼다면 시리즈에서는 그 지점이 생략되고 오히려 죄책감을 느끼고 영웅이길 거부한다. 각색 과정에서 어떤 고민을 했나.    

“소설도 그렇고 글을 영상으로 표현할 때 어려운 지점이 인물의 복잡한 심정을 정리하는 거다. 그것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게 쉽지 않다. 이번 작업에서도 이탕의 복잡한 감정들을 단순하게 정리해서 다가가야 시청자들에게 잘 와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야 원작을 보지 않은 분들에게도 이야기를 따라가기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탕이 여옥을 죽일 때 처음으로 능동적 살인을 하는데 배우가 그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 같으면 죽이지 않을 것 같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이탕은 그런 캐릭터다, 조금은 삐딱하고 잠재적으로 나쁜 힘이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 감정에 대해 세세하게 이야기를 나눴고 그렇게 빌드업을 해나갔다. 다만 그것을 표현하는 데 있어 복잡한 생각을 너무 주입하면 따라가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최대한 단순하고 명쾌하게 가려고 했다.” 

-송촌이 등장하면서 이탕의 분량이 적어지고 재미도 반감됐다는 평가도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그 지점에 대해 처음부터 호불호에 대한 것은 내부적으로 안고 갔다. 다만 비율이 ‘호’가 많길 바랐다. 원작도 비슷하다. 이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것이 형식 파괴, 문법 파괴 같고 궁금하게 붙잡는 매력이 있었다. 그것을 과감하게 각색해서 이탕 위주로 이야기를 가느냐, 원작의 결을 유지하느냐를 두고 고민했는데 후자를 택했다. 또 반대로 이희준이 연기를 잘해서 송촌 보는 맛이 있다고 하는 반응도 많다. 감사한 마음이다.”

-송촌이 살인을 저지르기 전 반성문을 쓰게 하는 것도 원작에는 없는 설정이다. 추가한 이유는. 

“송촌은 단순히 악행을 처단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죄를 묻는 거다. 송촌은 네가 죽더라도 뭘 잘못했는지 알고 죽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반성문을 쓰게 한 거다. 또 그 반성문을 보면서 자신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정체성을 찾지 않았을까. 아침마다 일어나 그 반성문을 읽을 것 같다. 그러면서 자신이 사는 이유라고 생각했을 거다.” 

-살인, 사적 복수 미화에 대한 고민도 했을 것 같은데. 

“당연히 이탕이라는 캐릭터가 현실에 있으면 안 된다. 난감도 잘못된 거다. 그런데 이건 판타지다. 이 자체가 극이기 때문에 이 안에서는 마음껏 쾌락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또 이탕같은 존재가 있다면 어떨까 한 번 생각해 보자. 그럼 과연 당신은 난감과 같은 처지에 있을 때 똑같이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스타일리시한 연출력도 돋보였다.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무언가 스타일리시한 장면을 일부러 만들려고 하면 강박에 빠진다. 굳이 안 해도 될 때와 해도 될 때를 구분하는 게 숙제다. 이번 작업에서는 원작을 보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었고 형식에 너무 얽매이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자유롭게 한 번 도전해 보자는 생각으로 재밌게 하려고 노력했다. 리얼리티와 기괴하고 이상한 판타지가 부딪히면 재밌을 것 같았다. 살인하는 장면도 화사하게 찍고 어울리지 않는 것을 조합하면 ‘힙’하고 ‘팝’하지 않을까 했고 캐릭터들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붙어있게 하는 시도들을 했다. 과감하게 시도해 봤다. 송촌이 등장하면서는 톤 앤 매너가 달라지는데 그게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음악도 인상적이었다. 어떤 기준을 두고 작업했나. 

“독특한 음악을 지향했다. 달파란 감독이 음악 작업을 했다. ‘꼰대’의 반대말은 ‘달파란’이다. 굉장히 젊은 감각과 열린 생각을 갖고 있는 분이다. 아이디어도 많다. 항상 과감한 음악을 추구하더라. 어떤 건 너무 심하지 않냐 싶어서 덜어낸 경우도 있었다. 조율은 했지만 자유롭게 했다. 이 작품은 그래도 돼 하면서 신나게 작업을 했다. 음악감독님이 워낙 잘해서 음악에 대한 불호는 없더라.(웃음)”

-손석구의 아역이 높은 싱크로율로 화제를 모았는데 CG였다고. CG를 택한 이유가 있나. 

“개인 철학인데 리얼리티 연기를 좋아한다. 연기 같은 게 싫고 가공된 걸 싫어한다. 있을 법한 것들을 좋아한다. 다른 작품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고 개인적인 아집이다. 손석구와 얼추 닮은 배우를 두고 컸다고 하면 거짓말 같은 거다. 다르게 생겼는데 우기는 거잖나. 그 선택은 ‘사라진 밤’ 때부터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는 기술이 안 됐고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서 포기를 했다. 최근에는 CG가 발전해서 여러 곳에 체크를 했고 아직 회의적인 곳들도 많았지만 그중에서 많이 해본 업체와 작업을 하게 됐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하지 않을까 싶다. 장난감의 아역뿐 아니라 노빈의 아역도 CG고, 영상 속 여중생의 모습도 CG였다.” 

