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정두 기자] 5년 전,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은 절규로 가득 찼다. 쌍용차의 대규모 정리해고 발표에 반발한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하고 사측 및 공권력에 맞섰다. 당시 쌍용차 노동자들의 공장 점거는 두 달 반가량 이어졌으며, 격렬한 충돌이 계속됐다. 그리고 2,000일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 지난 13일, 대법원은 절망으로 가득 찼다. 5년 전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절규하던 이들이었다. 끝날 줄 알았던, 그리고 돌아갈 줄 알았던 ‘내일’이 절망이 되어 돌아왔다.

▲ 지난 13일 대법원의 해고 적법 판결을 접하고 끝내 눈물을 보인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
◇ 대법원 “쌍용차 정리해고 적법”

대법원이 지난 13일 쌍용차 해고자들이 제기한 해고무효소송에서 해고자들의 손을 들어줬던 2심 판결을 파기했다. 지난 2009년 단행된 쌍용차의 정리해고가 ‘적법’ 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당시 쌍용차가 정리해고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이러한 판결을 내렸다. 2008년부터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었고, 경쟁력 악화로 미래도 불확실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정리해고를 피하기 위한 쌍용차의 노력도 충분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이러한 판결은 해고를 무효라고 판단한 2심의 결정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지난 2월 항소심 재판부는 “쌍용차가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었던 것은 맞지만, 재무건전성 위기까지 겪고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 또 쌍용차가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일정부분 했지만, 가능한 모든 노력을 했다고 보기 어렵고 더 많은 노력이 있어야 했다”며 해고자들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고등법원과 대법원만 엇갈린 판결을 내놓은 것은 아니다. 1심 재판부는 대법원과 마찬가지로 정리해고에 대한 경영상의 이유가 충분했다며 해고가 적법했다는 판결을 내렸다. 즉, 재판과정에서 유효→무효→유효로 판결이 계속 엇갈린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쌍용차가 회계장부를 조작해 정리해고의 근거를 마련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대법원의 판단은 해고가 정당했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쌍용차 해고무효소송은 두 번의 반전을 거쳐 ‘연장전’에 돌입하게 됐다.

▲ 지난 4일,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 조합원들이 서울 대법원 앞에서 쌍용차 정리해고 무효 판결 촉구 기자회견을 연 뒤 2,000배를 하고 있다.
◇ 2,000일 묵은 우리 사회 숙제… 갈등 지속 불가피

예상 밖의 판결을 접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항소심 판결을 통해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또 다시 이들을 덮친 것은 절망이었다.

고통의 시간이 시작된 것은 5년 전인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9년 1월 법정관리를 신청한 쌍용차가 그해 4월 발표한 정리해고 대상은 2,646명에 달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강하게 반발했지만 그해 6월 8일 1,666명이 희망퇴직으로 퇴사하고 980명은 정리해고 됐다.

이후 쌍용차 노사는 더욱 극심한 갈등을 겪었고, 공권력이 투입되면서 충돌이 격화됐다. 노동자들은 새총을 쏘거나 볼트 등을 투척했고, 경찰은 헬기로 최루액을 뿌리고 테이저건까지 동원했다. 쌍용차는 공장 및 옥상을 점거한 노동자들에게 물과 음식, 가스 등을 차단했다. 당시 쌍용차 평택공장은 그야말로 전쟁터나 다름없었고, 이 과정에서 자살 등으로 사망한 노동자만 6명에 달했다.

전쟁은 끝내 경찰의 진압 성공으로 마무리됐다. 그리고 980명의 정리해고 대상자는 무급휴직 462명, 희망퇴직 353명, 정리해고 165명으로 결론이 났다.

▲ 2009년 쌍용차 사태 당시 공장 옥상을 점거한 해고노동자들의 모습.
하지만 쌍용차 사태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쌍용차 평택공장 담을 넘어 우리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해고된 당사자들은 전혀 다른 삶을 맞았다. 최종 정리해고 대상자 중 159명은 해고무효소송을 제기했고, 쌍용차는 공장을 점거했던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억울함을 호소하며 송전탑에 올라가는 등 집회와 농성도 이어졌다. 쌍용차의 자동차를 만들던 일상은 사라졌고, 쌍용차를 향한 투쟁은 일상이 됐다.

쌍용차 사태는 사회적으로도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다. 먼저, 우려의 목소리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자살 또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으로 사망하는 해고노동자 및 그 가족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2009년 이후 쌍용차 사태와 관련해 숨진 이는 25명에 달한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대한문 앞에 마련한 분향소 역시 정부에 의해 철거되며 적잖은 갈등을 일으켰다.

▲ 지난해 4월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 철거에 나선 경찰.
이른바 ‘손배폭탄’ 논란은 기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법원은 공장 점거와 관련해 노조와 해고자들이 쌍용차에게 47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회사에겐 어떨지 모르겠지만, 노동자들에겐 꿈도 꾸기 어려울 만큼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그런데 그때 한 주간지 독자가 “4만7,000원씩 10만명의 마음을 모아보자”고 제안하면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고, 이후 적잖은 금액이 모아졌다.

이처럼 쌍용차 사태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대표적인 해묵은 숙제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인해 그 숙제를 풀기란 더욱 까다로워졌다. 단순히 해고노동자 당사자들을 넘어 우리 사회 속 갈등의 불씨가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미 쌍용차 사태에 대한 피로감이 극에 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여파는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비극적인 소식이 또 다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크다.

▲ 2009년 쌍용차 사태 당시 공장 옥상을 점거한 해고노동자들의 모습.
이번 판결이 ‘나쁜 선례’로 남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쌍용차 사태의 출발에는 해외자본의 ‘먹튀 논란’이 자리 잡고 있으며, 회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은 제대로 다뤄지지도 않았다.

이는 현재 투쟁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 가지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광화문에서 수개월째 농성 중인 씨엔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이들 역시 졸지에 일자리를 잃고 말았는데, ‘원 청’인 씨엔엠은과 ‘먹튀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은 MBK파트너스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번 판결대로라면 기업들은 해고가 더욱 쉬워지는 반면, 노동자들의 현실은 더욱 참혹해질 수밖에 없다.

2,000일이 넘게 지났지만 쌍용차 사태는 또 다른 출발점에 섰다. 그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을 맞게 될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에게 언제쯤 봄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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