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최학진 기자]  2015년 벽두부터 기업 인적 구조조정의 칼날은 매서웠다. 서슬 퍼런 이 칼날은 날씨가 풀리면서 더욱 날카로워졌다. 주된 이유는 역시나 실적부진이었다. ‘실적’이란 단두대에 목을 길게 늘인 이들은 언제나 노동자들이다.

◇ 은행권 신호탄 쏘며 대규모 명퇴 단행

올해 명예(희망)퇴직의 신호탄은 은행권에서 쏘아올렸다. 이들의 이유는 △저금리 기조에 따른 수익 감소와 점포 구조조정 △정부의 신규채용 확대 요구 △퇴직자 재취업 활성화라는 3가지로 모두 똑같다.

먼저 NH농협은행이 10년 이상 근속 직원이나 만 40세 이상 일반직, 4급 이상 과장급에 대해 명퇴 신청을 받아 올 1월에 278명을 내보냈다. 18~20개월치 월급이 퇴직금 명목으로 이들 손에 쥐어졌다. 2014년에도 농협은행은 310명을 내보낸 바 있다.

신한은행은 부지점장 이상, 1969년 이전 출생자 가운데 4급 차장·과장, 1975년 이전생 5급 대리를 대상으로 신청을 받았다. 그러고는 36개월치 월급을 주고 2월에 310여명을 내보냈다. 지난해에도 신한은행은 150명을 떠나보냈다.

우리은행은 3월 임금피크제 직원 등을 대상으로 24개월치 퇴직금을 안겨주고 250여명의 보따리를 싸줬다. 씨티은행과 SC은행은 2014년에 각각 650여명과 200여명을 내보냈다. 은행권의 희망 없는 희망퇴직은 해를 넘어서도 계속됐다.

KB국민은행은 5,500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접수를 받기로 했다. 임금피크제 직원 1,000명과 장기근속 일반직원 4,500명이 대상이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지난해 말 취임하면서 “장기 근속자가 많은 항아리형 인력 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인적 개편을 염두에 뒀었다. 이를 5월에 공식화하며 실천에 옮겼다. KB국민은행 역시 저금리 장기화로 인한 예대마진 감소와 정부의 신규채용 압박을 이유로 들었다.

◇ 실적·새 먹거리 집중 등 이유도 다양

자동차 부품업체 한국델파이와 SK이노베이션은 실적 부진이 명예퇴직으로 직결됐다. 한국델파이는 4월 임직원 1,920명의 28%인 539명을 떠나보냈다. 29개 생산품목 가운데 경쟁력 있는 9개 품목만 생산하기 위해서다. 나머지 20개 품목 생산의 유휴 설비 인력이 인적 개편됐다. 한국델파이는 “회사 매출의 75%를 차지하는 한국지엠의 수출 감소로 2014년 매출이 약 10% 감소한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은 18년 만에 희망퇴직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매출 65조8,652억원에 영업손실 2,312억언 당기순손실 5,317억원을 올렸다. 37년 만의 영업적자로 34년 만에 배당이 없었다. 대상은 만 44세 이상 10년 이상, 만 44세 이상 5년 이상 근속자다. 자율신청 방식으로 5월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들에게는 60개월분 기본급에 5,000만원 이내의 자녀학자금 등이 지원된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에너지, 종합화학, 인천석유화학, 루브리컨츠, 트레이딩 인터내셔널도 희망퇴직을 진행하고 있다.

▲ 희망퇴직이 아니라 사실상의 권고사직이라는 비판을 받는 곳도 있다. 위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 ‘겉’은 희망퇴직 ‘속’은 권고사직

희망퇴직이 아니라 사실상의 권고사직이라는 비판을 받는 곳도 있다. 주인공은 삼성물산과 현대중공업이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4분기 당기순손실 540억원이라는 실적부진을 이유로 댄다. 삼성물산 주변에서는 오는 6·9월에 800명씩 모두 1,600명이 보따리를 쌀 것이라는 소문이 나돈다. 앞서 삼성물산은 지난해 4분기 600명을 내보냈다. 1월에는 800명이 책상을 치웠다. 이 때문에 일부 직원은 “말이 희망퇴직이지 실상은 권고사직”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물산은 이에 대해 “상시적인 인력구조의 일환”이라고 선을 그었다.

현대중공업도 1분기 당기순손실 1,252억원이 희망퇴직의 이유다. 2013년 4분기부터 연속 적자로 경영 정상화를 위해 불가피한 인력 감축이라는 설명이다. 올해 초부터 1960년 이전 출생 직원 가운데 사무직 1,500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있다. 이 수치는 전체 임직원 2만8,000명의 5%에 해당한다. 이미 1,000여명이 회사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3월에는 15년 이상 장기근속 여직원 가운데 고졸·전문대졸 500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희망퇴직을 가장한 권고사직”이라며 반발했다. 

SK텔레콤은 지난 3월 새로운 먹거리에 집중하기 위해 희망퇴직(특별퇴직)을 실시했다. 이때 전체 임직원(4,253명)의 10% 가까운 400명이 보따리를 쌌다. 이동통신사 업계 선두인 SK텔레콤의 조직은 KT(2만명대), LG유플러스(7,000여명)에 비해 효율적이다. 실적도 나쁘지 않다. 지난해와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각각 1조8,251억원 4,206억원이었다. 특별퇴직을 실시한 이유는 간단하다. 새 먹거리인 플랫폼 사업을 하는 자회사 SK플래닛를 키우기 위해서다. 실제 SK플래닛의 직원수는 꾸준히 증가했다.

경영진단 결과를 희망퇴직의 이유로 삼는 삼성전기도 있다. 삼성전기는 경영진단 결과 2017년까지 1,000명을 감원해야 한다며 2014년부터 40·50대 차·부장급을 중심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기는 이에 대해 “구조조정이 아닌 컨설팅이 핵심”이라는 이유를 댄다.

내년에 실시되는 정년연장에 미리 대비하는 모습을 보이는 곳도 있다. LG전자가 여기에 해당한다. 300인 이상 사업장이나 공기업은 내년부터 60세로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 당연히 지금의 50대 임직원이 계속 회사를 다니면 임금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미리 이들에 대한 인사를 단행한 것으로 풀이된다. LG전자가 부장급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데서 보다 명확해진다. LG전자는 이에 대해 “수년간 인사고과 저조자에 대한 조치가 없어서 실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100세 시대가 성큼 다가온 지금, 채 반백이 되기도 전에 회사의 무자비하고 일방적인 명퇴라는 ‘칼날’에 소리 없이 나가 떨어지는 노동자들의 ‘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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