-리얼리티 연기를 추구하는 감독의 성향이 캐스팅에서도 느껴진다.

“최우식은 이미 너무 명감독과 작업한 이력이 있고 손석구도 날 것의 연기를 굉장히 좋아하는 걸로 알고 있다. 이희준은 워낙 스펙트럼이 넓으니 어떤 연기도 잘했을 거다. 연기라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는 것 같다. 가공된 연기도 필요하고 뮤지컬 같은 것은 노래 실력도 중요하다. 배우들이 모든 걸 다 잘하면 좋겠지. 다만 나는 리얼리티 연출 밖에 할 줄 몰라서 그런 거다. 그래서 나한테 적응을 못하는 배우도 있다. 너무 대사 그대로 하면 NG를 내거든. 나는 서로 대화할 때 대사가 겹치기도 하고 더듬기도 하고 그런 걸 선호한다. 그런 지점에서 (배우들과) 생각이 맞아야 했다.” 

-배우들과 의견도 많이 나눴다고. 배우의 해석에 감탄한 순간이 있다면. 

“가끔 막힐 때 배우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난감과 송촌의 캐릭터를 잡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손석구, 이희준에게 물어봤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 같냐고 묻고 의견을 듣고 계속 수정했다. 두 캐릭터가 처음 만나는 장면은 너무 안 풀려서 대본은 있었지만 각자 배우에게 대사를 써오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두 배우 다 연출 경험이 있잖나. 심지어 잘 찍었더라. 둘도 감독이기 때문에 나의 고충도 알고 그래서 제안을 했고 잘 써왔다. 그걸 현장에서 조율만 했다. 그만큼 의지를 많이 했다. 특히 폐공장 마지막 신은 엄청 회의를 많이 했다. 나중에는 배우가 감독에게 부담을 너무 주는 것 같다고 이해가 안 돼도 하겠다고 하더라. 배우가 이해가 되지 않는데 연기를 한다면 연출자로서 제일 안 좋은 일이 아닌가. 그래서 포기하지 말고 기다려달라고 하고 계속 수정했던 기억이 있다. 최우식은 반대로 나한테 숙제를 줬다. 디테일하게 고민이 많다. 내게 물어보는 게 많았고 선택만 해주면 됐다. 스스로 잘했다.”

-노빈 역의 김요한도 인상적이었다. 캐스팅 과정이 궁금하다. 

“‘군검사 도베르만’에도 나왔는데 그때는 눈여겨보지 않았다. 오디션을 엄청 많이 봤는데 노빈의 외형과 비슷한 분들을 많이 만났다. 그런데 그중에서 김요한을 보자마자 느낌이 왔다. 계속해서 대화를 나눴는데 점점 노빈스럽다는 생각이 들더라. 엉뚱하고. 대사를 주고 연기하지 말고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해보라고 했더니 그것도 너무 좋았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캐스팅했다. 많은 분들이 현장에서 보자마자 ‘저 사람이 노빈이구나’ 생각했다고 하더라. ‘날 것’을 연기했다.”

-일부 시청자 사이에서 7화에 등장하는 형정국의 죄수번호 4421이 대장동 개발사업 시행사의 수익 4421억원과 일치한다거나 형정국이 구치소에서 초밥을 먹는 장면, 형정국의 외형 등이 특정 정치인을 떠올리게 한다는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는데. 

“당연히 아니니 억울하고 황당하다. 연출자 개인의 정치적 견해를 비정치 드라마에, 그것도 몰래 교묘하게 녹이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숫자는 우연히 나온 것이고 배우가 특정 정치인을 떠올리는 외모라고 주장하는데 그 지점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대사가 있는 배우만 150명이다. 연기를 잘하는 분만 모시는 것도 어려운데 특정 이미지를 선출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름은 형회장은 원작에 있는 인물이고 ‘형지수’라는 이름은 초고 때부터 있었다. PD 이름에서 따왔다. ‘형지수’ 외에도 현장 스태프들의 이름에서 따온 게 많다. 연출자들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엄청 많이 고민한다. 국회의원이 교도소에서 어울리지 않는 고급 도시락을 먹는다고 한다면 그게 삼겹살이겠나. 당연히 초밥을 생각했다. 말도 안 되는 해석으로 껴 맞추기를 한 것 같다. 많은 분들이 봐주셔서 생긴 해프닝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도전이 된 작품이라고 했다. 이 도전이 어떤 변화를 줬고 앞으로 연출하는 데 있어 어떤 영향을 줄까.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 재평가를 해야 하는 게 있지만 지금 말하자면 다채로운 작품? 이렇게 희한한 작품을 또 언제 해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다. 문법도 파괴해 보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이런 작품을 또 할 수 있을까. 또 그 과정에서 자신을 한 번 냉정하게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