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현 감독이 새 영화 ‘파묘’로 극장가를 접수했다. / 쇼박스
장재현 감독이 새 영화 ‘파묘’로 극장가를 접수했다. / 쇼박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파묘’는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오컬트 미스터리다.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섹션에 공식 초청돼 호평을 받은 데 이어, 지난 22일 국내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를 점령하며 압도적인 흥행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메가폰은 장재현 감독이 잡았다. 2015년 데뷔작 영화 ‘검은 사제들’을 통해 당시 국내에서는 생소했던 엑소시즘 소재로 흥행에 성공하며 주목받은 장재현 감독은 두 번째 장편 연출작 신흥 종교 비리를 쫓는 미스터리 영화 ‘사바하’(2019)로 다양한 종교를 총망라하며 오컬트 장르의 선구주자로 자리매김했다.

5년 만에 내놓은 신작 ‘파묘’는 풍수지리와 무속 신앙을 다룬 신선한 소재와 미스터리함을 극대화하는 연출, 몰입도 높은 스토리 등 더욱 강력해진 세계관으로 다시 한 번 관객을 매료하고 있다. 특히 전반부와 후반부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전반부에서는 오컬트 미스터리의 장르적 재미, 후반부에서는 우리의 아픈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항일 코드’를 녹여내 메시지를 전달, 재미와 의미를 모두 잡으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장재현 감독은 기획의 출발과 촬영 과정, 연출 포인트 등 ‘파묘’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해당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결정적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를 점령한 ‘파묘’. / 쇼박스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를 점령한 ‘파묘’. / 쇼박스

-이번에도 무서운 이야기를 택했다. 끌리는 이유가 있다면.

“나는 생각보다 밝다. 기본적으로 말도 많고 밝은 성격이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반대로 그로테스크(grotesque)한 걸 좋아하고 동경했던 것 같다. 그런 이야기가 더 재밌고 어두운 세계관에 ‘날라리’ 같은 사람이 들어오는 걸 좋아한다. 캐릭터는 그렇게 어둡지 않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 의리, 정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곳이 교회밖에 없었다. 사회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얼마나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 그것이 얼마인지와 같은 이야기만 한다. 교회나 절이나 성당에서만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런 것이 점점 사라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것에 대한 반발심도 있었다. 인간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이라는 것에 교회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새벽 기도 가는 우리 엄마의 마음에 있다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파묘’ 예고편이 무섭게 나왔더라.(웃음)”

-기획의 출발이 궁금하다.

“영화를 봤을 때 감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끝날 때 감정. ‘검은 사제들’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로 끝내고 싶었고 ‘사바하’는 그냥 슬픈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신은 존재하는데 왜 사람들은 죽어나가는 걸까, 신은 대체 어디 있는 것이지 등 질문을 하게 하는. 이번에는 개운한 영화를 하고 싶었다. 발바닥의 티눈을 빼내듯. 처음 ‘파묘’의 소재를 잡았을 때는 음흉한 공포영화로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지면서 극장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사람들이 극장에 오지 않는데 화끈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인공들이 다 바뀌었고 내가 해 온 방법을 다시 택한 거다. 전문가들이 주인공이니 공포영화로 접근하지 않았다. 공포를 주기 위함보다 긴장감을 유지하고 신비롭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공포를 좋아하는 마니아층은 아쉬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언론시사회 후 간담회에서 ‘우리 땅의 트라우마를 파묘하고 싶었다’고 한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소재에 접근할 때 겉모습, 표피를 보기보다 코어를 보려고 하는 편이다. 어느 날 급하게 장의사에게 전화가 왔다. 이장하러 가야 하는데 30만원 줄 테니 따라오라고.(웃음) 가서 도와주겠다고 하고 갔다. 상주가 갑자기 뇌졸중이 온 거다. 묘를 팠는데 근처 수도공사를 잘못해서 진짜 물이 들어간 거다. 그걸 꺼내서 관을 열고 토치로 급하게 다 화장을 했다. 그 자리에서 그냥 다 태워버렸다. 그날 느낀 게 파묘라는 것이 잘못된 걸 꺼내서 없앴다는 것이구나, 과거를 들춰 없앤다는 정서가 왔다. 우리나라 땅을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엄청난 피해자잖나. 상처와 트라우마가 있는데 그걸 파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 숨겨진 항일 코드가 관객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사진은 유해진(왼쪽)과 최민식. / 쇼박스
영화 속 숨겨진 항일 코드가 관객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사진은 유해진(왼쪽)과 최민식. / 쇼박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우리나라의 정기를 끊기 위해 ‘쇠말뚝’을 박았다는 ‘쇠말뚝 설’을 주요 소재로 가져왔다.

