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설명1>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동상. 그러나 수십년이 지난 2014년 현재,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처우는 당시와 크게 개선되지 않은 듯하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IMF와 2000년대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며 ‘비정규직’이라는 단어는 어느덧 친숙을 넘어 우리 사회문제 한켠에 자리했다. 같은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생기는 정규직과의 양극화는 인권문제를 비롯해 계층간 갈등을 초래하면서 사회불안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또 이로 인해 가속화되는 빈부격차는 경제성장을 방해하는 걸림돌이기도 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꾸준히 모색됐지만 비정규직 숫자는 오히려 늘어나고 갈등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IMF 경제난을 겪으면서 등장한 비정규직 제도는 신자유주의 물결을 타고 우리사회 곳곳에 자리 잡았다. 현재 근로고용 계약에서는 용역직, 계약직, 사내하청, 소사장제, 위탁 계약 등의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또 증가하고 있다. 실제 2008년 540만명 수준이었던 비정규직 노동자는 2014년 3분기 기준, 670만명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 ‘노동시장 유연화’ 명목 하에 묻혀온 노동계 목소리

이러한 다양한 형태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모두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정해진 계약기간에 따른 고용불안, 정규직과의 차별, 저임금, 노동착취와 인권유린 등이 그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8월 26일 중소기업중앙회에 근무한 기간제 여직원은 쪼개기 계약을 연장하다가 정규직 강제전환 기간인 2년이 되기 이틀 전 해고됐다. 해당 여직원은 유서에서 성추행 사실과 비정규직의 비애를 고백하고 결국 자살했다.

▲ <사진설명2> 한국은 OECD 국가 중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비율이 최저 수준이다. 유럽에서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편인 네덜란드와 비교해도 한국이 3년 뒤 정규직 전환비율이 22.4%에 불과한 반면 네덜란드는 69.9%에 달했다.
비정규직 처우 문제가 사회적 화두가 되면서 정치권과 노동계는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해왔다. 근로기준법을 강화하고 고용노동부의 권한을 늘리는 한편 임금피크제와 같은 제도를 마련하기도 했다. 또 노동계와 야권에서는 노동자 지위 강화를 위한 관련법 개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업의 대외수출 경쟁력을 명분으로, 혹은 경기침체를 이유로 이른바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기업들의 목소리에 비정규직 문제가 묻혀온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정규직 전환 비율이 22.4%에 그쳐, 한번 비정규직으로 채용되면 계속 비정규직으로 남을 수도 있다는 ‘비정규직의 덫’ 문제도 제기된 바 있다. 이에 반해 OECD국가 중 유럽에서 가장 비정규직 비율이 높다는 네덜란드도 정규직 전환비율이 70%에 달했다. 청년층의 취업기피 현상도 이 같은 비정규직 문제의 연속선상에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러한 가운데, 최근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의미심장한 발언을 해 주목받았다. 지난 24일 정책세미나 자리에서 최 부총리는 “정규직이 과보호 받다 보니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기업이 겁이 나서 정규직을 못 뽑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일부 정규직들의 이기심이 비정규직 차별을 심화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최 부총리는 정규직 정리해고 요건 완화 여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으나, 사실상 정규직 밥그릇 일부를 비정규직에 나누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최 부총리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야당과 노동계에서는 개탄했다. 정규직 처우를 낮춰 하향평준화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성과위주의 ‘양’에만 치중했다는 비판이다. 정규직 비율 증가, 실업률 감소 등 숫자에만 연연하다 보니 현장을 도외시한 무리한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제도마련에 앞서 ‘현장 목소리’ 반영해야…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서는 현재 기간제 비정규직 제도를 기간이 아닌 직종별 제도를 근본적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참여연대 안진걸 협동사무처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기간제법의 방식은 이미 실패한 것으로 판명된 만큼 이제 간접고용, 특수고용을 포괄하는 비정규직 고용 형태에 사용 사유를 제한하는 입법이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도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간접고용’에 있다”면서 “간접고용 형태로 비정규직들이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비합리적 차별’을 받는 것이 문제지 비정규직 제도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강변한다. “적어도 같은 일을 하면서 부당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요지다. 이에 비정규직 채용을 기간제가 아닌 사용사유 별로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정규직 전환 비율 제고 등 다양한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결코 쉽지 않다. 경제상황이나 기업의 자본논리 등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탁상 위의 서류검토와 같은 방법에서 벗어나 현장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정책적 방안이나 제도마련에 앞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려는 전향적 태도가 보다 더 중요하다”면서 “비정규직 문제는 결국 인권과 행복에 관련한 문제이기 때문에 정치적 성과를 위한 숫자적 접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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