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부소장.
[시사위크] 이달 초 황해도의 한 북한 공군부대 활주로에 IL-62항공기 한 대가 내려앉았다. 여객기 모양이지만 전체가 흰색으로 도색된 동체 앞부분 상단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글자와 함께 인공기가 새겨져 있었다. 꼬리 날개 부분에는 붉은색 왕별 표시 마크가 드러났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전용기였다. 옛 소련 일류신(Ilyushin)사에서 제작한 기종으로, 김정은이 애용하는 것으로 포착돼 우리 정보 당국이 항적을 추적하는 등 주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날 김정은의 황해도 방문은 한미합동 군사연습에 대응한 움직임으로 분석됐다. 한국과 미국의 군 병력과 장비가 남한 지역 곳곳에서 북한의 도발을 가정한 대응태세와 반격 훈련을 벌이고 있는데 따른 북한 최고지도자의 반응이란 얘기다.

군 최고사령관이자 국방위 최고책임자인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직접 전방지역 공군부대로 간주되는 이곳을 찾아 군 대비태세를 점검하고 격려하는 자리란 성격도 있다. 이 소식을 전한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9일자 보도에서 “작전비행장에는 미제 침략자들과 졸개 무리들을 쓸어버릴 원수 격멸의 의지가 용암처럼 끓어 번지고 있었다”고 전한 데서도 이번 방문이 한미군사연습을 겨냥한 것임을 엿볼 수 있다.

해마다 3~4월에 걸쳐 이뤄지는 연례적인 방어훈련이라는 한미 측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북침 전쟁연습”이라고 반발해왔다. 올해의 경우 그 강도가 더 거세진 느낌이란 게 군 당국자와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북한이 오바마 행정부와 각을 세우고 있는데다,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도 날 선 대남비난을 펼치며 불만을 토로해온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북한 관영 선전매체들은 연일 한미 합동군사연습을 비난하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지난 15일 노동신문은 한미 합동군사연습을 비난하면서 “단 한 점의 불꽃이라도 북측 영토에 튕긴다면 전면적인 핵전쟁으로 번질 것”이라며 협박 공세를 이어갔다. “백악관과 청와대를 비롯한 침략과 도발의 본거지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우리 백두산 혁명강군의 멸적의 조준경 안에 들어있다”는 위협도 내놓았다.

13일자 노동신문은 “반민성전의 불길을 지펴올려야 한다”고 선동하기도 했다. 한미 합동군사연습이 “미국의 대(對)조선지배 전략 실현을 위한 책동의 일환으로 북침전쟁 도발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말로만 위협하는 게 아니라 도발적인 행동도 내놓는다. 북한은 키 리졸브(KR) 한미 군사연습이 끝나기 하루 전인 12일 지대공 미사일 7발을 동해로 발사하는 등 무력시위 움직임도 벌였다.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 9일자에서 북한군이 한미 합동군사연습을 겨냥해 1월부터 ‘실전훈련’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참관 하에 열린 1월 말 미 항공모함 타격 훈련과 2월21일 북한이 선전매체를 통해 공개한 섬 타격·상륙 훈련도 이 같은 실전훈련의 일환이란 설명이다. 키 리졸브와 함께 시작된 독수리훈련은 4월 24일까지 진행되기 때문에 이때까지 북한의 비난전과 도발 움직임은 수그러들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북한의 이런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미 당국은 합동군사연습을 중단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 시험발사,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같은 도발적 행태에 대비하려면 연례적인 합동연습이 필수적이란 얘기다. 방어적 훈련인데다가 연례적으로 이뤄져왔기 때문에 이를 문제 삼으면 곤란하다는 설명이다.

한민구 국방장관은 지난 6일 경기도 성남 공군기지 내 미군시설에서 열리고 있는 한미연합훈련인 키 리졸브(KR) 연습 훈련개념발전 예행연습(ROC Drill) 현장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는 커티스 스카패로티 한미연합사령관과 최윤희 합참의장 등 한미 양국군 주요 지휘관과 참모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한 장관은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한미 연합훈련은 한미동맹을 떠받치는 주춧돌로서 지난 60여년  동안 적 도발을 억제하고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켜왔다”고 말했다. 북한의 반발이니 위협에 굴복해 한미 군사연습을 중단하는 일은 없을 것이란 메시지다.

하지만 정부의 고민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북한이 한미 군사연습을 빌미로 대응 무력시위를 잇달아 벌이면서 우리 국민들의 안보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다. 북한 김정은 체제의 호전적 속성에 근본 원인이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크게 보면 북한정세나 한반도 안정을 관리하는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받을 수 있다.

또 한미 군사연습이란 변수 때문에 박근혜 정부의 대북접근 로드맵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 초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제1위원장 모두 남북관계 개선을 언급함으로써 남북 화해협력과 교류, 통일문제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지만 불과 두 세 달 만에 물거품이 됐다. 3~4월 열리는 한미 합동군사연습이 연초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비판이나 압박도 정부를 고민스럽게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군사연습의 수위를 낮추거나 중단할 경우 북한의 도발적 행태에 대해 잘못된 사인을 줄 수 있고, 한미 군사동맹과 유사시 대북 대응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해법을 찾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군사연습이 마무리되는 4월 말 이후 남북관계가 기지개를 켤 수 있게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북한도 회담에 나올 명분을 얻어야 한다는 점에서 군사연습 기간은 쉽지 않다는 얘기다.

물론 남북한이 가파른 대치국면에 있다는 점에서 실타래처럼 얽힌 남북관계를 푸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란 우려도 있다. 북한이 개성공단 임금을 일방적으로 인상하려 하려 시도하고, 우리 원전시설에 대한 해킹이 북한의 소행이란 조사결과가 발표되는 등 악재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대북부처 당국자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남북관계와 관련 ‘위기 속에 기회가 있고, 기회 속에 위기가 있다’는 격언이 회자된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 대박’ 의지가 북한을 회담테이블로 끌어낼 전략과 인내 있는 노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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