“나도 일본 영화, 일본 만화를 좋아한다. 일본 여행도 자주 간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일본이 아니라 우리 땅에 포커스를 맞췄다. 우리 땅에 우리가 갖고 있는 무의식적 정서, 그 공포감과 트라우마를 우리의 구세대와 신세대가 힘을 합쳐 개운하게 뽑아내는 것에 집중했다. 어떤 편에 집중하려고 하진 않았다. 일본 정령을 가져오긴 했지만 그 존재를 괴기하게 보여주기보다 은유적 상징과 이미지로 표현하고 싶었다. 옆 나라에 어떤 감정을 주고 싶진 않았다.”

-역사적 소재를 이야기에 녹여내면서 연출적으로 고민한 지점은 무엇인가.

“‘쇠말뚝’이 중요하지만 생각나지 않게 찍으려고 노력했다. 실제 있었는지 없었는지 가설과 이론만 남아있고 나 역시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도 그것이 없어졌는지 정확하게 보여주지 않았다. 의견이 지금도 분분한데 내가 확신할 순 없잖나. 다만 그 기운을 없애고 싶어서 그것을 육체화한 거다. 오히려 처절한 주인공을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춰서 쇠말뚝이 생각나지 않게 하고 싶었다.”

-‘험한 것’의 정체를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전작들과는 다른 선택인데 감독의 의도는 무엇이었나.

“서양에는 뱀파이어도 있고 미라도 있고 중국엔 강시가 있다. 그런 건 우리에게 다 친숙하다. 그런데 바로 옆 나라(일본)에 있는 그 친구는 되게 유명한 정체성의 정령이고 국가대표인데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만화책이 ‘음양사’였고 생각보다 10대 20대는 그 문화와 캐릭터에 대해 거부감이 없다. 다만 그걸 표현하는 방식은 다른 문제였다. 귀신을 찍은 적이 없다. 어떻게 찍어야 할지 몰라서 전 세계 심령사진을 많이 봤는데 찍는 게 아니고 찍히는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찍히는 것처럼 찍고 싶었다. 그런데 후반부 나오는 그 정령은 완전히 새롭게, 정반대 방법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게 없다면 깔끔한 유령 영화를 만들 수 있었겠지. 하지만 한 발자국을 나가야 이 영화를 만드는 원동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불호 의견도 많았다. 그런데 내겐 그 불편함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게 의미가 있고 의의가 있었다. 제일 기분 좋은 말이 ‘발전했다’는 말이다. 그냥 했던 거 계속해서 돈을 벌려고 하는 것보다 계속 발전하고 싶은 게 나의 감독관이고 사명이다.”

인상적인 열연을 보여준 이도현(왼쪽)과 김고은. / 쇼박스
인상적인 열연을 보여준 이도현(왼쪽)과 김고은. / 쇼박스

-여섯 개의 막을 나눈 구성을 택한 이유와 내레이션을 통해 친절한 설명을 덧붙인 이유는.

“시나리오 때도 막을 나눴다가 없앴다가 그랬는데 최종 시나리오는 나누지 않았었다. 영화를 편집하고 나니 사람들에게 복선으로 미리 던져주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텍스트를 넣어 약간의 준비를 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게 전체적인 편집 방향에서 괜찮겠다는 판단을 했다. 내레이션은 후반부 김상덕의 내레이션 때문에 앞도 넣은 거다. 김상덕이 감정을 풀어줘야 하는데 액션이 별로 없다. 방망이질 몇 번 할 뿐이다. 그것을 내레이션으로 풀어줘야 했고 그것을 더 잘 받아들이기 위해 초반도 내레이션을 사용했다. 음양오행에 대한 세계관도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다소 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넣는 게 이득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전반부 이야기와 후반부 이야기의 연결이 매끄럽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감독의 의도는 무엇이었나.

“작가적 욕심인데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는다’는 영화 속 대사처럼 이 이야기의 허리도 끊어버리고 싶었다. 전반부 이야기는 후반부 이야기를 가려주는 연막이면서 분명 연관이 있다. 시나리오 때부터 호불호가 있었지만 중간에 허리를 끊는 게 이 작품과 제일 맞고 잘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유머와 위트는 전작보다 강화된 느낌이다.

