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 방향지시등을 장착한 수입차들이 도로 위에서 혼란과 안전사고 도로 우에
빨간색 방향지시등을 장착한 수입차들이 도로 위에서 혼란을 초래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 A씨는 얼마 전 운전면허를 취득한 지인의 도로연수를 돕다 아찔한 경험을 했다. 도로 상황이 원활한 가운데 바로 앞 차량의 후면부에서 빨간등이 점등되자 초보운전자인 지인이 순간 브레이크를 밟으며 속도를 줄였고, 뒤따라오던 차량도 거리가 빠르게 좁혀진 뒤 급히 속도를 줄인 것이다. 그런데 정작 앞차는 속도가 줄지 않은 채 옆 차로로 유유히 옮겨 주행했다. 해당 차량의 방향지시등이 빨간색이어서 발생한 일이었다.

도로에서 A씨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사례는 최근 부쩍 늘어나고 있다. 도로 위에서 마주치는 일이 많아진 테슬라 등 수입차 브랜드 차량 중 빨간색 방향지시등을 장착한 차량들이 늘어나면서다. 온라인상에서도 빨간색 방향지시등으로 인해 당황했던 경험을 털어놓거나 불법 여부를 묻는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통상적으로 인식되는 방향지시등 색상은 노란색 또는 주황색이다. 빨간색 제동등과 차이가 뚜렷하다. 반면, 빨간색 방향지시등은 익숙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제동등과 차이도 없다. 빨간색 후미등이 점등되는 야간에는 더욱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그렇다면, 빨간색 방향지시등은 불법일까 아닐까.

우선, 국내법상으로는 규정에 벗어난다. 자동차가 성능과 구조 등의 측면에서 지켜야할 각종 기준은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인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자동차규칙)’을 통해 마련돼 있다. 이 규칙 제44조는 ‘자동차의 앞면·뒷면 및 옆면에는 기준에 적합한 방향지시등을 설치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2호를 통해 ‘등광색은 호박색일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방향지시등의 설치 및 광도 기준도 세부적으로 규정돼있다.

또한 자동차규칙 제47조 제2항엔 ‘자동차의 뒷면에는 끝단표시등, 제동등, 방향지시등 및 옆면표시등과 혼동하기 쉬운 등화나 점멸하는 등화를 설치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도 명시돼있다. 다른 운전자들에게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등화는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자동차규칙 제79조에 따라 이륜자동차도 기준에 적합한 방향지시등을 설치해야 하며, 이때도 등광색은 호박색으로 규정돼있다.

이를 준수하지 않은 자동차는 운행할 수 없다. 자동차관리법 제29조 1항은 ‘자동차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구조 및 장치가 안전 운행에 필요한 성능과 기준에 적합하지 아니하면 운행하지 못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자동차규칙은 그 구체적인 기준을 정한 하위 규정이다.

하지만 지금도 빨간색 방향지시등을 장착하고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차량들은 불법이 아니다. 한국과 미국이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예외규정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현행 자동차규칙은 ‘자유무역협정 체결로 인정되는 자동차 안전기준’ 고시에 의해 미국 원산지 자동차에 적용되는 안전기준은 ‘2011년 2월 10일 서한교환을 개정하는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 간의 의정서’를 따르도록 돼있다.

해당 의정서엔 우리나라에서 연간 5만대 이하를 판매한 미국 제조사의 자동차는 미국의 안전기준을 준수하면 우리나라의 기준을 준수한 것으로 간주된다. 즉, 미국 규정을 지키면 우리나라 규정을 벗어나더라도 문제가 없다. 그런데 미국의 경우 방향지시등의 색상이 빨간색도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미국에서 생산된 차량들이 국내로 수입되면서 빨간색 방향지시등을 장착한 차량들이 국내 도로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한 안전문제 지적 및 개선 요구는 앞서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 때도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련 자료를 제시하며 보다 적극적인 개선 노력을 촉구했다. 한준호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3년까지 국내 판매된 한미 FTA 적용 차량 20만2,082대 중 절반 이상(56.3%)이 적색 방향지시등을 장착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2013년부터 매년 열리는 ‘한미 FTA 자동차작업반 회의’를 통해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요구를 이어오고 있으나 아직 별다른 성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빨간색 방향지시등을 허용하고, 한미 FTA 관련 개선에 소극적인 이유로는 자국 자동차 제조사들의 이해관계가 지목된다. 빨간색 방향지시등이 원가절감 효과를 가져다주는 것은 물론, 미국 규정에 따른 디자인 설계도 수월하게 해준다는 점에서다. 따라서 안전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에 의해 빨간색 방향지시등 장착 차량이 꾸준히 확대되는 상황은 개선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 최종 결론 : 사실아님 

 

근거자료 및 출처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 제44조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자유무역협정체결로 인정되는 자동차 안전기준 제3조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자유무역협정을 개정하는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 간의 의정서
  산업통상자원부 한미 FTA 홈페이지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