“유해진 선배가 살려줬다. 기막힌 사람이다. 연기 장인이다. 과하지 않게 적당하게 해줬다. 연기를 비교할 순 없지만 유해진 선배는 대한민국에서 연기를 제일 잘하는 것 같다. 기술적으로는 거의 대한민국 최고다.”

‘묘벤져스’의 앙상블도 관객을 사로잡은 비결이다. / 쇼박스
‘묘벤져스’의 앙상블도 관객을 사로잡은 비결이다. / 쇼박스

-최민식(상덕 역)‧김고은(화림 역)‧유해진(영근 역)‧이도현(봉길 역) 등 ‘묘벤져스’의 앙상블이 돋보였다.

“실제로 장의사나 풍수사를 만나보면 다 나이가 많다. 없어지는 직업이다. 그래서 엄청난 꼬장꼬장함을 갖고 있다. 젊은 무당들을 보면 명품입고 다닌다. 잘나가는 무당들은 그렇다. 다 그렇진 않지만 실제로 그런 편이다. 영화에서 화림과 봉길이 상덕, 영근에게 ‘꼰대’라고 하고 반대로 그들은 화림, 봉길에게 ‘발랑 까졌다’고 한다. 그런 세대들이 서로 합심해서 그 다음 세대를 구하고 그들이 살아갈 터전을 지키는 거다. 그렇게 세대를 맞추다보니 지금의 배우들이 캐스팅됐고 베테랑 배우들을 모셔놨더니 알아서 앙상블이 나왔다.”

-‘물에 젖은 나무가 불에 타는 검을 이긴다’는 대사와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이론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인가.

“음양오행설에는 여러 이야기가 있다. 서로 보완하는 게 있는 반면 서로 상극인 관계도 있다. 나는 우리나라가 ‘나무(木)’ 해당한다. 그동안 많이 맞고 참아왔지만 부러지지 않았다. 나무가 저 ‘검(금, 金)’을 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水)’에 젖어야 한다. 영화에서는 그게 피로 상징된다.”

-영화에 ‘나무’가 많이 등장한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인가.

“빛과 어둠, 오행을 다 찍으려고 했다. 불도 엄청 곳곳에 넣으려고 했다. 쇠도 넣고 나무도 넣고 흙도 넣고 물도 넣고. 어떻게든 미장센에 녹이려고 시도했다. 나중에 중요한 ‘키’로 나오니까. 도드라지게 보인 게 나무인 것 같다. 다시 보면 왜 이 컷이 여기서 시작했는지 알게 될 거다.”

장재현 감독이 ‘파묘’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 쇼박스
장재현 감독이 ‘파묘’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 쇼박스

-상덕이 묘를 파헤친 뒤 빈 땅에 이순신이 새겨진 100원짜리 동전을 던진다. 특별한 의도가 있나.

“최민식 선배의 ‘명량’이 오래전 작품인데 여전히 그 이미지를 갖고 있을 줄 몰랐다. 시사회 때 반응을 보고 오히려 그 동전 장면이 새롭게 보였다. 원래 풍수사가 관을 꺼내 이장할 때 땅 값으로 지신에게 돈을 준다. 실제로 하는 행위다. 보통 10원짜리를 던지는데 흙색과 비슷해서 잘 보이지 않더라. 그래서 100원을 던진 거다. 얻어 걸린 장면이다.(웃음)”

-주인공 이름이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들과 같고 차의 번호판이 ‘1945’ ‘0815’다. 의도한 것인가.

“이름 관련해서는 노코멘트하겠다. 하하. 맞다. 찾아보면 더 많이 발견할 거다. 차 번호는 미술팀이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공포 마니아층는 아쉬울 거라고 했는데 관객이 감독에게 바라는 것과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 사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도 궁금하다.

“사실 나는 전작 두 편도 무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포영화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 받아들이는 분이 다소 있다. 그분들을 말릴 순 없다. 찾아가서 매번 설명할 순 없잖나.(웃음) 그래서 과도한 음향효과나 장면 연출로 그런 분들도 만족시키려고 애를 쓰긴 했다. 근본은 바꿀 수 없지만 그래도 서비스를 하려고 했다. 느껴질 거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